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Education/딸을 위한 미술 이야기

한글로 만든 예술작품들-28자의 기적을 보게 되리라

패션 큐레이터 2017. 3. 13. 00:15



한글, 타이포 그라피의 미래 


서아와 함께 용산의 국립한글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많은 분들이 국립중앙박물관을 생각하지만, 서아의 첫 박물관 외출은 좀 독특한 곳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중앙박물관보다 인지도도 떨어지고, 사실 많은 분들이 들르는 곳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이곳 박물관의 고즈넉함이, 그 앞의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정원이 참 좋더라구요.  2층의 아이들 놀이방도 '한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특화되어 있습니다. 올해는 우리의 문자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 대왕 탄생 62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글날이 되면, 제가 예전에 썼던 보그체에 대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패션잡지들의 무분별한 영어사용에 대해 일침을 가한지도 4년이 넘었어요. 그 이후 한국에서 나오는 패션매체들도 언어 사용에 신중함을 보이는 모습입니다. 



이번 블로그 포스팅을 쓰리라 마음을 먹은 건, 지금 이곳에서 하는 특별전시를 소개하고 싶어서였습니다. <훈민정음과 한글디자인>이란 전시인데요. 원래 해외전시로 마련되어서 외국에서 쭉 돌고 한국으로 순회하여 들어옵니다. 2016년 일본 도쿄 한국문화원에서 개최해서 반응이 뜨거웠지요. 이번 전시는 현대작가들이 참여해서 한글에 담긴 다양한 의미들을 확장하는데 노력했습니다. 황형신 작가님의 <거단곡목가구 훈민정음 연작>입니다. 한글의 창제원리 중 자음과 모음 형상의 기본이 되는 획과 다양한 조합 가능성에서 조형의 미를 찾아내서 스툴, 벤치, 의자 등의 다양한 기능으로 쓸 수 있도록 디자인 했죠. 거단곡목이란 곡목의 내측에 많은 톱자국을 내어 휘는 방법을 말합니다. 나무를 휘어서 만든 저 의자 위에 앉아보고 싶더라구요. 

판재를 휘기 위해


민병걸 작가님의 목활자는 평면적으로 표현하는 활자를 넘어, 공간적으로 자유롭게 입체적인 구조를 가지니 개념적인 한글 활자입니다. 한글의 형태를 기초로 하여 시선과 빛의 방향에 따라 다양한 그림자로 여러가지 형태를 만들어내는데요. 은근히 조형성이 뛰어나서, 저는 이 작품은, 시제품으로 인테리어를 위해 내놓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음은 송봉규 작가님의 한글 블록입니다. 서아가 크면서 조금씩 블록으로 형상들을 만드는데, 그 형상이 물론 입방체란 가장 기본적인 형태를 띠고 있지요.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바탕으로 만든 블록인데 각 블록의 소재와 형태가 한글이 만들어지는 구성원리를 이용해서 만들었다는군요. 형상을 통해, 글을 배울 수 있도록 디자인한 점이 눈에 띱니다. . 



하지훈 가구 디자이너의 작업이 가장 눈길을 끌더군요. 작품 제목이 장석장입니다. 규산염으로 이뤄진 암석인 장석을 이용해, 고유의 서랍장을 만들었습니다. 이 장석은 전통 조선 목가구에 많이 사용이 되긴 합니다. 한글이 점, 선, 원이라는 3개의 근원을 철학으로 표현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태어난 문자인 것은 잘 아실겁니다. 장석이 가진 표면느낌에 한글의 천지인 3재를 표현하여 장식적인 느낌을 더했는데요. 여러 측면에서 사진을 찍어봤습니다. 



다음은 박연주 작가님이 만든 '파리를 사랑하세요' 입니다. 제 아내가 이 작품이 좋은지, 계속 작품 앞에 서 있었어요. 파리라는 단어를 하나의 표기 안에 파리(fly)와 파리(paris) 등을 포함 동음이의어가 7개나 된다네요. 동음이지만 다른 의미를 가진 파리를 넣은 문장을 섞고 배열하면서 이질적인 느낌,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처리할 때의 느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저는  서아의 첫 박물관을 한글을 테마로 한 박물관에 데려가고 싶었습니다. 서양복식사와 미술사를 가르치지만, 한글이 가진 28자의 제약이 만들어내는 무궁무진한 변주가 저는 좋습니다.  소리글로서의 힘이랄까요? 주변에 모국어인 한국어보다, 영어나 다른 언어를 가르치는게 경쟁력이라며 열을 올리는 분들이 꽤 됩니다. 저는 7권의 책을 번역한 역자이기도 하지만, 번역작업을 할 때마다 느낀게 있어요. 유학을 다녀와서 영어는 잘 한다. 그런데 이것이 곧 한 나라의 언어를, 내 언어로 옮겨내는 문화적 번역작업을 수월하게 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는 것이죠. 아무리 먹어도 배고프지 않을 것 같은 따스한 모유같은 언어. 아이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언어가 이 모음으로 이뤄진 세상입니다. 제 딸이 언어를 익히며, 사회의 일원이 될 때까지, 혹은 그 이후에라도 한글의 아름다움을, 모든 것을 조형해내는 우리 글의 힘을 조금은 더 명확하고 정교하게 배웠으면 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