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독일 출장이 잦아 지면서
독일의 다양한 도시들을 가 보았습니다. 하노버와 슈투트가르트, 뮌헨과 하이델베르크
그리고 베를린.....독일 이란 나라가 갖는 매력은 이 도시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만만치 않은 역사와 그에 걸맞는 미술관들의 소장품이지요.
작년 쾰른에 갔을때 들렀던 루드비히 미술관
물론 발라프 리하르츠 미술관에서 본 수많은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의
그림들 속에 묻혀 행복감을 얻었던 시간들을 되살려 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쓰고 있는 '내 영혼의 갤러리'는 기본적으로
옛그림들을 다룹니다. 중세에서 근대의 인상주의까지 한정을 짓고
시작한 글쓰기였지요. 오늘 소개하는 두개의 미술관 그 중에서도 루드비히는
독일에 있는 현대미술관 중의 최고라고 할수 있는 소장품들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세계의 미술관들을 가보는 것을 취미로 하지만
그 중에서 유럽미술의 4대 현대미술관을 뽑자면 파리의 퐁피두센타
암스테르담의 슈테델릭 미술관, 스위스의 바젤 미술관과 바로 위에 보시는 루드비히입니다.
로이 리히텐 슈타인
'음...아마도(M..Maybe) 1965
캔버스에 유채, 152*152
루드비히 미술관
팝아트의 거장 로이 리히텐 슈타인의 작품들을 볼수 있는 소중한 기회들이 주어졌습니다.
사실 그 유명한 팝아트란 것도 그 시작은 다소 유머러스한 풍경이 아닐수 없습니다.
아빠가 추상화가라고 자랑하고 다니는 아들과, 그의 말에 대해
그림을 못그리니까 맨날 추상이나 그리지...라고 놀린 아이들과 열받은 아들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그 당시 유명했던 미키 마우스의 그림을 그려 몇개의
말풍선과 함께 그려낸 것이 바로 이렇게 히트를 치게 될지는
사실 그도 몰랐을 터일겁니다.
생활 속 숨어있는 익숙한 이미지들이, 흔히 대중적인 양식의 아이콘들이
그의 그림 속에선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기도 하고 그대로 모사되지만
'생활의 발견'이라는 충격을 보는 이들에게 주었던 것이죠.
앤디워홀의 '브릴로 상자들'
미국에서의 팝아트는 앤디워홀, 리크텐스타인에 의해서 본격화되지요. 미국의 팝아트 예술가들은 밝은 색채와 단순화한 디자인
간혹 공통적으로 채택되는 주제로 느슨하게 묶여져있었습니다.
앤디워홀은 “사업을 잘하는 것은 예술의 가장 매혹적인 측면이다. 좋은
사업은 최상의 예술이다”라는 충격적인 고백을 합니다. 솔직히 그래서인지 저는 사실 이 작가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물론 생활의 발견이라는 일종의 신화를 만든것에 대해서는 존경을 표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양산한 또다른 생활의
발견의 이미지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일침을 가하는 논리이거나 작품인가에 대해서는 조금은 회의적인 편이지요. 소비가 개인의 경제적인 성공과
심리적인 행복의 측정수단으로 주입되던 시절, 팝아트 예술가들은 이러한 시류에 성공적으로 편승했다고 볼수 있으니 말입니다. . 많은 팝작가들은
확대되는 시장과 관객들을 의식히고 이들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기업가처럼 행동했습니다. 팝아트에 재현된 물건들은 대중이 쉽게 구매할 수
있는것이었으며 실제로 매우 인기있는 상품이었던거죠. 이는 팝작가들이 사업적 성공의 한 방편으로서 고객의 취향에 맞는 이미지를 도용하여
접근성을 높이면서도 ‘순수미술’이라는 고급스런 포장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일종의 교묘한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조지시걸의 '레스토랑 윈도우'
위의 작품을 만든 조지시걸은 동유럽 이민 2세대로 미국 뉴욕에서 출생해서.
뉴욕 쿠퍼유니온 미술건축학교에서 공부했으며 뉴저지 럿거스대학교에서
심리학 문학 역사 및 철학을 전공(1942~46)했습니다.
뉴욕 프랫디자인인스티튜트를 다녔고(1947~48),
49년 뉴욕대학교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하여 졸업했습니다. 56년 뉴욕 헨사갤러리에서
성경을 주제로 첫 개인전을 가진 뒤 50년대 말부터 조각으로 관심을 옮겨
석고를 사용한 실험적인 작업을 시작하지요.
그의 작품은 미술과 일상생활을 결합시켜 현대인의 실존적 상황을 다룬 것으로 평가됩니다.
특유의 작품형식은 팝아트 환경미술 설치미술 상황미술의 범주를 포괄하고 있지요.
