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페미니즘의 계보학 혹은 기억의 습작
나에게 있어 페미니즘은 꽤 오랜동안 나를 사로잡고 있는 화두다. 페미니즘 비평을 공부하면서 적어도 예술분야쪽의 페미니즘 담론들을 살펴 볼 기회가 많았다. 예술에 있어서 페미니즘은 예술의 근본적인 조건을 의문시하는 저항의 방식이다. 여기에서 근본적인 조건이란 가부장적인 질서가 만들어내는 성차별과 젠더의 문제. 그리고 타자로서 사회의 이방인으로서 여성들이 지니는 문제의식을 말한다.
페미니즘의 담론에는 아마조네스의 신화를 꿈꾸는 강철여성의 이미지가 녹아 있는가 하면,또 한편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본유적인 차이 즉 차이의 문화를 인식하고 이것을 오히려 발전적으로 키워나감으로써, 여성고유의 문화를 만들어내고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하자고 말하는 노선이 있다. 최근에 들어서는 페미니즘과 에콜로지 즉 생태학이 결합하면서 생태적인 페미니즘, 에코 페미니즘이 대두하고 있다. 이것은 여성과 자연에 대한 파괴가 남성에 의한 지배형태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것이라는 믿음에 기초한 것이다. 에코페미니즘은 남성에 의한 여성의 억압을 사회 내부의 주요한 지배유형이라고 설명한다. 나아가서 사회의 억압적 대상으로서의 여성과 인간의 억압적인 대상으로서의 자연이 동일한 가치를 가지게 된다.
S#2-김수자 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김수자는 치마저고리 두루마기 이불 등 천을 애용하는 작가다. 그 이유를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이불을 꿰매는 일상적인 행위 속에서 나의 사고와 감수성과 행위, 이 모두가 일치하는 은밀하고도 놀라운 일체감을 체험했으며 묻어두었던 그 숱한 기억들과 아픔 삶의 애정까지도 그 안에 내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그의 설치를 좋아하는 데에는 무엇보다도 바늘과 이불보라는 오브제에서 기인한다. 김수자의 작업은 천에다가 무엇을 그린다거나 하는 행위가 아니라 이것을 오리고 붙이거나 엮는 과정을 통해서 여성의 삶과, 더 나아가 자연과의 화해를 꿈꾸는 데서 그 핵심을 찾을수 있다.
흔히 평론가들이 그의 작업을 가르켜서 현대의 예술적인 감성인 유목주의(nomadism)와 연결되어 있다가 말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이불보와 천조각에 겹겹히 세겨져 있을 갖가지 혼령들을 불러내는 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작업은 노마드 적이라고 말할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작업이 단순한 노마드적인 미학에 빠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바늘과 헝겁을 이어붙이는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화해와 봉합의 꿈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이라는 소재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바느질은 천의 표면과 이면을 되풀이 하여 오가는 과정으로 작가는 이 바느질 행위의 수직적인 움직임을 통해서 '평면성'의 한계를 극복한다.그는 표면과 이면의 상호작용의 의미를 표현하게 된 것이다. 그는 여인들의 고유한 삶을 천이라는 오브제로 표현하는 데서 한층 더 나아가서 자연의 상처를 봉합하고 껴안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S#3-바늘여인
이번 전시회에서 새롭게 보이고 있는 비디오 퍼포먼스인 '빨래하는 여인'은 인도의 델리 야무나 강가를 바라보고 있는 작가의 모습을 유장한 호흡의 카메라로 담아낸다. 작가는 여기서 강물이 표현하는 시간성의 층위에 부유물처럼 떠다니는 상처의 현존을 바늘로 꿰매어 보려는듯 하다. 그리고 그녀의 또 다른 비디오 작품인 바늘여인은 동경 시부야와 인도 델리와 중국 상하이에게 촬영된 것들이다. 이것은 세상을 향해 열려있는 작가자신의 눈을 표현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땅의 상처들을 봉합해 보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작품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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