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디지탈 시대의 아사코
중학교 시절이었지 싶다.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 '인연'에서 끝에 나오는 아사코란 인명에 대해서 생각했던 적이.....한글로 朝子라면서 이름한번 얄굿다고 막 웃었던 기억이 있다.....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시간속에 명멸하는 것들은 불우하다. 가상현실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어디에 정착해야 하는지 헤메이면서 그렇게 나는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과연 이 불우하기만한 디지탈 세대의 풍경속에서 우리는 사랑을 꿈꿀수 있는가.....수많은 사이트들이 음험한 자신의 상상력을 한꺼풀 한꺼풀 벗겨내면서 우리들을 유혹한다.이미지 중독증에 걸린 세대의 우화.
적어도 내가 영화 '순애보'를 보는 입장은 이런 것들이다. '우연은 언젠가 운명이 된다'는 멘트. 화상을 통해 채팅을 하고 그렇게 번개라는 걸 하고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면서도 우리는 사랑이라는 종교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새롭게 성화된다.
한국과 일본.....이제 사랑의 서사는 디지탈의 갑옷을 입고 아주 쉽게 서로 연결된다. 한국에 사는 남자. 그는 지리멸렬한 일상을 살아가는 동사무소 직원이다. 멍청해 보이는 눈빛,외로움에 찌들린채 자위로 욕망을 충족시키는 남자. 우인,미래나 나아갈 삶이니 하는 것들은 그에겐 화려한 삶의 수사학일 뿐이다.
그리고 또 다른 생을 사는 한명의 여자. 아야...재수생,모든것을 다 챙기는 편집증의 어머니와 우유부단한 아버지. 만화와 인터넷에 중독된 동생. 파편화 되어가는 가족의 이미지들.....그 안에서 왠지모를 죽음을 꿈꾸는 여자. 구두 모으기가 취미인 그녀. 그녀에게는 물 마실때마다 기괴한 소리를 내는 친구 리에와 게이오 대학에 다니면서 포르노 스타를 꿈꾸는 다카시란 친구가 있다.
자살을 꿈꾸며 돈을 모으기 위해 인터넷 라이브캠의 모델이 되는 아야.....그리고 다시 공간이동. 인터넷의 접속속도처럼 디지탈 서사에는 기다림이란 진부한 것이다. 한국에서 동사무소 직원 우인이 사랑하는 한명의 여자. 강민아(김민희)...그녀는 빵굽는 여자의 조수다. 그리고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다.레즈비언.
S#2-純愛譜,견고한 모든 것들은 사랑 위에 녹아버린다
우인은 그렇게 인터넷을 통해 아야를 만나고 그녀에게 중독된다. 민아와 같은 이미지의 여자, 디지탈 공간속에서 모든 것을 검색할수 있는 세대의 풍경은 그렇게 상처받은 마음을 다른 욕망속에 이식시켜 이전의 아픔을 망각하게 만든다. 소년, 소녀를 만나다....이러한 서사는 여전히 유효함을 끈질기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영화 '순애보'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실패하고 있는 것은 사랑의 상호작용에 관한 성찰의 결여들이다. 디지탈 시대의 룰렛 위에 던져지는 주사위처럼 사랑은 우연을 가장한 우원한 거리의 어떤 것으로 다가온다. 상처의 풍경은 그 상처를 건너갈때 비로소 사랑이라는 갑옷을 입게 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자신의 집에 그렇게 돌아오고 싶어했듯이 우인과 아야 둘 모두, 디지탈의 진공속에서 또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다. 이 영화의 시작과 끝이 길로 시작해서 길로 끝나가듯....그렇게 길이 끝난 곳에서 새롭게 길은 시작된다...는 진부한 클리쉐를 확인시킨다.
다양한 캐릭터와 깔끔한 프로덕션 디자인이 빛나는 영화다. 사실상 난 이 영화에서 나를 사로잡았던 캐릭터는 주인공 두사람이라기 보다는 아야의 부모님역을 맡았던 아버지 오스기 렌과 어머니 역의 요 키미코다. 진부한 일상의 일탈을 꿈꾸며 스와핑을 시도하기도 하는 일면들은 아직까지는 이해하기 쉽진 않지만 눈빛만으로도 치밀하게 계산된 연기를 읽을수 있다. 이 영화에는 일본영화의 독특한 코드들이 많이 나온다. 성담론이 일상화 되어 있는 아니 내면/외면적으로 풍성하게 침윤되어 있는 일상성들이 드러난다.
이 영화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일까?
사실 너무나도 진부한 일면의 영화다. 촬영과 빛의 사용 소품등 뛰어난 일본식 미니멀리즘만 제외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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