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바람의 파이터-비어있음에 대한 경배

패션 큐레이터 2004. 8. 22. 00:52

 

 

카라데 마스터 최영의, 일본명 오오야마 마쓰다츠, 방학기 선생님의 연재물이었던 '바람의 파이터'가 드디어 영화로 나왔더군요. 양동근이 연기한 최배달은 고인이 된 최배달이 은막위에 새롭게 현신한 듯한 느낌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의 실제적인 생과 삶에 대한 윤색된 부분이 많이 있고 억지스러운 감성의 논리또한 포함되어 있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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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한국 영화계에서 발굴하고 있는 '재외 한국인' 시리즈(?)는 가뜩이나 경제불황으로 찌그러져있는 우리들의 일상을 말끔하게 해소시켜 주는듯 합니다. 사실 그가 추구한 무술의 본류가 택견이건 혹은 아니건, 영화를 보면서 그러한 사실에 열을 올리는 이는 없습니다.

 

사람이 무예란 신의 매개를 만나 하나의 인간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어떤 특정한 유파의 무예와 기술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바람의 소리를 듣고 공기의 파장과 미세한 흐름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는 초감각의 세계를 얻는것. 그는 파이터로서 실전공수의 극한을 향해 무한정의 도전을 던진 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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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24세때 京都에서 열린 전후최초의 무도대회 가라테 부문에서 우승하고 그 시절 스승이었던 조형주의 권고로 1948년 치바(千葉)顯남부에 있는 키요즈미산에 들어가 18개월동안 완전히 인간세의 문명과 단절된 고행을 하면서 몸을 단련합니다. 폭포수밑에서 좌선을 하고 야생동물과 싸우고 맨손으로 나무와 바위를 치면서 그는 화두로서의 무술보다는 실전에서의 진정한 파이팅을 통한 정체성을 찾는 자신만의 응답방식을 찾게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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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禪과 자유롭고 거친 쿠미테(組手)를 강조하는 극진회를 창립. 그의 무도에 대한 미학적인 완성은 그 여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는 최배달에게 영향을 미친 농노와 그가 전해준 미야모토 무사시의 '오륜서'가 등장합니다.  개인적으로 경영전략을 전공하면서 그의 책을 텍스트로 읽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뭐랄까, 그 당시 머리속에 떠돌았던 생각들은 무도장이건 실전이건 내가 싸워야 할 적을 규정하고 대면하고 궁극의 승리를 얻어야 하는 과정은 기업의 전략과 많은 부분이 닮았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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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아직까지도 기억나는 문장은 '해를 등지고 싸우라'는 말이었습니다. 거대한 힘을 마주보고 싸우지 말것을 강조하는 글이었습니다. 어찌보면 영화 속에서의 최배달은 그러한 거대한 힘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당대의 우울했던 배경과 온몸으로 한 개인이 싸워내기엔 불가능에 가까왔던 현실들.

 

단 그는 자신의 기량과 용기를 극대화해서 자신의 작은 무대를 만들고 극진의 승리를 거두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키요즈미산의 수련모습이 극한을 향한 인간의 모습을 가장 거칠은 미감의 화면에서 그려집니다. 키요스미산에서의 수련. 철사장과 격파를 비롯하여 바람의 소리를 듣고 상대의 동태를 눈을 감고서도 읽을 수 있는 짐승에 가까운 감각을 체득하기 까지 그가 자신의 육체를 얼마나 훈육 했을지에 대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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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운다는 것은 외로운 과정의 연속일 것입니다. 오늘날 K-1 과 같은 본격적인 이종 격투기의 유래가 사실은 그로 부터 시작한다고 말씀하는 분들이 있더군요. 그만큼 그의 생은 이래적이고 영화보다도 더 극적인 생이 었다고 생각합니다.

 

무도비평을 하시는 분들이 극진 공수가 기존의 다른 일본내의 공수도와 비교했을때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최배달의 그러한 무술의 '가로지르기'와 '무위'에서 발원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싸움꾼으로써 파이터로서 그는 다양한 이종의 싸움의 방식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발전시켰고, 자신이 몰랐던 것들을 포섭하고 성장시켜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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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는 자기 수련을 통하여 '나 자신을 비워내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최영의는 적어도 마케터인 제가 보기엔 자신의 무예를 통해 철저하게 자신의 기예를 상품화 하는데 성공한 사람이기는 합니다. 그만큼 그가 이종격투기를 벌일 때마다 언론은 앞다투어 취재경쟁을 보이며 긍정적인 입소문을 만들어 냈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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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편 다시 생각해보면 그가 그런 식으로 언론의 라임라이트를 받으며 공수도를 전파하지 않았던들....만약 그가 산속에서 계속 자기 수련만을 하는데 모든 세월의 힘을 다 써버렸더라면 어찌되었을까요? 오늘날 세계적인 극진회가 만들어 질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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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중 간혹 보이는 편집상의 점프라던가, 스토리 구성의 불일치등 여러가지 약점을 이 영화는 가지고 있습니다. 실존한 인물을 그려내면서 과장과 생략을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면이지만 사실 그 강도가 상당히 세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면의 미장센 속에 드러나는 아름다운 배경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혈투와 기예의 움직임들이 와이어 액션에 식상한 우리들의 시각적 미감들을 아주 새롭게 만들어 주고 있음에 대해서는 결코 부인하지 못할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