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해를 등지고 놀다

하이델베르크에서-황태자의 첫사랑을 만나다

패션 큐레이터 2006. 4. 13. 10:27
11534

 

 

 

 

오랜만에 글을 써봅니다......

피곤안 여정의 끝에서, 드디어 노트북 앞에 앉으니 오랜 비행의 여독도

힘을 쓰지 못합니다. 비움은 그렇게 그리움을 더욱 크게하는 힘이 있나 봅니다.

 

잘 계셨는지요.....

어제밤 다시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연두빛이 가득하게 채워져간 서울의 거리는 기대치 않던 황토빛 바람으로

을씨년 스러운 사람들의 표정들을 만들어 내고, 먼 곳에서 읽는 내 나라의 풍경이

아쉽기만 했답니다. 프랑크 푸르트에 기착하여 하루를 보냈습니다.

 

슈테델 미술관에 들러 부랴부랴 필요한 몇권의 도판을 구하고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아침엔 하이델베르크로 가서 그곳에서

전시회가 열리는 진샤임으로 가는 기차를 타야 했습니다.

보시는 강의 풍경은 라인강의 지류인 네카강의 땅거미지는 풍경을 담았습니다.

이 강을 타고 산책삼아 올라가는 길에....바로 그 유명한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의 배경과 숨겨진 가슴쨍한 사랑을 만납니다

 

 

어찌된 것이 도착해서 전시회가 계속되던 날들은

날씨가 화창하더니 정작 마음을 먹고 하이델베르크의 고성으로 향하는 날은

약간 푸른빛 구름이 끼며 흐른 풍경을 자아냅니다.

하긴 이런날이 사진은 더욱 잘 나오는 법이지요.

 

원체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는 터라, 독일식 빵에 치즈며 햄이며 가득 뱃속에

담으니 힘도 나고....그렇게 길이 시작되는 곳에서 표지판만을 의거해

고풍스런 성의 프로필을 담으로 갔습니다.

 

 

일요일 오전이어서 그런지 거리는 아주 한산했습니다.

이 거리를 따라가면 바로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의 배경이 되는

선술집이며 광장이며, 고색창연한 세월의 흐름을 간직한 붉은 적갈색 톤의 고성이 있습니다.

 

'황태자의 첫사랑'은 마이여 페르스트가 쓴 희곡으로

연극과 영화로 여러번 제작된 바 있으며, 이후 오트폰 쉰 네러가 소설로 써

많은 사람들에게 또 한번의 감동을 안겨준 작품입니다. '알트 하이델베르그'는 하이델베르그 대학에

유학온 황태자와 학사주점에서 일하는 가련한 소녀와의 사랑이야기입니다.

 

외국에 나갈때 마다 일종의 습관처럼 거리에 있는

시계를 꼭 찍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뭐랄까.....시계를 사진에 담아내면

그 순간속의 정염이 꼭 프레임속에 응고되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만큼

간직하고 싶은 순간들을 만날때, 순간의 기억을 축적해서 내 마음의 정원에

기나긴 기억의 작은 연못을 축조하듯, 그렇게 시계를 찍는 버릇이 들어버렸습니다.

 

 

'황태자의 첫사랑'으로 널리 알려진

하이데베르크는 라인 강 본류와 그 지류인 네카어 강이 합류하는 독일 남부,

아름다운 과수원으로 덮인 쾨니히툴 산 서북쪽 기슭에 위치한 고색 짙은 도시입니다.

 

하이델베르크라는 오늘날의 지명은 독일어로

'신성한 산'이라는 뜻을 지닌 '하일리겐베르크'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 하일리겐베르크는 오늘날 하이델베르크 고성이 있는 네카어 강 언덕을 가리킵니다.

 

 

이 도시는 1386년 이래, 독일에서 가장 오래

역사를 지닌 대학도시로 개발되고 번영하였으나,

30 년 전쟁과 오를레앙 전쟁을 거치면서 황폐해졌지요.

18세기 이 곳의 선제후가 하이델베르크를 버리고 만하임으로 옮겨가면서

이곳은 다시 조용한 대학도시로

부흥되고 아름다운 바로크풍 집들로 활기를 되찾게 됩니다.

