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노라 캐링턴은 1917년 영국 북부 랭카스터의 코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앵글로 색슨 계열의 아일랜드 조상이었고 어버니는 아일랜드 남부 출신이었지요.
그녀의 아버지는 부유한 산업자본가였고 직물상을 했었다고 합니다.
반면 그녀의 어머지는 아일랜드인 답게 엄격한 카톨릭 신자였고요.
부유했던 덕에 어린 시절 거대한 저택에서 살았던 그녀는 당시 저택을 둘러싼 아름다운
숲의 풍경 속에서 예술적 감성을 키울수 있었다고 합니다.
어린시절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아일랜드 여행에서 그녀는
다양한 삶의 풍경들을 눈속에 담아내게 되는데요.
이런 시간의 기억들은 이후 그녀의 그림속에서 일종의 힘으로
표현되는 캘틱지역의 이미지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도 잠시 9살 어린 나이, 그녀는 그 당시 규례에
따라 교육을 위해 카톨릭계의의 학교에 보내지게 됩니다.
이 3년간의 기억은 그녀에게 큰 상처를 남기게 된다고 해요.
거의 왕따로 보내야 했던 학교시절, 그녀가 겪게되는 정신적 상흔은
이후 그녀가 예술에 전념하게 되는 일종의 힘이 되기도 합니다.
학교든 일반 다른 곳이든, 그녀의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는 행동은
계속해서 사회적 부적응을 만들어 내지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사주신 붓과 수채화 물감으로 예술가로서의
첫장을 열게 됩니다. 하지만 화가로 성장하려는 그녀의 의도는 아버지와의
정신적인 충돌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데요.
이후 어머니의 도움으로 이탈리에서 처음 미술교육을 받게 됩니다.
방학중 런던에 머물렀던 그녀에게 어머니는, 당시 최고의 미술 비평가였던
허버트 리드가 쓴 '초현실주의의 책을 선사하게 됩니다.
그때 그 책의 겉표지에 바로 막스 에른스트의 그림이 있었고 이로 인해 그녀는 초현실주의란
일종의 미술사조와 조우하게 됩니다. 그후 파리기행중 에른스트를 다시 만나게 되고, 드디어 프랑스에서
그녀는 당시의 초현실주의자로 알려진 브르통, 탕기, 페레, 벨머, 한스 아르프등을 만나게 되지요.
그 당시 그녀가 자주 들렀던 카페 드 마고에서, 그녀는 피카소나 달리와 같은
다른 예술가들을 만나면서 히로인으로서 자리잡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의 이러한 행복한 시절은 나찌의 침공으로 끝나게 되지요.
그 당시 그녀는 다른 예술가들과 함께 예술가연맹을 조직하여 히틀러에게
대항하는 많은 유태인 예술가들을 유럽으로 부터 탈출시키는 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나찌의 공격은 점차 거세어져가면서, 동거했던 막스 에른스트는 구겐하임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떠나게 되고, 그녀또한 망명을 결정합니다.
결혼후 그녀는 다시 마르셀 뒤샹이나 브르통과 만나면서 초현실주의의 노선을 시작하게 되지요.
이후 남편을 따라 잠시 여행길에 올랐던 멕시코에서 그녀는 순수한 태고의 상상력을 발견하게 됩니다.
멕시코는 그녀에겐 상상력의 원천이었고, 그곳에서 오랜 동안 그녀는 자신의 작품의 대부분을 만들어 내게 되지요.
무엇보다도 그녀에 대한 평가는 이제까지 많은 부분 여성 미술가로서, 혹은 예술가로서의
생에 대해서 부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달리의 말처럼, 그녀는 유일한 초현실주의의 대가로 알려지게 되죠.
그녀는 많은 초현실주의 작가들에게 상상력의 원천이었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사실 에른스트 같은 작가들에게 있어서 이상적인 인간형은 여전히 '남성'이라는
고지식한 관념이었고, 이들이 추구하는 자유의 의미는 여성의 관계에선 찾아볼수 없는 것이라는 점에서
가부장적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대의 인식을 넘어 우뚝선 그녀의 모습은
현대 미술사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그녀의 그림을 좋아합니다. 프리다 칼로와는 완연히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죠. 현실의 무게를 넘어서 그들이 꿈꾸는 이상을 캔버스에서 '초현실'이란 형태로
그려냈던 그들의 용기가 오늘도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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