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마음 미술관

당신에게 스며들어 갈때......

패션 큐레이터 2006. 12. 28. 21:14

 

박영호

통과하며 흐르다

구멍낸 한지에 아크릴채색_83×116cm_2005

 

오늘 한해를 장식하려는 듯

어마어마하게 추운 한파가 코트의 깃살 속으로 파고들었던 하루였습니다.

집에 돌아와 따뜻한 물에 몸을 담구니, 머리가 핑하고 돌기까지 합니다.

어느해보다 따스했던 성탄의 시간을 뒤로하고

한해의 상처들을 한꺼번에 빙결이라도 시키려는듯, 추위는

이제 우리 곁에서, 지나가는 시간의 겹들을 막고 서 있습니다.

 

 

통과하며 흐르다

구멍낸 한지에 아크릴채색 41×53cm 2005

 

올해 마지막의 시간 속, 읽어볼 작가는 박영호라는 화가의 작품입니다.

이 분은 항상 생명과 삶이라는 질기지 질긴 우리내 소재를 천착하면서도

자신만의 색채를 덧입혀, 과정 속 우리의 삶의 테두리를 그려냅니다.

'통과하며 흐르다'란 말의 풍경이 우리의 삶의 테두리를 넘어가고

그 무게가 생의 저변속에 깊게 패어있는 상처의 속살로 스며들어 가며

이 생 앞에서 아직은 서 있고, 서 있을수 밖에 없는 우리들을 보여줍니다.

 

 

통과하며 흐르다

구멍낸 한지에 아크릴채색 32×41cm 2005

 

오늘은 맹자의 '진심'편 상 부분을 읽었습니다.

 

'바다를 본 적 있는 사람은 물을 말하기 어려워하고, 성인의 문하에서 공부한 사람은

언(言)에 대해 말하기 어려워 하는 법이다. 물을 관찰할때는 반드시 그 물결을 바라보아야 한다

일월의 밝은 빛은 작은 틈새도 남김없이 비추는 법이며,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작은 생의 웅덩이와 구덩이와 마주하게 됩니다.

이런 구덩이(科)는 과정이자 생을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하는 아름다운 풍경이기도 하지요

이것을 넘지 않고 다른 구덩이를 향해 갈수는 없으니까요

 

 

통과하며 흐르다_구멍낸 한지에 아크릴채색_128×190cm_2005

 

그만큼 품성을 닦고, 무언가를 익히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론 또 다른 풍모를 봅니다.

그것은 스며들어 전면으로 나서는 일입니다.

 

화가는 캔버스에 작은 구멍을 뚫어 뒤에서 물감을 밀어냅니다.

그렇게 하면 작은 물방울들이 배면에서 흘러나오게 되지요.

바로 이때, 지금까지 서양회화를 규정해온 하나의 큰 틀, 즉 배경이란 단어가

다소 무색해지게 됩니다. 우리는 반드시 배경이란 일종의 거대한 힘 앞에

우리의 생각과 사념과 눈앞에 보였던 것을 배치시켜 놓아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그 배경엔 하나하나 구멍이 뚫리고

배면에서 스며들어 오는 물방울 같은 생의 빛깔들로 인해

또 다른 생의 색채를 가지게 됩니다.

 

 

통과하며 흐르다-부분_2005

 

생의 구덩이를 비추는 달빛

시골마루에 떨어지는 처연한 푸른 달빛은 아무리 해도 빗자루로 쓸어지는 법이 없듯

우리의 모든 생의 구덩이도 메워지지 않으면 앞으로 갈수 없다는

생의 메세지는 준열하고 무겁기까지 합니다.

 

 

통과하며 흐르다_구멍낸 한지에 아크릴채색_73×100cm_2005

 

구덩이를 넘어가는 것은 우리의 생을 다스리는 문제이고

내 안의 상처를 보살피고,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문제이며

나아가, 내 안에 또 다른 내면을 발견하고 받아들이고

더 나은 긍정항을 향해 달려가는 일이라고요.

 

배면에서 스며들어 가는 물감처럼

지난 1년동안 이 글쓰기 또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생의 준엄함을 알고 사람을 다스리고, 무엇보다 나를 다스리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알아가고, 그 과정에서 타인들에게 더욱 많은것을 베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요

한해가 가고 있습니다. 마무리를 해야 할 시간에는

철저하게 자신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지난 한해 행복하셨죠?

 

이번달 '샘터'지 1월호에 제 블로그가 소개가 되었더군요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세월이 많이 흐르다 보니 이런일도 있구나 하는

생각도 그냥 들었을 뿐입니다. 부족한 글쓰기가 되지 않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겠다고 다시 맘 먹게 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