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빛으로 그린 그림

여관.....흐느끼는 섹스

패션 큐레이터 2004. 5. 11. 02:09

여관
"여관 방 찍어요".
주인은 "왜? 더러운 여관방을 찍느냐"고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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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이라는 단어 앞에 '은밀한', '퇴폐적', '불륜적'등의 강력한수식어가 따라오는 것은 여관이 매스컴에서 떠들어대는 여러 사건, 사고의 현장 즉, 도피처 역할로 이용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음성적인 의미가 내재하게 된다.

 

사적 / 공적 공간의 의미를 동시에 생성하는 "여관"은 일정 금액만 지불하면 계약된 시간동안은 사적인 공간으로 전환되면서, 개인의 사생활을 완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써 기능한다. 또한,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공적 공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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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사진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왜 여관사진을 찍을까? 내 자신 스스로가 수 없이 문제제기를 하게 된다.
1990년대 초, 사회현실에 대한 열띤 토론, 집회 준비가 한창이었던 대학시절, 경기도 부근 어는 여관에서 며칠 동안 머무르게 되었다. 그 곳에서 지내는 동안 집과 학교에서 느낄 수 없었던 '강렬한' 공간감이 잊혀지질 않았다. 미묘한 밤꽃 냄새와 짤막한 형광등, 두꺼운 커튼과 조악한 패턴의 이불이 자아내는 '평면적 이미지'가, 내가 있어서는 안될 곳에 덩그러니 떨어진 기분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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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몰래 카메라'에 찍힌 성관계 장면이 인터넷 상에서 공유되며, 그와 관계된 뉴스들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때문에 조심스러워하는 여관 주인들을 설득하기 위해, 전시 도록을 보여주고 작업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해도 "<멀쩡하게 생긴 처녀가 이상한 걸 찍고 다니는 군...>" 한마디로 거절한다. 인테리어가 유출되고 손님이 촬영을 보게되면 당장 소란이 나고 다시는 안 들어온다는 설명이다.
자동카메라가 아닌 큰 카메라를 보게되기라도 하면 문제는 더 커진다. 비디오 카메라로 오해한 여관 주인은 당장 나가라고 모함을 질러대는 것이다. 내심 놀래 쫓겨 나오기가 일수고 창피함과 자존심이 일순간 머리를 복잡하게 한다. 잠시동안 멍하게 서 있다가 또 다른 여관을 기대하며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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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르페브르는 사회 내에서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공간적 경험을 "공간적 습관 "이라 칭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의 공간에 대해서 공통된 습관과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여관이라는 장소는 완전하게 '내 공간'으로 소유할 수 없는 임시 휴게소와 같은 곳이며, 동시에, 르페브르의 "공간적 습관"에서 보여 지듯이 '모두의'공적 장소가 되기도 한다. 때문에 한국에서 "퍼블릭 모텔"이라는 이름이 가능한 것이다.
"여관"이라는 공간에 대한 인식적/ 시간적인 공간성을 감각적ㆍ시각화하고, 이런 공간에 대한조건들이'장소-특수성'을 하나의 '상황-구체성'으로 넓혀서 '당신이 보는 것이 보는 것이다'라는 '수용상황'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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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현대의 여러 군상들이 스치고 지난 1만8천 원대 여관부터 15만 원대의 호텔까지 사진들의 다양한 경험들로 인해 제약 없이 읽히며 손님이 자고 나간 자리가 또 다른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깨끗하게 정리되는 것처럼 전시장에서의 전시공간이 사적 여관체험을 "서술적 공간"으로 전환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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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종씨의 작품들을 가져다 올려봅니다....여관이란 공간에 대한 그의 사진적인 상상력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의미가 뭘까요. 여관이란 하나의 공간적 도상이 가르쳐주는 왠지 모를 비릿한 내음으로 인해 이 저녁이 알싸하게 느껴진다면 제가 잘못된 것일까요?

 

좋은 하루 되세요.......들으시는 곡은 피아니스트 피터 쉰들러의 Hazel Eyes 입니다. 첫사랑의 비릿한 기억과 향....이제는 상처로 남아버린 무늬의 풍경앞에서도 하지만 웃음지을수 있는 우리가 되어보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