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빛으로 그린 그림

현실의 무게를 넘어-달리를 만나다

패션 큐레이터 2004. 7. 22.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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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친구와 함께 예술에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살바도르 달리전을 다녀왔습니다.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에서 그의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매력은 현실의 무거운 하중으로 부터의 탈출과 더불어 현실을 '달리' 생각하는 그의 응시의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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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바로 이러한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의 회화에 대한 사진적 오마주(경배)를 보여주는 작품을 찾아보았습니다. 미카엘 도조체프의 사진을 읽는 시간을 가져 보겠습니다. 신진작가군에 들어가는 도조체프의 작품은 회화적으로는 달리와 마그리트적 전통을 이어가고 있고 사진적인 계보로는 다음 시간에 이야기해갈 조엘 피터 위트킨과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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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관심은 온통 " 삶은 하나의 회화와 같다. 운명이란 붓터치를 통해 그려지는 삶의 양상들을 자신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싶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사진속에는 달리가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았듯이 무의식적 상태에 대한 사진적 변용들이 꽤 많이 눈에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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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자들의 미학이란 모순된 사물을 선택함으로써 우리들로 하여금 모두 긴장 속에서 서로가 역반응을 일으키는 대립물 속에 던져져 있음을 깨닫게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정신사적 선구자들은 이성의 굴레에서 벗어난 자유로워진 영혼이 인간이성에 의해 지배 받는 합리성을 대신하여 모순과 갈등에 대한 가장 진실된 예술표현의 원리를 두고 그것을 심화시키려 하였지요. 무한한 상상력에 의한 행위, 이것은 결국 인간해방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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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분명 초감각적이고 초현실적인 방법으로써 결코 기존의 예술의 한 형식으로는 대신할 수 없는 암시와 긴장감 속의 일치를 추구하려 했으며, 무질서한 세계에 질서를 갖춰 주고자 하는 노력의 시도는 그들에게는 조화를 향하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초현실주의의 거장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 ~ 1984, 스페인 출신의 초현실주의화가)는 영원한 진실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인 ‘눈의 속임수(From pel’oeil)’적인 환상의 극대화로 비합리적이고 환상적인 사고를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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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현실주의는 확실히 극단적이 환상의 세계를 현실과 일치시키고자 하는 행위입니다. 내적 세계와 외적세계와의 화해, 의식과 무의식과의 화해, 자연주의와 비자연주의와의 화해를 원하며 요컨대 그들의 행위는 조화된 부조화의 현실체계를 다시 조화 자체에는 무관하게 짐지워졌는가에 대한 이유를 밝히려는 자발적인 몸짓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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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1월 29일 초현실주의 선언문에 의하면 “초현실주의는 새로운 표현수단도, 과거의 것보다 더 간단한 것도 아니고 또 시대의 형이상학은 더욱 아니다. 초현실주의는 정신세계와 또 이와 유사한 모든 것의 완전한 해방이다”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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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세계는 일견 조화스러운 듯 하여도 극히 비합리적이며 조화스럽지 못합니다. 이런 모순은 때때로 모순 그 자체이기도 하지요. 이런 사실에 대한 인지가 20세기 초 초현실주의 선언문에 나타난 ‘정신체계의 해방’을 의미하며, 마니에리즘이 20세기에 와서 다시 평가되어지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가 여기 있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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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인류문화사에 고전주의라는 인간이성이 지배하는 절대적인 미에 대항하는 정신혁명을 마니에리즘과 초현실주의는 묵묵히 행하였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기존형식으로는 현실세계를 항상 ‘암시’만할 뿐이지 설명할 수는 없다는 긴장감을 낳음으로써 고전주의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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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현실주의가 외적인 현실과 내적인 현실의 일체화를 그 최고 목표로 한 이상, 이성과 비이성이 융합되어진 즉 일체화 되어진 세계의 본질이란 의미는 마니에리스트들이 암시하고 있는 기이하게 왜곡되어진 세계의 동시적 공존이 그 본질이며, 서로 다른 양식적 요소들 사이의 긴장감과 모순 속에서 만이 가장 순수하게 표현된다는 의미와 같은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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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진속에는 현실에 대한 단순한 도피가 아닌 내 안에 있는 현실과 밖으로 드러난 현실간의 화해를 꿈꾸는 인간의 욕망이 보여집니다. 어찌 보면 너무나도 살벌하고 어려웠던 시대. 죽음과 비이성이 판치던 시대의 산물로 나온 초현실주의는 현실에 대한 희망을 몸으로 가지지 못했던 세대들의 상처로 가득한 소산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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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같은 사람이 있다. 편안히 숨쉴 땐 있음을 알지 못하다가 숨막혀 질식할 때 절실한 사람이 있다. 나무 그늘 같은 사람이 있다. 그 그늘 아래 쉬고 있을 땐 모르다가 그가 떠난 후 그늘의 서늘함을 느끼게 하는 이가 있다.

이런 이는 얼마 되지 않는다. 매일 같이 만나고 부딪는 게 사람이지만 위안을 주고 편안함을 주는 아름다운 사람은 몇 안 된다. 세상은 이들에 의해 맑아진다. 메마른 민둥산이 돌 틈을 흐르는 물에 의해 윤택해지듯 잿빛 수평선이 띠처럼 걸린 노을에 아름다워지듯 이들이 세상을 사랑하기에 사람들은 세상을 덜 무서워한다
.

조재도의 아름다운 사람이란 시를 읽었습니다. 현실의 무게를 감내하고 싶었던 초현실주의자들에게 이제 우리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가을 미풍의 서늘함과 수평선의 아름다움과 위안과 편안함....이 모든 것들이 인간에 대한 믿음으로 부터 나온 다는 것을 그리고 이러한 믿음이 우리를 이 버겨운 현실의 무게로부터 해방시킨다는 것을......

 

한주의 반이 지났습니다. 오늘 하루도 행복 가득 하세요

들으시는 곡은 쇼팽의 녹턴 중에서 Nocturnes: No. 9 Op. 32/1 in B: Andante Sostenuto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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