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빛으로 그린 그림

내 영혼의 창-몸은 지상에 묶여도

패션 큐레이터 2004. 7. 5.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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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웁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영혼의 눈을 통해 우리를 둘러싼 생의 풍경들을 볼수 있다는 기쁨을 우리는 때때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무언가를 응시할 수 있다는 것이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찬연히 아름다운 것인지 우리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오늘은 멕시코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마르코 안토니오 크루즈의 연작 사진집' The Blind'에 그려진 이미지들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그가 처음 사진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바로 위에서 보시는 하나의 풍경때문이었다고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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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test march against the prohibition of street vendors. Mexico City. 1993

 

 

푸에블로시에서 시각장애인인 거리의 악사들을 찍게 됩니다. 우연하게 포착하게 된 이 이미지는 그로 하여금 다큐멘타리 사진의 중요성을 새롭게 깨닫게 하는 시착점이 됩니다. 그리고 멕시코 내의 시각 장애인들의 사회적 조건에 대한 연구를 개진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1987년 그는 멕시코 내에 살고 있는 시각 장애들의 숫자를 밝혀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떠한 공식적인 통계자료도 얻질 못했다고 하네요. 그가 다양한 신문에서 구득한 정보에 따르면 멕시코 내에만 약 40만명이 넘는 시각 장애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그는 멕시코 내의 12개의 도시에서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러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는 포토 에세이 작업을 감행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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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er physiotherapy.Rehabilitation Institute for Blind and Visually Impaired Children Olympic pool Mexico City. 1988.

 

위의 사진은 시각장애인 아동들을 위한 재활 센타에서 시행되는 수중 물리치료 과정의 모습을 담아 낸 것입니다. 치유의 상징속에 담겨진 그의 아픈 생채기들이 아물고 치유되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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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나이 6살이였을때 엄마 손에 이끌려 안과에 가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망막에 문제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밝은 빛을 보면 거의 눈을 뜨지 못하는 것 때문에 다양한 검진을 받았고 그로 인해 제 양쪽 눈에는 한달이 넘는 기간 동안 안대가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 짧은 기간 동안에도 어찌나 답답하던지 습관적으로 안대를 풀어버렸던 제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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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를 굽는 일이 마음을 빚는 일과 같다면, 우리 자신도 저마다의 삶을 빚는 도공들이 아닐까요? 마음을 어떻게 빚어야 삶의 백지를 빚는 도공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다보면, 우리 자신의 마음 속에 백자의 백색같은 고요와 숲 속같은 침묵이 배어 있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온갖 정보들의 화려한 색채처럼 난무하고, 갖은 소음들이 뒤섞이는 세상 속에서 마음을 잘 빚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것이 고요와 침묵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은 고독할 때 가장 강하고 순수해진다는 데 공감합니다.

-천양희 시인 산문집 <직소포에 들다>

 

고요와 침묵 속에서 우리를 둘러싼 현상의 미적 아름다움을 조응하게 하는 매개체. 바로 이 두개의 눈이 우리에게 주는 수 많은 감사와 상처의 이중성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배웁니다. 눈에는 두가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육체의 눈과 바로 영혼의 눈으로 그렇게 나눌 수 있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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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눈은 유리창 속에 진열된 수많은 수제 명품들과 온갖 인공적인 풍광의 형태들을 바라보게 합니다. 하지만 그 화려한 도시의 불빛 아래 디스플레이된 사물의 질서들 옆에서 자신의 삶을 위해 작은 악기를 연주하는 눈먼 연주자에겐 이미 육체의 눈은 퇴화된 형태의 일부일 뿐 그 어떤 의미도 지니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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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 센타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시각 장애인인 페트로의 모습을 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는 세상과 대화하는 법을 배워가는 듯 합니다. 세상엔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들이 많이 있으니 말이죠.  그가 그려낸 저 햇살의 풍경 속에 해를 등지고 신나게 놀수 있는 날이 꼭 오기를 바래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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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센타에서 점자를 배우고 있는 한 어린이의 모습을 봅니다. 사회적인 대화를 하기 위해서 배워야 하는 지식의 무게는 그의 어깨위에 놓여진 짐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아마도 외로움과 싸워야 하는 우리 안의 상처를 조우하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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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코마는 세계적으로 시각 장애를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제는 바로 이 트라코마가 예방이 가능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린시절에 이미 발병하긴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야 그 증상이 드러나게 되는 이 트라코마는 박테리아에 의해서 유발됩니다. 그리고 감염된 사람의 망막에서 나오는 분비물을 통해 쉽게 대인 감염이 이루어 진다고 하네요. 위의 사진은 바로 트라코마에 감염된 인도출신의 한 노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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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끄러미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속에 그들의 삶이 초로하고 곤핍한 것은 그들이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의 무게가 아니길 기도해 봅니다. 무서운 것은 그들의 냉대가 아니라 그들의 삶의 터우리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상처입니다. 

