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세계적인 다큐멘타리 사진 작가 도로디어 랭의 사진에 대해서 이야기 할까 합니다. 예전에 학부시절 영화과에서 '다큐멘타리와 작가들'이란 수업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그 시절에 '영화의 방법론'이란 매우 두꺼운 선집을 한번 읽어본 적이 있는데요. 거기에 다큐멘타리 작가였던 빌 니콜스의'보이스 오브 다큐멘타리’라는 글을 읽으며 배운것이 한가지 있습니다. 현실을 반영한다는 것과 현실을 말한다는 것은 꽤나 차이가 있는 작업이라고 말이죠.
그는 역사적으로 다큐멘타리의 양식을 1.교훈적 2.하나님의 목소리(voice of God) 3.인터뷰(string of interview) 4.자기성찰적 (self-reflexive)다큐멘타리로 세분화 하고 있어요. 영국적인 전통의 다큐멘타리는 시민을 교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다큐멘타리를 이용했습니다. 바로 교훈적 다큐멘타리의 시작이죠. 민주정치의 토대를 구축하기 위한 정보배분의 매체로서 영화와 사진을 이용하게 된것이죠. 두번째의 양식인 '하나님의 목소리' 란 다양한 목소리를 작가의 통제하에서 담을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이 4가지가 꼭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한장의 사진속에 혹은 한편의 다큐멘타리속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양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S#2-Thorothea Lange : Ear to receive the message
"다큐멘타리란 용어만큼이나 복잡하고 오해의 여지가 많은 용어도 없는듯 하다. 그리 명확하게 개념을 정하기도 어렵다. 다큐멘타리의 목소리를 수용하고 이해하기 이해서는 그것을 소화해낼 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워커 에반스-
도로디어 랭의 사진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러한 다큐멘타리의 목소리에 기울일수 있는 우리 안의 '내면의 귀'가 있어야 함을 말하지 않으면 안될듯 합니다. 이 당시 1930년대의 다큐멘타리 사진들이 10년의 세월을 버티지 못하고 몰락하게 된데는 너무나도 그들의 사진이 '정치적' 이고 '훈장선생님'의 목소리를 가졌기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냉전이후의 정치적 압력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죠. 이념대결을 위해 그들은 자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회적 악'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을 금지했거든요. 블랙리스트에 올렸고 Red-baiting이라고 해서 빨갱이로 몰아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생존을 위해 개인적 사유의 사진으로 전향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도로디어 랭의 사진을 응시하면서 우리는 그녀가 포착한 사진에는 그 당시의 척박한 삶의 환경과 배경에 대한 강조보다는 사람의 얼굴속에 드러난 상처의 흔적들을 그려내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만큼 시대의 아픔속에 위치하고 있는 인간의 얼굴속에서 더 많은걸 이야기 해준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대공황 하에서 루즈벨트 대통령에 의해 주창된 농업안정국의 설치는 그 당시 뉴딜정책의 일환이었습니다. 농민들의 부채를 탕감하고 재정착 자금을 대고 홍수및 토양부식의 통제를 위한 설비들을 마련하고 이민자 수용소들을 만들었습니다.
도로디어 랭은 바로 이 농업안정국(FSA)에 소속된 작가였으며 이때 찍혀진 27만장의 사진중에서도 특히나 호소력있는 목소리를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위의 3장의 사진은 그녀의 대표작으로 1935년에 찍은 '이민노동자 어머니'입니다. 이 사진은 캘리포니아 이주 농민들의 생활과 그 상태를 기록한 사진으로 이주자들이 일거리를 찾아 이 캠프에서 저 캠프로 이주하며 생활하는 불쌍한 어머니가 텐트 속에서 어린애에 둘러싸인 모습을 통하여 당시의 미국 노동자의 삶과 얼굴을 전형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S#3-A Voice in the Wilderness
이번 칼럼을 준비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려운 시대일수록 사회적인 목소리가 사멸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성경을 읽다보면 '귀있는 자는 들을진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와 같은 구절들을 만날때가 있습니다. 억압과 상처의 목소리를 들을수 있는 귀를 가진다는것. 그러나 그것을 선포하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가기를 꺼려하는 그 광막한 대지에서 홀로 외롭게 싸우며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입니다
그녀의 사진은 미국의 이러한 어려운 현실에 대해서 미국인들이 각성할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행동을 촉구했습니다. 이 당시의 FSA 소속의 작가들이 정치적인 선전을 위한 일환으로 사진을 찍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그녀가 포착한 사진속에서 '절망'만을 본다면, 어두운 일면뒤에 새롭게 피어나는 '사람에 대한 희망'을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내면의 귀가 잠시 멀어서는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노동자 캠프에서 포착한 두 아이의 웃는 얼굴을 봅니다. 그리고 또한 작가 도로디어 랭의 얼굴을 한번 살펴봅니다. 인간만이 절망속에서 희망의 씨앗을 발견할수 있는 존재임을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요즘 한국의 정치 경제의 풍경들이 다시 한번 리트머스 시험지의 검증을 거치고 있는 시점에서 '광야에서 들리는 소리'에 우리 모두가 귀를 기울이며 무시 하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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