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브 클림트
'희망' II, 1907/8년
캔버스에 유채 및 금채,110 x 110 cm
뉴욕 근대 미술관
요즘 책 쓰는 일로 인해 제대로 블로그란 공간을 채우기도
쉽지가 않네요. 글은 항상 한결같아야 하는 것이고, 변함없어야 하는 것인데
그렇게 말은 하면서도 속으로는, 이번일이 끝나면 더욱 잘해야 겠다 하고
또 그렇게 다짐해 봅니다.
블로그 쓰시면서 책을 출간한 분들 보면 뭐랄까
하나같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뒷심의 부족이랄까.....
한권의 책이 되고 나면 거의 잊혀지는 공간이 되거나 칼럼을 접거나 하는 것을
꽤 많이 보았습니다.
글은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청신한 마음과 내 목소리가 담겨 있어야 하고
거기엔 나만의 사연이, 구성진 노래가, 희망에 대한 변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고 믿어왔습니다.
자본의 땅에서,무기의 땅에서,소비의 땅에서,
불에 그을린 검은 얼굴의
대장장이를 만나는 일은 즐겁다
전기 풀무에 가스불에 무쇠를 불어 그가 내리치는 것은
괭이 낫 도끼 같은 한물간 것들이지만 과거도
텅텅 두들기다보면
날이 서고 단단해진다
찬물에 차르륵 제 가슴의 불덩이까지 식히며
내리치는 망치 소리,무쇠가 물과 불
사이를 오가며
벼리듯이 우리 생의 절망들도 저리 녹여
두드리면 단단한 희망이 되지 않겠는가 생각하며
오늘도 현대식 대장간 앞을 지난다
주용일의 시집 '문자들의 다비식은 따뜻하다' 중에서
희망을 두들기는 대장장이 전편
글은 항상 희망을 두들기는 대장장이가 되어야 한다고 그렇게 믿으며 살았습니다.
클림트의 그림 속 희망을 볼때마다, 현란한 색채와 색의 논리 속에 여전히
오롯히 숨쉬는 희망의 원리를 봅니다.
사실 뉴욕이란 공간처럼.....참 삭막한 곳도 없지 않나 하고
몇번을 생각했었지요. 자주 갔지만, 갈때마다 항상 뒤끝이 씁쓸한 곳
어찌보면 서울의 모습과 가장 많이 닮은 곳, 미술관을 갈수 있다는 즐거움을 제외하곤
사실 저는 그곳에서 별로 행복했던 적은 없습니다. 뮤지컬을 보는 것도 이제는 좀 진부하고요
뉴욕 근대 미술관에 걸린 이 그림을 보면서
아....이사람들, 그래도 여전히 희망에 대해서 믿는구나....
9.11 이후 그라운드 제로를 가보았을때도 그랬고요
항상 겉으로 드러나는 부산함으로 희망을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뒷골목에 존재하는 폭력과 상흔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견고한 모든 것들을 대기 속으로 용해하는' 희망의 시선이 있는 도시로구나
그렇게 믿어보게 된 것이죠.
구스타브 클림트
'희망 1' 1903년
캔버스에 유채,189 x 67 cm
캐나다 국립 미술관, 오타와
황금빛 채색이 캔버스에서 희망의 연금술을 만들어 낼때
우리는 다시 한번 버겨운 생의 무게를 버텨낼 힘을 찾아 먼 여정을 떠납니다.
정말이지 요즘들어 독자분들에게 죄송한 마음 금치 못합니다
하지만 책을 다 쓸때 까지는 함부로 이 곳에서 힘을 낭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느낍니다. 사실 저는 이곳을 운영하고 관리하는데'
참 많은 힘을 들이며 살거든요. 그 힘을 이제는 통제해서
지면으로 실리게 될 텍스트에 실어야 할때가 왔나 봅니다.
사실 책을 낸다고 뭐 달라질게 있겠나 생각합니다.
그 책을 기반으로, 더 나은 심도깊은 주제의 이야기들을
이곳에서 펼쳐갈 것이고, 그것은 이제까지 써오지 않았던
미술의 한 분야를 아주 특히한 부정과 긍정의 시선으로 읽어갈 테니 말이죠.
많이 부족하더라도 지금까지 보여주신 애정 잊지마시고
먼 여정 떠나는 나그네에게 지친 목마름에 힘들지 않도록'희망의 물 한모금'
주신다면 힘을 내어 이 경주를 다 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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