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Education/딸을 위한 미술 이야기

앤디 워홀의 초상화전-루이비통 에스파스에서

패션 큐레이터 2021. 11. 10. 22:16

서아와 함께 루이비통 에스파스에 다녀왔습니다. 이곳에서는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항상 미술전이 열리는데요. 바로 이번 주인공은 앤디 워홀입니다. 앤디 워홀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는 팝아트란 장르와 동일시되는 예술가이죠. 그의 등장에는 1960년대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본격적인 소비사회로 변모한 미국이란 맥락이 존재합니다. 저는 워홀을 볼 때마다, 왜 그렇게 당대 인물들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을까? 하는 생각을 해봐요. 특히나 폴라로이드 카메라의 등장은 워홀의 작업과 연결되어 있지요.

 

즉석사진이 가능케 되면서, 아카이브에서 꺼낸 당대의 인물들을 하나씩 그려냅니다. 저는 철학자 마르틴 부버의 얼굴을 초상사진으로 그린 게 참 신기해요. 요즘 세대 분들은 철학자인 부버란 인물을 잘 모르겠지만, 지금도 <나와 너 Ich und Du>라는 명저는 고전으로 남아있어서 이 분을 접하게 될 때가 있을 겁니다. 이 사람처럼 인간과 인간 사이, 그 관계에 대해 고민한 분도 드물었으니까요. 부버의 주장은 딱 한마디로 인간이 참다운 삶을 살려면 '나와 너'의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는 나와 사물, 즉 비인칭으로 그것(It)으로 칭할 수 있는 관계와는 다른 것이죠.

 

나와 그것의 관계는 항상 한쪽이 도구여야 합니다. 내 성공을 위해, 내 사랑을 위해, 내 목적을 위해 소환되고 사용되고 버려지는, 그래서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일시적이고 기계적인 관계입니다. 이에 반헤 '나와 너'의 관계는 서로가 인격적으로 서로를 대면하고, 만나야 하는 관계입니다. 관계 속에서만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다는 말. 어찌 보면 참 진부합니다. 그러나 엄연하고 절대적인 진실이죠. 앤디 워홀은 부버를 그리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저는 워홀의 작업을 볼 때마다 이 사람만큼이나 현대인의 관종 기질을 잘 드러낸 작가도 없다고 생각해요.

 

끝까지 자신의 캐릭터를 개발하고 복제하고, 타인들의 캐릭터를 담으며 자신의 것과 뒤섞고, 자신의 자아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었겠지요. 이는 앤디 워홀 자신의 자아확장과 연결되니까요. 루이비통 매장을 보며 문득 앤디 워홀이 했던 말을 떠올려 봤습니다. "우리 시대의 미술관은 백화점이 되고, 백화점은 미술관이 되리라"는 예언인데요. 실제로 백화점을 비롯한 리테일 매장의 풍경은 마치 미술관의 화이트 큐브처럼, 그림과 작품을 걸어둘 수 있는 흰 벽으로 변하고 있고, 미술관은 시대의 정서를 담는다는 의도 아래, 우리의 모든 열망의 리스트를 하나씩 그러모아, 전시하고 있습니다. 서아가 이제 내년이면 초등학생이 됩니다. 요즘은 아빠와 함께 미술관에 다닙니다. 서아도 미술관 마실을 좋아해서 기쁘답니다. 이 시간이 무르익어갈수록, 한 장의 그림 앞에서 서로를 성찰할 수 있는 아빠와 딸, 나와 너가 되길 바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