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해를 등지고 놀다

피사에서....구부러짐의 여유

패션 큐레이터 2006. 8. 26. 02:11

 

 

파리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이탈리아 기행의 첫날

부산하게 아침 일찍 오를리 공항에서 피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갈릴레이의 이름을 따 지었다는 공항에서 우선 피사의 사탑을

보기로 마음을 먹었지요

 

푸른색 물감을 가득 풀어놓은 듯한 여름하늘, 색조의 조화를 위해

조금씩 뜯어 붙여놓은 듯한 우윳빛 구름의 형태가 아름답게 눈에 들어옵니다

짙은 초록과 연두의 벽면, 투란도트의 나라답게 공항 전면의 파사드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풍경들이 아로새겨 있습니다.

 

 

아침일찍 도착한 피사에는 사람이 없이 한적해서 아주 좋았습니다

초록빛 잔디들의 투영 속에 회벽으로 지어진 두오모와 미술관, 그리고 사탑, 이 세가지의

형상들이 서로에게 대화를 하듯 때로는 가깝게 때로는 서원하게

서늘한 거리의 환영 속에 놓여 있습니다. 아침의 시간에는 카메라에  포착되는

모든 물상은 적은 빛온도로 하여금 짙은 청색의 필터를 끼워 찍은 듯한

느낌이 가득하게 들어가지요.

 

초록빛 넓은 마당을 뒤로 회색빛 두오모의 벽면위에 깊어가는 여름의

강한 햇살은 짙은 초록빛 사선으로 낙하하며 벽의 거친 질감을 어루만집니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짙은 구름빛 아래 올곧게 서있던 두오모는 그 우아한 형태의 미감을

드러내며 여행객의 귓가에 자신의 얼룩진 시간을 이야기 하는듯 합니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집들이 마주한 작은 골목길의 풍경입니다. 온기 가득한 따스함의 정체성으로

드러내는 것은 무엇보다도 햇살 아래 반영되는 벽면의 빛갈들 때문입니다.

적황색과 짙은 벽돌색, 코발트빛, 이모든것들이 일종의 순열조합처럼 바지런히

늘어져서 주변의 형태를 규정하고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는 점이죠

 

 

 

시간의 흐름속에서 지워져가는 기억의 빛깔처럼

피사와 베니스에서 만난 모든 집들의 벽면들은 대지의 빛에 자신의 존재를 던져

짙은 숙성의 시간을 걸쳐 걸러낸 질감의 빛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종종 살이 빠진 회청색 창문과 황토빛 갈문 사이로 드문 드문 삐져 나온 철제들이

생에 대한 유적한 흐름과 치열하지 않은 풍경을 그려냅니다.

 

코발트 블루빛 하늘 아래 버건디풍의 벽면과 그 여백을 메우는

갓 데쳐낸 아스파라거스의 청신함을 느끼게 하는 창문

그리고 그 옆에는 우리내 조선의 치자빛이 연상되는 노란색의 향연이

가득하게 여행객의 시선을 뭉갭니다

 

여행하는 동안 끊임없이 읽었던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편을 들먹거리며

나 또한 존 러스킨처럼 사물의 일상성과 작은 편린들을 자세하게 관찰하며 이 이국의 하늘속

망막에 비추인 풍경의 미를 소유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존 러스킨은 아름다움을 소유하기 위한 5가지 방법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움이란 심리적인 동시에 시각적으로 정신에 영향을

주는 수많은 복잡한 요인들의 결과물이며, 사람들에게는 이에 반응하고 그것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 사실상 우리가 명승지를 가서

그 유명한 벽면에 우리 이름을 살짝 그리거나 남기는 것 등은 저급한

소유에 대한 욕망의 표현이라는 점이지요.

 

저번에도 이야기했듯 데생 도구들을 챙겨가지 않은 것은

이번 여행의 큰 실수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아름다움 앞에서 입을 벌리고

눈을 뜨고 있으나 실제로는 이 풍경을 살피는 법에는

상당히 모르쇠로 일관했던 우리내 들의 관성을 살펴보는 데는 데생 만큼

좋은 것이 없지요.빠르게 불현듯 지나가는 인상을 에스키스로 표현하는 것도 좋고

우리의 손으로 인상에 박힌 것들을 재창조 함으로써

풍경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해 느슨하면서도 여유있는 생의 이해를

득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부드러운 직선과 곡선의 만곡함이 대지를 메울때

피사의 사탑은 땅의 힘에 일그러진 압력에 눌려 자신의 머리를 살짝 기울여

용서를 구합니다. 갈릴레이가 시험했다는 중력의 힘에 의해

스스로의 질서를 포기했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중세때는 저 두오모의 종 소리 속에

모든 인간들은 회합과 이별을 맞이했으니까.

 

斜塔 하나 서 있다.
서서히 기울고 있다.
처음엔
조금씩 조금씩 어깨가 기울더니
척추까지 기울었다.
목에 비뚤어진
무쇠의 추가 달렸기 때문이다.
비뚤어진 무쇠의 추가
짓누른다.
커피를 마실 때도,
잠을 잘 때도 양치질을 할 때도
/기/울/고/ 있/다. /기/울/어/지/면/서
비스듬히 비스듬히
서 있다. 기우는
전신으로 버티고 있다.
무거운 육신을 겨우
겨우 버티는 鐘樓,
이제는 녹슬어 버린 종마저 내리고
거기 그냥,
풀밭이거나 자작나무숲 어디쯤에
눕고 싶은 사람,
녹슨 종을 매단 채 서 있다.

 

이건청의 '피사에 사는 사람2 전편

 

 

일종의 질서감을 자아내며 살짝 하늘을 향해 열린

창문을 보며 당시 닫혀 있던 내 마음의 그물을 하늘 위에 던져봅니다

저 인디라의 하늘에는 우리를 엮는 수많은 구슬들이 있다고 하지 않았는지요

 

하늘빛과 어울린 집들의 남새스러움과

땅의 빛깔이 여전히 인간적인 것은 우리가 땅에서 태어나 죽어가는

존재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창가를 보니 누군가를 위해 준비한 듯한 선물이 놓여진 창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곱게 리본으로 사면의 육체를 가득 둘러놓은걸 보니

그 속에 묻혀 있는 꽃의 이름이 더욱 간절해 지네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아침의 시간에

진한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십니다. 그것을 먹어야만 아침의 순간들이

길항을 멈추고 하루를 위한 자신의 시스템 속으로 용해되어 가는가 봅니다.

 

점점 친구를 닮아갑니다. 예전에는 녹차를 많이 마셨는데

역시 이국에선 한국의 녹색빛이 저 먼셀 색상환을 규정하는 하늘 빛과

그리 어울릴것 같지 않았습니다. 차 한잔의 여유로 열어가는 이 아침이 감사하고

따스한 차 한잔의 기운이 목을 타고 사글어 들어간

내 영혼의 공간으로 넘어들어갈때, 역시 생은 유장하게

내 옆에서 흐르고 있구나 하고 느끼게 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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