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함께 읽는다는 것
전시기획으로 파리에 가 있을 때, 북클럽 트레바리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트레바리의 클럽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클럽장은 북클럽의 주제에 맞는 책을 선정하고 모임을 이끌어가는 자리입니다. 처음에는 잘 해낼 수 있을까? 의문도 들었지만, 결국 젊은 세대들과 함께 책을 매개로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첫 모임을 마쳤습니다. 패션에 관한 책을 고르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제 책 <옷장 속 인문학>을 마중물로 시작해도 되었지만, 저는 북클럽이나 혹은 책에 대한 글을 쓸 때, 제 책을 읽으라고 요청하지 않습니다. 다행히 패션에 관한 시각을 가질 수 있는 몇 가지 책들을 골라 함께 읽기로 했습니다.
책을 함께 읽는 일은 매력적입니다. 역사학자 애비게일 윌리엄스는 The Social Life of Books: Reading Together in the 18th Century에서 사람들이 모임을 만들고 책을 함께 읽기 시작한 그 역사의 흔적들을 추적합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등장하기 전, 책은 사람들을 함께 모이게 하고, 사교의 장으로 몰아넣는 강력한 매체였습니다. 함께 책을 읽는 북클럽의 탄생, 이동도서관을 통해 책을 구독할 수 있었던 서비스, 논픽션 및 픽션이 시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팔렸고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등등을 재미있게 풀어냅니다. 함께 읽으면, 혼자 읽을 때 놓치게 되는 것들을 발견하기 쉽고, 무엇보다 내 해석과 다른 타인들의 관점을 쉽게 들을 수 있다는 점이겠지요.
첫 모임에 우리가 고른 책은 일본의 저명한 편집샵 유나이티드 애로우즈의 수석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구리노 히로후미가 쓴 <트렌드 너머의 세계>입니다. 이 책은 우리가 패션이란 단어를 떠올릴 때, 항상 선두에 서는 단어, 바로 저 트렌드란 것이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시선이고, 그 시선을 갖기 위해 각자가 어떤 노력을 하고, 자신이 지금껏 40여년간 비즈니스를 하면서 자신만의 감성으로 걸러낸 브랜드 이야기며, 패션사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배운게 많습니다. 한 시대의 창의성을 찾고 이를 적용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삶을 살아내야 하는 이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정리를 잘했습니다. 전문적 지식과 함께 결국은 아마추어의 호기심을 가지고, 다양한 주변의 삶의 양식을 담아내야만 새로운 것들이 '발견'을 기다리며 우리를 유혹하게 된다는 것이죠. 다음 2회차 모임도 기대가 됩니다.
#북클럽 #트레바리 #패션큐레이터 #구리노히로후미 #트렌드너머의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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