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빛으로 그린 그림

하노이에서 서울을 읽다-나의 우파니샤드2

패션 큐레이터 2004. 8. 1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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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의 시집 '하노버 서울 시편'을 읽었습니다.

베트남이란 나라....이제 사업관계로 인해 베트남 시장을 다시 한번 돌아볼 기회를 가지게 된 지금.

대학 3학년 아주 우연한 여정으로 시작하게 된 베트남 여행의 시간들을 되돌이켜 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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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역사가 단지 뒤늦게 비교될 뿐 아니라
우리는 어제의 오늘을 보게 된다
내일의 오늘이 아니다
왔던 길도 가야 할 길도 아닌 그 중첩 속에서
비로소 길이 나고 나는 그 속으로 기분좋게 길을 잃는다
--「편안하게 길을 잃다-아침--하노이-서울 시편17

 

김정환의 글과 베트남의 여류 사진작가 리밍의 작품 속에서 희망을 위한 지금의 고통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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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억속의 하노이는 예전 트란얀 홍 감독의 '그린 파파야 향기'란 영화를 통해 만났던

이국적인 향취와 매력으로 가득한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한국과 베트남의 수교가 복원되고 새롭게 관계들이 정립되던 때....

 

제 기억속의 베트남은 슬픈 과거의 기억을 잊고 새로운 희망을 위해

열심히 뛰는 땀냄새 가득한 남새스러운 풍경으로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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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에 의해서 미화와 계몽 그리고 끊임없는 반역의 이미지로 찍혀버린 그들의 도시.

아마도 하노이는 이러한 상징적 폭력속에 겨울의 나목으로 버려진 곳이었을 겁니다.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저항은 바로 지금 이곳......하노이에서 새롭게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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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발 비행기가 하노이에 도착할 즈음 창문 밖 구름
아래로 위험한 지도가 편안한 산맥이 되고 은하수가
사람 냄새 물씬한 강이 되고 정겨운
마을이 되는 풍경을 바라보며 아 이런 곳에서 어떻게
반제국주의 100년 전쟁이...... 그것도 승리를......

그랬었는데 하노이발 비행기가 뜬다 오후 두시
듀앗이 준비한 전통 대잎 도시락은 실하지만 ‘통관이 될까. 검역을 할 수도 없고 말야.’

도시락은 도시락이지만 나는 정치적, 이란 말이 아까워서 까먹지 못하고

여행배낭 속에 꽁꽁 쟁여놓으니 밀수꾼이 따로 없다.

하지만 이젠 알겠지. 정겨운 마을이 편안한 산맥이 되고 사람 냄새
물씬한 강이 위험한 지도가 되는 이륙하는 상공에서
정겨운 것은 얼마나 아픈 것인지 물씬한 것은 얼마나 슬픈 것인지.

 

김정환의 눈에 비친 하노이는 서울에 대척점이 아니라 오히려 타자로서의

나를 반영하거나 비추어 주는 거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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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가야 할 시간의 길이가 더 큰 곳....

바로 이곳 베트남은 이제 과거의 육중했던 역사의 무게를 벗고 관계의 깊이를 향해 달려가는 곳이었습니다.

인구 7천만의 도시 베트남.....우리가 바로 이 나라의 지정학적 무늬의 삶에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그들의 미래가 마치 통일 조국 한국의 이미지와 닮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이유로 그들또한 한국의 발전방향과 성장의 모델들을 따라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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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겨운 마을이 편안한 산맥이 되고 사람 냄새 물씬한 강이 위험한 지도가 되는
이륙하는 상공에서 정겨운 것은 얼마나 아픈 것인지 물씬한 것은 얼마나
슬픈 것인지. --「상공에서--하노이-서울 시편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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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고단함과 불투명성....아직은 확실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

우울함으로 가득할 수 있는 이 세계를 돌파하기 위해 환하게 미소를 지어내는 베트남 청년들의 의기충천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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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바로 이러한 삶의 주변부에서 그들의 중심으로 편입되고 있는

사회적인 힘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각자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삶이란

자신의 초상화를 아련하게 그려가고 있으니까요.

 

조금전에 언급했던 트란얀 홍 감독의 '그린 파파야 향기'란 영화 만큼 사실 베트남에 대해서

 잘못된 인식을 박아주는 영화도 드물지 싶습니다. 프랑스 교육을 받은 감독과 프랑스 영화의 스텝들 불어자막......

그리고 프랑스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철저하게 미학적인 스튜디오.

 이것이 사실 그린 파파야 향기라는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이지요.

 

뿌리가 없기에 부박한 미적 상상력만이 가득한 영화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트남에 대한 프랑스식 몽상과 수사학으로 이 영화는 가득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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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눈깨비 내리는 길을 걷는다 파사드는 화려하지만 70년대 박정희 없는 경제개발의 뒷골목을 걷는다. 

여름장마 냄새 찌든 지하 생맥주집 삶은 계란 구멍가게와 노래방의 낙후한 네온사인이 신생하는 키 낮은 살림집과

서비스 업종의 음습한 경계를 걷는다 진눈깨비 내리고 회고는 음탕하지.....김일성 없는 평양도 걷는다.

-대한, 하노이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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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정환은 하노이의 거리에서 우리의 과거를 떠올립니다. 이같은 겹쳐읽기는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각자가 비추어볼 거울을 우리에게 만들어 주는듯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가져가야 하는 것은 무거운 과거의 상처가 아니라 희망에 대한 포기하지 않는 믿음이며

관계의 확장이라는 것이겠지요.......아마도 이번 겨울에 하노이에 다시 한번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 같습니다.

그때는 제대로 된 몇컷의 사진을 남겨 올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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