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빛으로 그린 그림

꽃-그 잊혀진 환상

패션 큐레이터 2004. 5. 13.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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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아름답다. 사랑, 정열, 순수 등 아마 꽃만큼 상징적이고 다양한 지시대상을 분명히 가지고 있는 것도 없을 것이다. 이 말은 다시 말해 꽃만큼 "아름답다"라는 분명하고 공통된 의미를 가지는 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꽃의 본질은 아름다움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오늘날 우리의 의식에서 이러한 "아름답다"는 너무 추상적이고 너무 평범하다. 흔히 꽃을 손으로 그리거나 혹은 카메라로 찍을 때 작가는 꽃이 상징하는 아름다움을 재현한다고 하지만 그 재현된 꽃 앞에서 오늘날 대중 매체에 익숙한 관객이 가지는 느낌은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주관적인 느낌이 아니라 지극히 형식적이거나 고정적인 인식 또는 무감각일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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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말해 우리에게 아름다움과 감동을 주는 것은 재현된 대상 꽃 자체가 함축하는 객관적 의미 그 자체가 아니다. 그것은 논리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일종의 감각적 착각일지도 모른다. 어떠한 경우에도 대상에 관객의 주관적 의식이 투영되지 않는 대상과의 관계는 사실상 오늘날 매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엄청난 정보 홍수와 그로 인한 우리의 무감각과 무기력과 같은 관계일 것이다. 그와 같이 갈수록 무감각해 지는 오늘날 현대 대중의 눈에 꽃은 진실을 은닉한 판박이인 동시에 판박이로 박제된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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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전시된 작가 김풍영의 꽃 사진들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연출한 조형 사진들이다. 특징적으로 사진들이 보여주는 꽃들은 단순한 현실의 꽃이 아닌 마치 꿈이나 환상과 같은 비 현실적 이미지들을 연상케 한다. 좀 더 자세히 보면 치밀히 계산된 듯한 조형적 구성과 우아한 색조의 향연 그리고 불투명한 추상적 형상들은 더 이상 사진이라고 믿기 힘든 거의 완벽한 환상적 효과를 그려내고 있다. 또한 광도의 조절과 흐르는 물을 대상에 투과시켜 만든다양한 빛의 굴절 효과들이 빚어내는 환상적 이미지는 보는 이로 하여금 사진 그 자체를 의심하게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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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결과물로서의 꽃 이미지 자체가 아니라 이러한 이미지를만드는 작가의 의도적인 사진적 행위(l'acte photographique)이다. 사실상 관객이 사진 이미지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꽃과 사진이라는 일반적인 통념과 현실과 사진 사이의 단순한 복사적 관계를 전복시키고 있다. 꽃 사진 시리즈를 통한 작가의 일괄된 의도는 단순한 조형적 기법과 효과에 의한 범 우주적인 조형미의 추구도 아니고 또한 재현적 영역에서 사진과 그림의 경계 혹은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서 던지는 개념적 메시지도 아니다. 정 반대로 작가가 꽃이라는 상징적인 대상으로 재현하고자 한 것은 이미 우리의 무감각에 의해 고착된 판박이와 박제된 아름다움에 대한 역설 혹은 전복이다. 여기서 꽃은 단지 코드화 된 아름다움 이면에 망각된 우리 모두의 진실을 누설하기 위한 주제로서 선택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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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사진적 행위는 단순히 꽃이 발하는 조형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시각적 재현이 아니라 그로 인해 회상되는 정신적 재현에 있다. 이러한 재현은 대상과 사진의 단순한 복사(icon) 혹은 상징(symbol) 관계가 아니라 물리적 원인 관계 즉 지표(index) 관계 속에서 이해된다.


이때 재현된 이미지는 지극히 주관적인 작가 고유의 회상에 의해 포착된 생성 이미지(회상-이미지)이며 사진은 결국 이러한 이미지에 대한 시각적 자국으로 간주된다. 쉽게 말해 작가가 재현하고자 한 이미지는 비록 꽃이라는 특정하고 구체적인 대상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로 인해 야기되는 오래 전 기억 속에 잠재된 현실 이미지로 볼 수 있다 : 이해할 수 없는 이미지들의 연상, 갑자기 출현하는 누군가의 낯익은 얼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익숙한 자리, 그리고 나 ... 결국 사진 이미지는 타인의 경험이 아닌 자신의 경험적 독백이면서 동시에 현실의 이편과 저편에서 마치 사진이 기억의 은유로서 출현하는 희미한 레미니센스와 같이 어떤 환상이나 허상에 대한 시각적 흔적인 셈이다. 빛의 굴절들이 야기 시키는 꿈 같은 비현실적 이미지들 혹은 이미 형태가 거의 사라진 추상화 같은 환상들은 여하간 현실에서 포착 불가능한 우리들 모두 각자 잊어버린 심층 기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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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사실상 망각된 모든 기억들은 단지 우리 의식 심층에 잠재되어 있을 뿐이다. 기억의 진정한 감동은 모든 논리적 의식 작용이 진술하는 "의미적 재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프루스트의 무의식적 기억처럼 마들렌 과자 향기나 달리는 마차의 덜컹거리는 소리와 같은 것이 야기 시키는 "존재의 재현"에 있다. 그때 마치 심연의 환상 수족관과 같이 있음직한 기억들이 싹(생성)으로부터 탐지되어 거의 무의식적으로 수면으로 부상한다. 이러한 방출은 곧 사진적 자국으로 재현되는 인덱스 혹은 자동생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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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와 논리 밖에서 또한 자연과 문화의 경계 면에서 응시자 각자의 사건(생성)으로 돌출 하는 이러한 회상의 부유(浮游)물들은 모두에게 공유된 그러나 잊혀진 환상으로서 꽃 이미지이다. 이는 또한 보이지 않는 각자 잊혀진 환상을 위한 기억 유도체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혹은 회상 불가능한 심연의 기억들은 누구에게나 영원히 잠재된 아쉬움과 회한이 아닌가 ? 잊혀진 레미니센스의 독백으로 재현된 꽃, 그것은 무감각과 판박이로 박제된 현실의 꽃이 아닌 우리 모두의 심연에! 망각된 환상의 꽃이다.

 

오늘 하루도 부산하게 보냈습니다. 오전과 오후 가득찬 시간의 결 속에 들숨과 날숨의 교차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요즘은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도 하지만 이 공간에 와주신 모든 분들께 또한 축복할 삶의 여백은 지키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들으시는 곡은 이루마의 연주로 듣는 'The Moment'입니다. 일분 일초 내게 주어진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우리 안에서 가득하게 보낼때 우리에게 다가올 감사가 더욱 큰 것을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