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가방이 아니다
시몬느 핸드백에 왔습니다. 이 회사는 대한민국 최고의 핸드백 제조업체입니다. 가방이라는 카테고리에서 세계적인 업적을 달성한 숨은 강자이기도 합니다. 세계의 어포더블 럭셔리 시장에서 주목받는 모든 핸드백 브랜드는 이곳을 통해 만들어지죠. 제품 하나하나에 클라이언트의 시장요건과 철학이 반영된 근사한 핸드백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혁신의 혁신을 더하고 있습니다. 박은관 회장님을 찾아 뵙고 왔습니다. 말씀 드릴 전시 기획안과이 있어서였지요. 회장님은 뵐 때마다 항상 제게 지적인 자극을 주시는 분입니다.
탁월한 인문학적 소양, 여기에 예술품 컬렉터로서 살아온 안목까지. 항상 제겐 모델 같은 분입니다. 패션을 하는 분으로서, 이분처럼 한 산업의 토대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긴 호흡을 가지고 투자하는 경영자가 많지 않습니다. 시몬느가 보여준 행보들은 항상 제겐 놀라움이었지요. 최근 핸드백 용어사전을 연세대학교 사전편찬팀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제조의 강점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일제식 용어, 영어, 우리말이 세대별로 혼재되어 있는 상황들 때문에, 후학들은 항상 제조법에 대해 공부하고 익히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것은 현장에서의 소통문제도 발생시켰죠.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용어의 통일입니다.
갤러리 같은 회사 내부를 산책하듯 걸었습니다. 꽤 오랜만이었네요. 회장님과 처음 뵌게 언제인가 싶은데, 이후로 핸드백 박물관이 생기고, 이곳에서 전시도 기획하고 저로서는 참 많은 추억과 기쁨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는 패션인들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이 회사의 진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한 명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회사에 관해 놓치고 있는게 있어요. 언론은 이 회사의 제품력과 매출규모와 성장속도 에만 주목합니다. 처음 회장님을 뵈었을 때 기업 규모가 7500억이었어요. 지금은 조 단위로 성장했죠.
중요한건 그 매출을 뒷받침하는 조직의 힘입니다. 이직율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낮습니다. 조직내 만족도가 큰 회사란 뜻이에요. 헤리티지를 지키며 기술을 유지해온 장인들을 우대하는 기업의 힘이기도 했습니다. 최근 불거진 탠디 제화의 문제를 되돌아보면, 확연히 드러나지요. 시몬느란 회사는 일찌감치, 자신의 능력과 전통을 이해해줄 우군으로서, 세계적인 고객층과 기업을 타진하고 관계를 맺어온 것입니다. 기업 내부에 견고하게 자리잡은 장인정신의 가치를 잘 알고 있는 기업입니다. 이건 최고경영자의 철학이 없으면 불가능하지요.
갤러리 같은 로비를 걸으며 기억하는 건 가방을 만드는 사람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시몬느란 회사, 그 이야기, 기술, 모든 것에 대해 알고 싶은게 너무나 많습니다. 이것을 패션전시로 옮기려면 특히나 그렇지요. 앞으로도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겠죠. 좋은 분을 만나고 나면 항상 앞으로 만들어가야 할 미래의 꿈들이 차올라서 기쁩니다.
저는 전시를 통해 디자이너의 작품 전체를 보거나, 기업의 철학을 살펴보거나, 옷에 담긴 역사적인 의미들을 되물어 왔습니다. 안타깝게도 항상 한국에서 열린 패션전시의 대부분이 외국에서 이미 만들어진채로 수입된 것들이 많았지요. 우리 것을 말할 용기가 없거나, 혹은 능력이 안되어서 입니다. 큐레이터들은 패션의 중요성은 인지하면서도, 정작 패션을 전시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을 던지지 않았습니다.
가방을 만드는 회사라고 규정하는 순간, 이 회사의 깊은 내면은 사라집니다. 한 회사의 상품라인을 비평적인 눈으로 살펴봐야 하는 이유에요. 각 상품, 클라이언트의 세계를 오히려 폭넓게 확장시켜주고, 이와 함께 동반성장하며, 이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도 조탁해가는 브랜드. 진짜 귀합니다. 패션계의 많은 전문가들이 시몬느를 주목하고, 이 회사의 행보를 응원하는 이유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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