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일상의 황홀

칼에 대한 명상....물을 자르다

패션 큐레이터 2004. 3. 29. 13:30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서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칼로 물을 베는 것이라고....그것이 사랑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칼로 물을 베면 물또한 베어져 땅에 떨어진다는 것을 아는가?

신경림의 시 '가난한 사랑의 노래'를 읽으며

시종일관 내 머리속을 맴도는 것은 바로 베어짐의 서늘함이다.

 

 

물질은 중요한게 아니라면서...정신이 중요하다면서

그렇게 수없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정작 그 조건으로 인해

상처를 주고 헤어지고 하는 것을 그렇게도 많이 보아온 나로서는

이제 더이상 그들의 궤변을 듣고 싶지 않다.

물 또한 베이면 아픈것이라는 것.....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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