그의 설치작업들은 마치 미국미술사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한 단면을 보였던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설치로 해석해 놓은 것 같은 느낌을 저는 참 많이 받습니다.
레스토랑의 창문을 바깥에서 보신적이 있나요?
보여지는 것과 보는 것의 거리감이 낳는 왠지 모를 소외감이
오늘 우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두번째로 소개하는 곳은 많은 미술품들이 소장되어 있는
베를린 최고의 성, 슈로스 샤르텐 부르크입니다.
이곳에는 바로 유럽미술사에서 꼭 거론되는 중요한 작품들이 대거 걸려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은 독일화가인 칼 스피츠벡의 '가난한 시인'
에 대해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위의 사진은 성과 부속되어 연결되어 있는 정원의 풍경입니다.
바로크식 정원으로 둘러싸여 있는 성과 독특한 개성을 자랑하는 축조물들은
자신만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화려했던 예전의 시간을 응고시킨채 우리에게
추억의 단단한 환약을 한줌 쥐어주는 것 같습니다.
베를린 전자전 때문에 갔었던 곳이지만, 가을이란 시간성 답게 사진 속 정원은
초가을의 여리지 않은 햇살들을 초록의 빛깔위에서 토해냅니다
여기가 바로 슈로스 샤르텐부르크 성의 서문입니다.
원래는 여름 휴양지로 쓰기 위해 왕궁에서 지었던 곳이었는데 18세기의 프랑스 회화가
정말이지 많이 모여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아래의 사진은 포츠담 광장에 세워진 베를린 장벽의 일부로 꾸며놓은
기념물이지요. 우리도 언젠가는 내 나라를 묶어놓고 있는 이 분단의 풍경을
파스텔 빛깔의 평화로 만들어 놓을수 있는 날들이 오겠지요
자 이제 소개할 작품이 바로 그 유명한 칼 스피츠벡의 '가난한 시인'
입니다. 독일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그림이라고 알려진 그림이죠.
사실 슈로스 샤텐부르크에 걸려 있었다가 1989년 이인조 도둑에게 도난을 당합니다.
이 그림 뿐만이 아닙니다. 왠일인지 스피츠벡의 그림들은
정말이지 인기가 좋은 것인지,그의 그림들이 도둑들의 마음을 사로 잡은 것인지
1992년 독일 검찰청에서 가장 많은 도난 리스트를 가지게 되지요.
이 작품의 제목은 '가난한 시인'입니다.
1808년 뮌헨에서 태어난 화가 스피츠벡은 아버지의 소망에 따라
약사가 되지만 아버지의 죽음 이후 유산을 털어 미술공부에 열을올리게 되지요.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아마도 이 그림속 감기에 걸려
뮌헨의 풍경이 보이는 옥탑방 삐그덕 거리는 침대위에
누워있는 시인의 모습은 '화가'자신의 모습일 겁니다
그때나 저때나 예술을 한다는 것은 돈이 안되는 일인 모양이지요.
그의 그림 속에는 가난한 시인의 '참 견디기 어려운 풍경'이 가득가득 메어옵니다
쌓여있는 책들과 썼지만 팔때가 없는 것 처럼 보이는
원고 덩어리들.....(아...이 장면을 보는데 저도 이렇게 될까 두렵습니다)
우산이란 소품을 사용한 것도 아주 특이하지요
해석에 따르면 이 우산은 사람들에게 접근하기 쉬운 매체로서
그만큼 시인의 작업은 '사람의 삶을 번역하고 옮기는 일'에 대한 정치적인
상징으로 보여집니다.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살아가는 삶은 눈동자가
산초 열매처럼 까맣고 슬프게 빛납니다' <샐러리맨 예찬> 에서 시인 함민복이
외친 자본주의와 가장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예술가는 시인이라는,
바로 궁핍한 가난한 시인이라는 그의 말이 이 그림을 통해 느껴지는 것이지요.
행복한 주말 되십시요. 금요일 밤늦게 시작한 블로그의 글쓰기가
새벽을 넘어갑니다. 좋은 시간 되세요
가난한 시인의 사랑
함영숙
사랑하지만
당신에게 줄 선물은
내 맘에도 들지않는
시詩 한편밖에 없소
긴 편지로 사랑 고백하기엔
허황된 현실 같고
짧은 시로 자백하기엔
하고 싶은 말 다 못할것 같소
주고 싶은 것은 너무 많지만
세상에 내것은 아무 것도 없소
내 맘도 내 것이라 말하기 어려우니
한 편의
사랑시詩도
두렵기만 하다오
그러할지라도
시인의 사랑은
오직 사랑을
詩로만 올린다오
시가 바로 내 마음이요
내 사랑이기 때문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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