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Toward Social Landscape 우리내 생을 둘러싸고 있는 두가지의 풍경을 바라봅니다. 바로 개인적 삶의 풍경과 사회적 풍경입니다. 개인과 사회가 독립된 주체로 사고될수 없는 이유는 그 안에 내가 있고, 또한 나를 통해 사회가 구성되기 때문일 겁니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쓰는 사진 작가론의 테마는 바로 사회적 풍경을 그려내는 3명의 작가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다큐멘타리 사진을 좋아합니다. 영화에 대한 취향 또한 이러한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까닭에 영국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다큐멘타리 필름들을 보곤 했었지요.오늘 소개할 작가는 1960년대 세대의 사회적 감성들을 솔직하게 그려서 새로운 방식의 '사물 바라보기'의 틀을 만들었던 '리 프리들랜더'입니다.
S#2-A poem within Candid Camera 프랑스의 사회적 격변기 1968년 영화작가 였던 장뤽 고다르는 '카라비이네'란 사회적 다큐멘타리를 만들고 난후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그가 생각하는 다큐멘타리의 철학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
다큐멘타리를 만드는 것은 기록 보관소 지하실에서 잠자고 있는 삶을 훔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자체로 충분한 가공하지 않은 현실을 복구하기 위해 현실에서 그 외양을 벗겨 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영화를 만드는 것은 단순히 기호로서의 사건을 붙잡는 것이고, 그것을 조건 지우고 예시하는 기호로부터 의미가 자유롭게 솟아오르는 그 정확한 짧은 순간에 사건을 붙잡는 것이다"라고 말이죠.
오늘 읽어볼 리 프리들랜더의 사진은 바로 고다르의 이러한 철학을 평면의 사진미학속에 실천한 작품들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1943년 미국 워싱턴 애버딘에서 태어나 로스엔젤레스 미술학교 아트센타에서 사진을 배웁니다. 그후 프리랜서로 '에스콰이어'의 사진을 발표하면서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1964년에는 조지 이스트만 하우스가 개최한 '사회적 풍경을 향해서'란 주제의 5인 초대전에 참여하게 됩니다. 오늘 보시는 사진중 상당 부분이 그 초대전에 발표되었던 사진들이죠. 프리들랜더에게 있어서 사회란 정면돌파가 아닌 후면의 그림자를 통해 투영되는 삶의 진실이 숨쉬는 장소였습니다. 그 만큼 그의 사진은 사인화된 공간으로서의 사회적 풍경이 그려진 한편의 시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S#3-Critical Moment for You and Me 흔히 그의 사진을 프랑스의 사진가 까르티에 브레송의 사진과 비교하곤 합니다. 물론 단순비교가 아닌 발전적 방향을 제시하고 극복했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프리들랜더 또한 브레송 처럼 소형 카메라에 의한 캔디드사진 수법을 차용합니다만 이를 영상적 이미지의 분석과 구축이라는 새로운 미학적 토대위에서 재구성하고 한층 통합된 구조적인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다는 점에서 발전성을 찾을수 있습니다. 흔히 그의 사진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는 한 장의 사진 속에 순간적으로 현실을 담아낼때 마치 여러장의 원판을 함께 포개어 인화한 듯한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이죠. 아래의 사진들을 보시면 그가 사진속에서, 대상으로 부터 항상 일정한 거리를 떼어놓음으로써 인물이나 사물을 부각시키지 않고 망원렌즈로 잡은 것같이 평면적으로 균일한 화면을 시도하고 있음을 확인할수 있습니다. 좌우대칭이 상호간에 균질하게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 내는 것이죠.
하지만 그의 이러한 균제된 사진의 미학은 아련히 바스라지는 사회적인 풍경들을 새롭게 드러내는 일종의 전략이자 골격으로서만 작용합니다. 마치 조율된 듯한 사진. 그러나 그 안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주관적인 내면의 풍경들을 용기있게 끌어내고 그 현장속에 임재하고 있는듯한 환상을 만들어 냄으로써, 사진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가 사진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사회적 풍경'속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시를 좋아합니다. 시인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외침이 지금 타성에 젖어 있는 내 시야의 껍질을 벗기고 새롭게 현실을 보도록 도와주기 때문이지요. 프랑스의 시인 장 콕토는 다음과 같이 시의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 당신은 마치 다른 누군가의 것인 향 갑자기 당신 자신의 이름에 직면하고, 오랫동안의 친밀성이 제공하는 눈멀고 귀먹은 습관 없이 이름의 형식을 보며 그 음절을 듣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의 그 놀라움을 아는가? 똑같은 현상이 하나의 대상이나 동물에 대해서도 일어날 수 있다. 번득임 속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개 택시 집을 본다. 그 속의 특별한 것, 미친 것, 아름다운 것은 우리를 압도한다. 그러나 바로 그 직후, 습관은 자신의 지우개로 이 강력한 이미지를 문질러 지운다. 우리는 개를 어르고, 택시를 부르고, 집에서 산다. 우리는 더 이상 그것을 보지 않는다. 시의 역할이란 용어의 완전한 의미에서 베일을 벗기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감각들이 자동적으로 등록하는 우리 주위의 놀라운 사물들을 우리의 무관심을 산산히 부숴버리는 빛 아래 벌거벗긴다."
우리 마음속의 비늘을 벗겨내는 일. 이 모든 일을 한편의 시가 해낼수 있다고 아직도 믿고 있는 제겐, 프리들랜더의 이 친숙하면서도 철저하게 계산된 사회적 풍경의 그림들이 그리 낮설지만은 않았습니다. "평범한 것을 적소에 놓고, 정결히 하고, 닦고, 그것에 빛을 비추라. 그러면 그것은 자신의 젊음과 신선함과 더불어, 그것이 처음에 가지고 잇던 것과 똑같은 순수성을 발할 것이다. 그 때 당신은 시인의 작업을 하고 있을 것이다" 꼭토의 이 말이 오늘 제 가슴 한구석을 꾸욱 눌러옴을 느낍니다. 우리가 평상시에 마주보는 대상 하나에도 얼마나 큰 '소중함'이 담겨 있는 것인지를 다시 한번 배우지 않으면 안될것 같습니다. 오늘 새해들어 첫번째로 쓰는 작가론에서 제가 배운 것은 바로 이러한 '진부함을 새롭게 규정하는 힘'과 그것이 가지는 가능성입니다. 여러분 모두 이러한 가능성 속에서 날로 날로 새로와 지는 생의 궤적들을 그려보시길 기도하고 바래봅니다. 행복하세요.
[출처]뮤크박스 S.E.N.S 의 Heart's Voice
오늘 들으시는 곡은 S.E.N.S 의 마음의 목소리입니다. 대상을 보고 거기에 감응하는 우리내 마음속의 목소리를 겸손하게 듣고 기뻐할수 있을때 우리는 햇살아래 놓여있음을 감사할수 있을 겁니다. 아니 그런 존재가 되자고 여러분께 말하고 싶었더랬습니다. 오늘 하루 행복 가득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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