 

"They joined with the other believers and devoted themselves to the apostle's teaching  and fellowship, sharing in the Lord's Supper and In prayer"

 

현대는 공동체의 꿈이 상실된 곳이라고 말합니다. 적어도 우리가 통용하고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은혜의 떡조차도 이제는 찾아보기가 점점 더 어려워 지는 때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풍성하게 하여 서로 나눔으로써 평균이 되는 그 따스한 삶의 선지자적 전략들이 우리의 몸과 정신에 베어들어가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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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들은 요즘들어 완곡적인 언어로 표현된 장애인들의 지칭들을 듣습니다. '장애우'라고 우리는 그들을 부릅니다. 그들은 우리의 친구라고 사회적인 수사학은 명명하지만 실제로 일상의 차원에서 우리들은 그들의 곁에 있지 못합니다. 다만 그의 길을 안내하는 맹인 안내견만이 그의 외로운 친구일지도 모릅니다. 이럴수록 우리는 서로의 필요를 나누며 서로의 짐을 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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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알레한드로 씨는 시각 장애인이지만 버거킹에서 조리장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의 숙련을 통해 시각장애는 극복되고 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지만 여전히 시각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인 냉대와 취업상의 불리함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사회적 풍경입니다. 사회적 학습은 물질적 부와 성공에 대한 배움만을 포함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존귀할 수 있으며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고통속에 놓여진 인간의 상처를 서로 껴안을 수 있을 때라야만이 가능한 것임을 다시 한번 배워가는 우리가 되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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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속에 남자는 지금 아코디온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둘러싼 풍광의 아름다움을 보지는 봇하지만 그는 온전히 그의 상상 속에 펼쳐지는 아름다움을 현과 음을 통해 채워가고 있습니다.

 

한밤 짐승이 되어 울까 눈물 가득 꽃이 되어 울까 광야에 웅크려 하늘을 본다 몸은 지상에 묶여도 마음은 하늘에 살아야지 이 가지 저 가지를 헤매며 바람으로 울어도 영혼은 저 하늘에 별로 피어야지 절망으로 울던 마음 그 가난도 찬연한 아픔으로 천상에 빛나야지 광야에 웅크려 다시 하늘을 본다. 잎새에 빛나는 별빛이 눈물 가득 꽃이 되어 울까 한 마리 짐승이 되어 울까

 

이성선의 시를 읽는 새벽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내면의 울음으로 저를 이끌어갑니다. 희망을 본다는 것은 바로 보이지 않는 불확실을 완전히 내면속으로 끌어들여 나의 확실성 위에 덧입혀 가는 과정입니다.

비록 우리의 몸은 지금 지상에 묶여있지만, 우리의 시선또한 그러하지만 언젠가 시간이 되면 저 하늘의 별로 피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것. 그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음을 잊지 않는 우리가 되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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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수정체가 흐려져서 시야각을 상하게 할 정도로 손상될때 흔히 이것을 '백내장'이라고 부릅니다. 눈의 수정체는 바로 우리의 시야로부터 다양한 거리에 놓여진 대상에 촛점을 맞출수 있도록 하는 구조이지요. 시간이 지나면서 이 수정체가 투명함을 잃고 불투명의 빛깔을 가져가게 됩니다. 바로 이때를 백내장 이라고 하지요.

 

멕시코 정부에서 빈곤층 서민들을 위해 3일간 원형 극장을 빌려 대규모의 백내장 치료 캠페인을 벌리게 되는데요. 위의 사진은 바로 그 때의 모습을 담은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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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 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겨울밤은 깊어서 눈만 내리어 돌아갈 길 없는 오늘 눈 오는 밤도 하루의 일을 끝낸 작업장 부근 촛불도 꺼져가는 어둔 방에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절망도 없는 이 절망의 세상  슬픔도 없는 이 슬픔의 세상 사랑하며 살아가면 봄눈이 온다 눈 맞으며 기다리던 기다림 만나 눈 맞으며 그리웁던 그리움 만나 얼씨구나 부둥켜안고 웃어보아라 절씨구나 뺨 부비며 울어보아라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 봄눈 내리는 보리밭길 걷는 자들은 누구든지 달려와서 가슴 가득히 꿈을 받아라 꿈을 받아라 .

 

-이정하의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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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도 이들을 절망의 상태속에 놓여진 존재라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이는 없습니다. 그들은 지금 '일시적으로' 이 상처난 삶의 숲속에 던져져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손을 잡으면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음을 그렇게 집요하게 믿고 싶은 하루 입니다. 

 

오늘 들으시는 곡은 케니 지의 연주로 듣는 'Loving You'입니다.  4년이 넘는 시간동안 칼럼을 써오면서 함께 하지 못했던 것들이 참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일에도 서툴렀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래요....시간이 나아지면서 항상 변하지 않는 것은 없겠지만 적어도 이 곳에서는 여러분을 응시하는 내 시선의 빛깔들이 은혜와 감사 속에서 영글어 가길 바래봅니다. 여러분....사랑합니다.....행복한 한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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