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앵그르의 그림을 살펴봅니다.
고전주의의 꽃, 적어도 앵그르의 그림은 그렇게 우리들에게
정갈함과 규준의 미학을 철저하게 따라가는 거장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단지 목욕을 하는 사람을 아름답다고 표현하기에는
그의 그림속에 드러나는 공중 목욕탕과 사적 목욕탕의 풍경은
우리로 하여금 '목욕'이라는 사회학적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조선 시대에도 몸을 정갈하게 하기 위해
사대부 또는 권문세가의 큰 집에는 정방이라 하여
목욕 시설을 갖춘 별채를 두고 있기도 하였답니다.
정방에서 흔하게 사용되었던 목욕법은 난탕, 청포탕, 복숭아잎탕
등으로 단순하게 몸을 깨끗이 씻는 일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하는데요.
어찌 되었건 지금의 목욕 시설처럼 개인의 집 안에 몸을 씻을 수 있는
시설을 갖추었다는 것은 확실히 청결 문제가
계급 문제였던 시절이 있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한마디로 몸을 청결하게 할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계급사회에 대한
일면이 되는 것이지요.
앵그르의 그림속에 나오는 공중 목욕탕
물론 프랑스도 예외는 아니었나 봅니다. 사적 목욕탕은 여전히
돈이 많은 사람들의 전유물이었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중 목욕탕은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거리가
만들어 지고 전파되는 장소였습니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지금도 그리 다를바 없지요
요즘....동네 목욕탕들은 하나씩 자취를 감추고 언제부터인가
이름도 요상한 무슨 온천과 찜질방이 우리 사회의 한 구석을 채우면서 부터
우리가 기억하는 목욕탕에 대한 아련한 기억은 그렇게 지워져가고 있나 봅니다.
로마 시대에는 목욕탕에서 정치·사회의 중요한 화제를 이야기하고
의논하기도 하면서 기꺼이 귀족 계급이 향락을 즐겼다고 합니다.
어디든 똑같은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백화점 바이어 시절
제조업체 사장님들께 업무관계로 끌려간 곳이
호텔 사우나였습니다.
로마인들은 열탕, 미지근한 온탕, 냉탕, 그리고 건조한 공기에
피부를 자극케 하는 지금의 사우나 같은 건욕법까지
하나의 목욕탕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며 인생의 한 부분을 즐겼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로마 황제는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걸
그 예전에 다 누리고 있었다는 말이되더군요.^^
지금도 이런 목욕의 사치는 엇비슷해
사우나에서(물론 사우나 방식이 보다 대중적인 위치까지 보급되었지만) 시
간을 보내며 비슷한 부류의 모임을 여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도 이 유사한 목욕 방식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은
계급간의 동질성 때문이라는 것이 문화사가들의 평이지요.
그렇습니다. 동일한 수준의 찜질방...강남과 강북의 수준이
갈라지고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사담들의
혹은 일상적 대화의 풍경들이 비슷한것은 아마도
이러한 이유일 것입니다.
위의 세잔느의 그림처럼 없는 자들에게
있어 목욕은 유산계급의 그것과는 아주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유산계급은 용도보다 넓은 장소와 많은 양의 물을 소비하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긴 시간을 그렇게 쓰면서) 일체감을 형성하고
유대감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목욕 방식은 대체로
샤워기에 일렬로 서서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몸의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지요
그들은 효용성 높은 공간에서 절약 정신을 일깨우며 물을 사용합니다.
한 부류는 목욕을 통해 사회 속의 몸의 위치를 확인하고,
또 한 부류는 몸속의 피로를 풉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따스한 물이 좋아지는 것은
세월의 탓인가 봅니다. 어머니와 함께 두들겨 맞으며 갔던
동네의 작은 목욕탕이 떠오를때가 있습니다.
비락우유를 먹기 위해 따라갔던
갈비씨의 한 꼬마가 이제는 훌쩍 큰 청년이 되어 버렸더군요.....
오늘따라 어머니가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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