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이 공간에 들어옵니다
자발적인 귀향이라는 여행의 푸른물감빛이 몸에 가득하게 베어날때쯤
이곳에 돌아왔지요. 글을 쓰는 것 조차도 다소 생경하게 느껴집니다.
디카를 들고 다니면서 수많은 풍경들을 담고 언젠가는
블로그에 올려야 겠다는 강한 욕망, 사실 여행이란 환타지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정작 책과 사진을 통해 본 그곳에 갔을때 남는 일종의 배신감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결국 여행은 장소의 문제가 아닌 내 마음의 풍경을 반영하는 거울을 닦아내는 일인 것이지요
정작 사진을 찍다보면(블로그를 위해서) 정말 보아야 할 것들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이 살고 있는 일상의 위대함을 잊고, 환타지 속에서 보았던
유명한 장소들의 모습만 담는 경우가 많아 지는 것이지요
친구가 살고 있는 라데팡스는 파리의 외곽에 있습니다.
과거의 시간속에 살고 있는 듯한 파리의 풍경에 비하면 이곳은 새로운 개념의
도시형태입니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기념해서 새워진
대개선문은 바로 이러한 새롭게 빚어지는 프랑스의 시간성을 보여주는 일종의 상징입니다
파리를 동서로 횡단하는 지하철 1호선의 서쪽 끝역이 La Defence 역입니다.
유명한 개선문의 꼭대기에서 바라보면 루브르 쪽의 카루젤의 개선문과 라데팡스
의 대개선문 (Grand Arch 그랑 아쉬)는 일직선상으로 보이지요. 마치 카루젤의 개선문은
프랑스의 과거, 개선문은 현재, 라데팡스의 대개선문은 미래를 상징하듯
서로는 마치 시간의 입자들을 기억의 아교질로 접합하듯
충실하게 묶여 있습니다.
여인이 태아를 임신할 조짐을 보일때를 가리키는 고유한
우리 말중에 '이슬이 비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고전적인 파리의 풍경에서 바라보는 전망 속에서 신개념의 도시는
여인의 뱃속에 가득히 고여가는 이슬처럼 세계화의 풍경을 담아냅니다.
스타벅스가 언제 프랑스에 들어왔는지를 배우게 하는 곳이기도 하니까요
두번째 사진 속 조형물이 바로 한국의 조형예술가 임동락 선생님의 작품입니다
바로 프랑스 파리의 신개념 도시에 한국작가의 작품이 영구 전시된 것인데,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동양과 서양의 이질성을 넘어, 사유의 형태를 빚어내는 조형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사실 이번 파리 여행은 날씨도 춥고 비가 자주 왔습니다.
예전 같으면 싫었을 그 날씨의 행태들이 싫지 않았습니다.
결국 여행은 비오는날에도 꿋꿋이 잘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기 위해서인지도 모르니까요. 호기심은 이제 장소가 아닌 사람의 마음을 향해 갑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많은 것을 보려고 했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파리를 간다하면 루브르를 가고 오르세를 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모나리자 앞에서 두리번 거리다가, 오르세에선 르느와르 앞에서 나보다도
키가 큰 외국인들 사이에서 열심히 디카를 찍습니다. 사진을 찍다보면
유장하게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을 놓치고 맙니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에서 존 러스킨이 이러한 흐름을 포착하기
우리에게 알려주는 기술이 바로 사진찍기 대신 '데생'을 하는 것입니다.
여행이 아닌 관광이 되어버릴때,
여러분은 이런 생각이 들지 않으셨는지요? 몽마르트에 있는 이 성당을 가도
여행일때는 유연한 움직임이 나를 조율하지만 관광이 될때는 시간 안에 뭔가를 보고
사진을 찍고 증명사진을 더불어 찍게 됩니다.
예쁜 풍경을, 아름다움 경관을 소유하고 싶어서
디지탈이란 기억의 풀위에 덧칠해 보지만, 정말 내 안에는 충만함이 없습니다.
사실 저도 이런 경향이 강했던 편입니다. 예전에는 여행을 자주 다녀도 사진을 많이
찍질 않았습니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뭔가를 알려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들이
일상의 다양함을 간과하는 행태로 내 몰게 되었음을
이것이 습관처럼 내 안에 물들어가고 있음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저를 깨워준 사람은 다름아닌 제 친구입니다.
끊임없이 설명보다는 '느껴보라'고 독촉한 제 친구가 고맙습니다.
느낀다는 것은 시간의 움직임을 몸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그녀는 제게 크루즈와 값비싼 기차여행 대신 걸으며 배울수 있는것
찍을수 있는 것, 확인할수 있는 것을 가르칩니다.
세상은 이렇게 느끼는 사람을 통해 '어렵게 설명하느라 놓치는 것'이 많은
이 우둔한 여행자의 영성을 깨웁니다.
파리에서 몽마르트를 가지 않는 사람은 없을테지요
예술가들이 즐비하게 자신의 세계를 그리는 곳, 까딱 잘못했다가
또 디카나 찍으면서 보내버릴 수 있었던 이곳에서 흐린 비오는 날
걷기를 통해 느린 풍경을 렌즈에 담아보게 됩니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한때 모여서 자신의 그림을 그렸던 이곳도
이제는 턱없이 올라가는 집값을 견디지 못해 외곽으로 예술가들은 �겨나고
새롭게 등장하는 신계층들이 이곳을 채워갑니다.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리며 일상의 먹거리를 해결해가는
가난한 예술가들의 보헤미안적 풍경이 아직은 살아있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예술가의 풍경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버리고 싶었고
새롭게 짐을 싸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정말 제 자신이 되어 세상을 살아가고 싶더군요
어떤 회사를 다니고 어떤 학벌을 가지고, 얼마만큼의 재산을 가지고 있고
잘 나가는 누구가 되는 것보다도 중요한것이 있음을 확인합니다.
무엇보다도 사랑을 얻어서 행복합니다.
나의 내면이 얼마나 많은 허영으로 가득차 있었는지를
배울수 있었던 여행입니다. 30대 중반이 되어 무엇을 채우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를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 배웁니다. 그 사랑에 고맙고
행복합니다
바람이 일어서서 성급히 달려든다
하늘은 온통 회색 밤 바다되어
어둠의 줄기를 쏟아 붙는다
차창에 부딪히는 짙은 먹구름 뚫고
얼리설리 찾아든 몽마르트르 언덕엔
희뿌연 성당의 종탑뿐
흐려진 오색 불빛 아래
카페의 낭만은 수줍음 띄우고
깊은 바다속으로 침몰하고 있다
청록빛 미소띄운 바람이 눈뜰때면
둥근 님 목소리 허공에 매달고
추억의 언덕 길 넘으렵니다.
정찬우의 '몽마르트르 언덕' 전편
이번 여행에서는 파리의 많은 미술관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오르세와 오랑주리, 마르모탕, 로댕 미술관등이 있고요
이탈리아로 가면 드디어 르네상스의 본산지인 피렌체와 베네찌아의 르네상스를
본격적으로 설명하고 읽어갈 겁니다. 하지만 좀 더 다른 방식의 그림 읽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여행을 통해 익힌 것들을 나누는 시간이 되어야 할테니까요.
부재의 시간을 메우는 희망은 바로 이곳에서 여전히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에 대한 믿음입니다. 거리가 먼 곳에서도 혹은 혼자 있어도 흐트러지지 않으며
혹은 흐트러져 있어도 자유로운 정신을 견지하는 여행자가 되는것
그러한 이의 눈에 비추인 그림들을 읽어가는 것
이 모든 시간을 주신 내 안에 계신분께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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