 

13세기에 수도원 자리였던 곳에 세워진

하이델베르크 고성은, 라인 선제후가 대대로 거쳐했던 곳으로

담홍색의 우아한 르네상스풍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고성은 복잡할 정도로

거대한 구조를 지니고 있는데, 17세기 말 프랑스와의 싸움에서 루이

14세의 군대에 의해 황폐해졌으나 그 후 일부만이 개축된 채 당시 파괴된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재의 우리를 구성하는 '나'를 찾는 작업은

바로 과거의 지층 속에 숨어 있는 암묵의 시간 속에 묻혀있는 '기억의 흔적'들을

복원하고 찾아내는 일에서 부터 시작합니다. 유럽의 고성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바로 그러한 작업의 일부입니다.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공간 속 장소를 변함이

없지만 시간의 흐름속에 '우리 내 풍경' 속에 부유하는 기억의 풍경을

만나고 이것을 글로 쓰는일......참 힘들더군요.

 

 

 

하이델베르크는 강 언덕에서 볼때 가장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하긴 그래서 신성한 언덕이라고 했었나 봅니다. 고성이 보이는 광장에 세워진

나무들의 형태가 어찌나 특이하던지 유심히 나무의 결과 인간에 의해 조각된

목질의 형태를 다시 보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성에서 바라보는 하이델 베르크의 전경입니다

조망의 시선을 가질수 있는 지혜....는 세월의 힘이겠지요

전경을 보다보면, 이 세상 어느 곳이든, 젖은 푸른이끼빛의 초록빛 기억들이

되살아 납니다. 내 젊은 날의 기억은 아직은 내가 지나온 저 좁은 골목길처럼

좁다랗고 가늘며, 갈래갈래져 있지만, 세월의 현명함 앞에,

무릎을 꿇고 자연과 내 육체를 향한 장엄한 기도 앞에

'부정의 삐딱한 시선'으로 일관했던 내 젊은 날의 자락들을 펼쳐보는 일입니다.

 

 

오랜 고성의 정원을 거닐며 이런 생각에 빠져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타인의 기억을 통해 나를 보는 일일 거라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적어도 이 공간에서 여행에 관한 글을 쓸때마다

화장끼없는 맨 얼굴이 아름다운 사람의 글을 쓰겠노라고 생각해 봅니다.

 

오늘 글도 쓰면서 스스로 반성하게 되더라구요

여행기를 너무 멋드러지게 쓰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그 만큼 글의 두께가 마치 얕은 어깨를 키우기 위해 심지를 넣은 것처럼

포장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해 봅니다.

 

최근에 출판을 위한 글을 쓰면서

오랜 세월 편집과 기획을 해오신 분께 적지않은 충고를 들었습니다.

제 글이 조금은 대화체를 많이 쓰는 글이면 좋겠다는 평이셨는데요

 

영문학 첫시간에 배운 '잘 빚은 항아리'와 같은 글에

아직까지도 제가 매어있는 것은 아닐까...그냥 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타인과 소통하기 위한 대화의 힘이 실린 글들이 여행을 통해

드러날 수 있기를 그렇게 소망해 봅니다.

 

 

 

세상의 모든 풍경은 이미 내 안에 있는 거울에 반영된 풍경임을

여행을 통해 배웁니다. 하지만 여행을 통해 배운것을

나눔에 있어 전 여전히 어리석음을 배웁니다.

 

설명대신 짧고 명료한 그림같은, 긴장감이 살아 있는 글을

언젠가는 써볼 수 있으리라, 희망해 봅니다만 여전히 우원한 거리에

놓여있음을 인정합니다.

 

사실 고성을 가고, 유적지를 찾는 것도

내 안에서 점점 상실되어 가는 '현재시제 속의 나'를 찾아가는 여행일텐데

따뜻한 존재의 뿌리를 찾는 여행이 되기 위해선

아직도 부족한 내 자신의 뾰족한 모서리들이 마멸되기를 기다려야 할듯 합니다.

세월의 현명함을 언젠가는 가지게 되겠지요......

 

4월 남은 날들....행복하세요

이 멋진 세상....What a wonderful world......

예전엔 몰랐답니다. 내 마음의 풍경이 어두운 빛깔이었을때는 말이죠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읽어내는 희망과 빛을

이제서야 조금씩은, 무지게 넘어 있는 그 찬란한 빛을

그렇게 배워가는 것 같아요.

 

Bravo Our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