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부탁해-그녀들의 수업시대
친구가 보내준 한편의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첫 느낌은 새벽의 우물가에서 퍼올린 청신한 우물물 같다. 한편의 예쁜 성장소설을 읽어가는 느낌. 적어도 내게 ‘고양이를 부탁해’란 작품은 이렇게 다가왔다. 4명의 소녀들이 세상과 조우하는 방식과 그 테두리진 삶의 방식을 이해해 가는 모습이 아련하고 때로는 잔혹하다. 영화적으로 한국영화의 서사방식에 대한 기대지평을 넘어서는 작품이다.
독특한 성격화 작업과 성장소설의 구성에서 고려되는 3가지 요소들, 즉 시련과 고통과 고립이 세상을 향해 들어가는 ‘신참’ 소녀들의 행보를 통해 그려진다. 성장소설의 교본이라고 불리는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를 읽은 것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시점이었다. 빌헬름이 연극을 통해서 고민과 방황의 단계를 넘어 내면화를 향한 성숙의 단계, 마지막으로 현세적인 낙원의 단계까지 이르는 생의 무늬들을 마음속에 접어가던 모습이 당시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내가 오버랩 되던 시절, 이 영화는 잃어버린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이 영화에서 고양이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이 영화의 주요한 인물들, 즉 태희와 혜주와 지영이는 다양한 고양이의 속성을 보여주는 성격화 작업의 일원이다. 배두나가 분한 태희는 마치 엷은 암갈색의 ‘소말리’종 고양이의 면모를 담고 있다. 외향적이고 대단히 사회적이며 놀기를 좋아하고, 코를 파묻고 토닥거려 주기를 원하고 사람들과의 동료의식을 발전시켜 나가려 하는 소말리는 . 뇌성장애인을 사랑하면서도 마지막엔 자신을 찾기 위한 워킹 홀리데이 여행을 지영과 함께 떠나가는 배두나와 닮아있다.
이와 달리 성공지향과 동시에 남성을 통한 사회로의 진입과 성장을 꿈꾸는 혜주(이요원)는 공주병에 걸린 페르시안 고양이의 모습을 많이 체화한다. 처음으로 고양이를 발견한 것은 지영이다.
삶의 막막한 하중의 무게를 겨우겨우 감내하며 견뎌내고 있는 지영은 자신 속에 있는 고양이를 발견한다.
하지만 선물로 혜주(이요원)에게 보낸다. 하지만 혜주는 이 선물을 감당할 수 없다면서 지영에게 돌려준다. 지영은 자신 안에 가득해 있는 패배감과 짙은 우울을 감내하기엔 아직 어린 나이다.
물론 증권회사에 운이 좋게 취직이 되어 ‘저부가가치’인생을 살아가는 혜주에게도 ‘신분상승’의 꿈은 요원하고 어렵다.
여전히 세상과의 화해나 대화를 이끌어 가기엔 역부족이다. 여행을 좋아하고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모험을 감행하려는 태희에게 고양이가 넘겨진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그녀는 소중한 고양이를 비류와 온조에게 넘겨주고 떠난다.
어찌 보면 이 영화에서 자신 속에서 성장하고 있는 고양이를 버림으로써 진정한 내면화와 입사를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고양이를 부탁해-은입사 무늬처럼 고운 혹은 처연한
살아가는 것은 끊임없이 수업에 참관하는 과정이다. 이 영화에서 고양이는 우리 속에서 자라나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자 또한 진정한 성장을 가로 막고 있는 장애물의 은유다.
넘어야 하지만 월담의 과정이 그리 수월하지 않다. 이 영화는 오히려 담을 넘어서기 보다 그 담을 배경으로 편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친다.
사회로의 진입을 위해 자신을 은빛 탄환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 엄연히 존재하는 유리천정의 모습과 학벌과문화자본의 축적된 면모들이 이 영화에서는 그녀들이 대면하고 싸워야 할 모습으로 보여진다. 그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뜨거운 열기 속에 구워지는 토기의 외면을 뚫고, 은빛 탄환의 옷을 입고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가는 그녀들의 모습은 아름답고 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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