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만에 미술관에 갔습니다.
친구와 함께 사간동을 거니는 시간은, 제게 있어 일상에 지쳐 자주 잊어버리는
소중한 한끼의 아침을 차려먹는 느낌입니다. 그러고 보면 참 오랜동안
미술관을 제대로 다녀보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예전에는 인사동을 둘러보고 사간동을 들러 꽤 괜찮은 수입작가들의 작품을 보곤
북 카페에 가거나, 따스한 칼국수를 한그릇 먹고, 다시 서점으로 돌아와
미국의 미술관련 잡지들과 저널들을 사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엊은
달콤한 와플을 후배와 함께 먹는것이 제 미술관 마실의
'행복한 산책'길이 었습니다.
오늘은 어제 본 몇개의 전시중 디지털 사진 작업으로 유명한
영국의 작가 '존 고토(John Goto)의 사진 세계를 읽어보려고 합니다.
그의 사진을 보면서, 예전 참 질기디 질기게 아날로그의 감성만을 사랑했던
내 자신의 옛모습이떠올랐고, 정신의 감응이 유효하는 한,
디지털이나 아날로그냐의 질료적 차이는
우리를 둘러싼 상처의 풍경을 그려내는 데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라는 결론에 이르게 합니다.
영국 세인트 마틴 예술학교에서 미술과 사진을 공부했던 작가 존 고토는 현대 디지털 사진에서
상당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작가입니다. 디지털로 생성되는 무한복제의 이미지를
포토샵을 통해 재구성하는 그의 디지털 포토 몽타주의 작업을 살펴보는 일은
현대 영국사회의 정치/사회적인 풍경을 둘러싼 힙의 작용들을
이해하는 과정의 일부입니다.
오늘 보았던 전시회의 제목은 '세계의 서커스'입니다. 그는 서커스라는 은유를 통해
그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볼거리들, 흔히 스펙타클이라고 명명되는 것들을
디지털의 표면으로 불러들여, 자신만의 정치적 색채를 입혀내는 것 같습니다.
미국이 표시된 모자를 쓴 이는 아마도 미국이란 강대국의 몽타주일 것이고요
그가 던지고 있는 묘기 속 저글링에는 다양한 함의들이 포함된 소품들이
보입니다. 영국을 대표하는 텔레토비에서 로켓과 인공위성, 그리고 대륙간 탄도탄에
이르기까지.....세계의 경찰로서, 장악력을 점점 더 키워가는 미국에 대한
암유가 담겨 있습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편제되고 있는 새로운 세계질서의 망 속에서
수많은 약소국가들의 침탈과 문화적 제국주의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존 고토는 아마도 이러한 상황에 대한 우의로서 서커스란 일종의 정치적 은유를
교묘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연극사가들은 이탈리아식 무대가 처음 나타났을 때, (그것을 흔히 연극에서는
코메디 델 아르테 라고 부릅니다.)
가면과 분장을 한 무대의 주인공들은 근대극처럼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해 보기 위
해서가 아니라, 환상의
세계를 실제처럼 체험하고자 했다고 지적합니다.
그것은 일종의 마술상자처럼, 자기 나름의 규칙을 지니면서도 반짝이는
유희의 세계였던 것이죠. 하지만 사진 속 서커스는 더 이상 시뮬라크르가 아닌
우리 앞에 다가온 무겁고 엄정한 정치적 현실이 되어 버렸는지 모릅니다
현대의 예술가들은 서커스에서 이 세상에 대한 은유와 활기를 발견하곤 했습니다. 서커스 무
대는 마술의
원으로, 그곳에서는 아무런 억압도 없고 엄격한 규칙 속에서도 움직임과 감
정이 극히 자유롭다고 간주되었던 것이죠. 익살 광대나 관객들은
그 환상의 창문을 통해
다른 세계로 날아가고자 하였습니다. 샤갈의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하는 테마로서의 서커스도
바로 이러한 지점 위에 서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이라크 전쟁때 아직도 기억나는 사막의 폭풍이란 테마를 붙여주었던
그 멋진 전쟁의 풍경은 우리에게 마치 전쟁이 한편의 서커스처럼
폭죽놀이처럼 다가왔던 것을 기억 할 겁니다.
그 속에 놓여진 박탈된 사람들은 외부의 시선으로 보는 폭죽놀이에 의해
사지가 찟겨나가 죽어나가지만, 유리 동물원 속 존재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는 우리들은
그저 즐기고 놀뿐,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고토의 사진 속 이미지는 마치 세계 경찰의 태두인 미국을 그대로
그려내고 있지요. 이 뿐만 아니라, 전시회에 본 사진들은 미국에 우리에게 은혜처럼 배풀어준
소비주의와 물신주의에 근거한 자본주의의 풍경을 그대로 그려냅니다.
언제부터인가 부시 대통령의 푸들 강아지가 되어 버렸다고
영국의 정치 평론가들이 비판하는 영국의 정치적 현실은 바로 존 고토의 사진 속
그 예전의 영국은 이제 없다고 치부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지구본 위에 놓여진 인형같은 우리들.....세계화의 미명아래
새로운 국제질서라는 허울 앞에서 우리의 실존이 얼마나 침탈 당하고 식민화 되어 가고 있는지
작가의 사진속 이미지들은 우리들을 당혹케 하고
그 속에서 우리들은 또 다른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 속으로 몰려갑니다.
어떤
강물이든 처음엔 맑은 마음
가벼운 걸음으로 산골짝을 나선다.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해 가는 물줄기는
그러나 세상 속을
지나면서
흐린 손으로 옆에 서는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미
더렵혀진 물이나
썩을 대로 썩은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 세상 그런 여러 물과 만나며
그만 거기 멈추어 버리는 물은 얼마나
많은가.
제 몸도 버리고 마음도 삭은 채
길을 잃은 물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오는 물을 보라.
흐린 것들까지 흐리지 않게 만들어 데리고 가는
물을 보라 결국 다시 맑아지며
먼길을 가지
않는가.
때묻은 많은
것들과 함께 섞여 흐르지만
본래의 제 심성을 다 이지러뜨리지 않으며
제 얼굴 제 마음을 잃지 않으며
멀리 가는 물이 있지
않는가.
도종화의 시 '멀리가는 물'을 읽어가는 시간, 여전히 우리 앞에 놓여진 많은 과제들을
생각합니다. 우리를 둘러싼 서커스의 경험이 샤갈의 그림 속 서커스처럼 그렇게
그냥 안온한 경험들이기를, 그래서 영혼이 행복해지는 경험의 덩어리로만
우리에게 남아주기를 우리는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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