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Education/딸을 위한 미술 이야기

내 나이는 15개월 7일-줄리 블랙먼의 사진을 보다가

패션 큐레이터 2016. 8. 8. 15:32



내 나이.....15개월 4일


아이와 한참을 놀아주다 지칠 때, 저는 미국의 사진작가 줄리 블랙먼의 가족사진첩을 봅니다. 볼 때마다 항상 웃음이 나요. 미국 미주리에서 아홉 아이의 맏딸로 태어난 그녀는 현재 세 아이의 엄마로, 사진작가로 활동 중입니다. 작가는 자신이  대가족에서 자란 자신의 경험을 녹여 가족사진을 찍습니다. 유쾌한 것도 많지만, 가족이란 사회적 단위를 '미학적 거리를 놓고' 성찰할수 있는 작품들도 많습니다. 예전 가족사진하면 자신의 딸들을 모델로 등장시켜 서늘하게 찍던 샐리 만의 <직계가족> 시리즈도 좋아했는데요. 




줄리 블랙먼의 사진은 샐리 만 보다는 일상과 더 가깝고 유쾌한 측면들이 많아서 좋아합니다. 그녀의 사진은 단순한 가족사의 일상적 편린을 담는 다큐가 아닙니다. 다큐 너머의 세계에 있는 친밀감과 일상의 환희, 아이들과 부모의 상호작용이 빚어내는 마음의 정경을 담지요. 그녀의 사진작품 속 구조와 미장센을 보면 17세기 네덜란드 바로크 미술의 거장이었던 얀 스텐의 작품과의 유사성을 볼 수 있습니다. 


얀 스텐의 <즐거운 가족> 캔버스에 유채, 1668년, 레익스뮤지엄 소장 


얀 스텐은 항상 네덜란드의 황금시대, 그 당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생생한 표정과 일상의 정경을 그렸습니다. 항상 가족 중심으로, 아이들의 다양한 포즈와 표정이 등장하는 그의 그림을 저는 좋아했지요. 한 개인의 풍성한 표정을 드러내는 그림들이 유독 네덜란드에서만 등장했다는 건 중요합니다. 서유럽의 귀족과 왕이 통치하는 구조와 달리, 네덜란드는 서민 중심적인, 국가의 통제로 부터 자유로운 개인의 삶과 사유가 보장되는 나라답게, 개인들은 자신의 삶과 자신이 속단 집단의 소중함을 자주 표현했지요. 




줄리 블랙먼의 그림 속 세계도 가족을 때로는 시니컬하게, 보기도 하지만 그 속에는 항상  따스한 웃음이 있습니다. 네덜란드 회화가 가진 빛의 밀도와 색채 팔레트, 무엇보다 사물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그림의 풍미를 더하는 양상들은 작가의 사진 속에서 잘 드러나있지요. 작가는 교묘하리만치 정교하게 적요한 정물을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배치시켜서, 다음 순간 무엇이 일어날까 하는 의구심을 관객들에게 부여합니다. 




이런 극적 긴장감이 그녀의 사진 속에 워낙 정교하게 녹아있는 탓에, 까딱 잘못하면 전형적인 가족사진이 되고 말았을 세계는 가족에게 닥쳐올 '어떤 위험'을 환기하는 장치가 됩니다. 가족은 결코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긴장하며 지켜야 하는 세계임을 보여주는 것이죠. 




제 딸 서아가 15개월 7일이 되었습니다. 저는 매일 매일 제 딸과 인사를 합니다. "안녕 서아야, 난 너의 아빠야. 아빠 나이는 15개월 7일이지. 너랑 같아. 제가 여전히 기어다니듯, 아빠역할로서 나 또한 걸음마를 겨우 시작한 수준이야. 우리는 함께 자라나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빠로서 배워야 할 게 너무 많거든. 그래도 우리는 서로 많이 사랑하고 살자" 라고 인사를 합니다. 



여전히 부족한 아빠라서 미안해. 라고 속으로 외쳐보기도 하죠. 속상한 건 아빠란 존재로서 조금씩 기량을 발휘하는 성년이 될 때, 안타깝게도 아이는 제 곁을 떠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곁에 마냥 두지 못하는 것이 삶이죠. 제 딸도 자신의 가족을 갖게 될 것이고, 혹은 가족을 갖지 않기를 결심한다 해도 자신의 생을 살아가야 할테니까요. 



그래도 헤어지는 날까지, 더 많이 많이 사랑하고 살려고요. 얼마나 갖고 싶었던 딸이었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