Art & Education/딸을 위한 미술 이야기

미술로 보는 '검역'의 역사와 의미

패션 큐레이터 2008. 5. 8. 03:39

 

 

검역이란 말의 어원을 아세요?

검역을 뜻하는 Quarantine은 라틴어 quaranti giomi에서 온 말입니다.

'40일간'이란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로 베네치아 공국의 한 도시에서

시작된 관행이었던 검역은 14세기 중반을 휩쓸었던 역병으로 부터 도시민을 구하기 위해

구제책이었습니다.  도시 내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과 배는 40일 동안 그 안전유무를 묻기 위해

격리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1377년에 작성된 관련 조항 문서가 여전히 있습니다.

A.D 549년 비잔틴 제국의 황제가 도시 내로 입성하는 역병환자를 격리시킨 것이 최초입니다.

 

Lazarus Quarantine cartoon

 

왼쪽의 작품은 당시 나병환자들을 격리시켜 일반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계몽 포스터입니다. 이 그림 속 나병으로 곪아퍼진 상처로 고통받는 이는

성경속에 나오는 라자루스입니다. 그는 이후 나병환자들의 수호성인이 되지요.

검역 병원을 라자레토라 부르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 말입니다.

 

 

뉴욕 호프만섬, 1892년 9월, 하퍼스 위클리 단평, 콜레라의 창궐과 검역소의 풍경

 

해외여행이 잦은 지금, 외국에 여행을 할때

음식물을 반입하려다 빼앗기는 경험들을 다 하실 겁니다.

여러분들 괴롭힐려고 김치 빼았고 컵라면 뺏는 것 아닙니다. 그 오랜 세월동안

한 국가가 자신과 깊은 이해관계를 맺는 국민성원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으로 자리잡았고

이를 통해 성원의 행복추구권과 건강권을 지키기 위함이지요.

 

작금의 광우병 쇠고기를 보는 시각을

 검역주권의 문제로 환원해서 봐야 합니다. 말끝마다 OIE 기준이

국제적 기준이고 여기에 따라서 협상을 했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현 정부의 말에 사람들이 실망하는 이유는, 그들의 작태가

바로 이 검역이란 의미, 40일간의 유예를 왜 두었는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하지 않은 몰역사적인 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Plague woodcut Ellis island

 

왼쪽은 가래톳 흑사병에 걸린 중세 시대의 환자를 돌보는

의사의 모습을 담은 판화작품입니다. 오른편은 바로 뉴욕의 명물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엘리스섬에 있던 검역 사무소의 모습을 촬영한 오래된 사진이지요.

1930년경 유해가능성이 있는 질병을 가졌다고 판단된 모든 이들은 위험수준이 떨어질때까지

이렇게 검역사무소에 위치한 별도의 장소에서 격리되어야 했습니다.

 

 

1986년 처음으로 발병한 AIDS는 수천만의 사람을 희생시켯고

2003년 사스는 8천명에게 전염되었고 이중 780명이 사망을 했습니다.

광우병하고 뭐 그리 차이가 있나 하실지 몰라 다시 말하겠습니다. 여러분이 보기에

작고 하찮은 선충 하나가 여행자의 베낭을 타고 들어와 이 땅의 소나무 숲 전체를 박살낼수 있고

황소개구리는 이미 이 땅의 생태계를 완전히 파괴시켰습니다.

 

검역이란 이렇게 단순하게 식품 위생과 관련된 문제만을 다루지 않습니다.

검역은 국민과 그들이 살아가는 지역의 생태계 보호를 위한 국가의 최우선 보호장벽이며

반드시 수호되어야 할 최소한의 권리입니다. 아무리 강대국일지라도

유해할 수 있는 질병을 가진 자는 반드시 검역을 통해 격리되어야 합니다.

이런 권리를 하루아침에 정부가 버렸습니다.

 

위의 노랑색과 검정색의 격자무늬가 뭘 의미하는지 아세요?

검역이 필요한 배가 입항할 경우 그 배를 표시하기 위해 달았던 깃발의 모양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나서서라도 이 광우병 관련 쇠고기 수입에 저 깃발을 달아야 합니다.

 

 

 '한미 쇠고기 협상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조경태 의원과 정운천 장관의 질의 응답을 살펴보겠습니다.

 

조경태 의원이 물었습니다. "값싸고 질좋은 소고기 있습니까"

장관은 "값싸고 질좋은 소고기란 소비자의 선택에 따라, 프로모션에 따라 있을수 있고

이는 개인의 판단문제이며, 많은 사람들이 먹고 있을거라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소비자의 선택에 따라, 프로모션에 따라 값싸고 질좋은 소고기는

있을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정 장관은 틀린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말은 옳습니다.

 

마케팅이 그의 주장을 확증합니다. 마케팅은 현혹효과를 창출하고

제품에 아우라를 덧입혀 사용가치 보다 더 상위개념의 상징가치를 만듭니다.

이를 위해 소비자들의 인식정도를 파악하고 이를 조율하고(좀더 다르게 말하면 조작합니다)

현대의 상품이 갖는 가격논리의 핵심입니다. 결국 정 장관의 옳은 말을 했습니다.

 

 

단 이 말을 한 나라의 장관이 했다는 점입니다.

청문회 자리에서 제가 했다면 저는 비난 받을 이유가 없지요 왜냐면

저는 마케터이고, 전략가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소고기를 그렇게 팔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이 응답의 주체가 장관이란 점 이게 문제입니다. 적어도 이건 장관이 할 말의

차원이 아닌 것이죠. 현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툭하면 국민들의 머리속에 프레임

시키려 한것이 일하는 대통령, CEO 대통령입니다.

 

 

 

국가경영(Statecraft)는 기업경영과는 다른

차원의 숙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기업에서도 물론 이해당사자가 있지요

현대기업은 그들을 가리켜 주주(stakeholder)라고 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유한책임 내에서만

기업과 연관을 맺는 이해당사자일 뿐입니다. 반면 국가가 수반하고

그 지리적 영역 내에서 살아가는 국민들은 국가란 실체와 이해당사자이지만

기업과 달리 유한책임만을 지는 것이 아닙니다.

 

국민은 국가란 실체와 함께 동고동락합니다. 이런 국민을 위해서

 국가는 반드시 한가지 역할을 해야 합니다. "국민들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때 보호란 다양한 차원에서 이루어집니다. 요즘 <검역주권>또한 국민을 보호하는

여러겹의 차원 중 하나일 뿐이지요. 그러나 이 검역권은 한번의 실수로 중세와 근대 유럽사회를

휩쓸던 그 역병들처럼 한 국가를, 대륙 전체를 몰살시킬수 있는 유해한 것으로 부터

우리를 지키는 보루입니다. 호주에서는 이 검역 부분을 사회시간에 따로 배우기도 하지요.

 

청문회를 보고 나서 참담한 느낌마저 듭니다. 협상의 세부내역과

광우병이 갖는 문제점과 그 향후의 영향력에 대해 어떤 학습도, 어떤 지적 파악도 하지

못하는 자가 장관이라고 앉아있습니다. 예전 코메디 프로에서 미친소라 불리는

개그맨이 나와 '그때그때 달라요"를 외치더니, 이것이 현실이 되다니.

 

현 정부가 강력한 재협상 의지를 보여주기를 촉구합니다.

오늘 따라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란 영화가 계속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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