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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 디자인의 신화-오영식 디자이너를 만나다

패션 큐레이터 2018. 4. 5. 01:22



오늘은 현대카드 디자인의 근간과 철학체계를 만든 토탈 임팩트의 오영식 대표님과 디자인 담론을 팟캐스트와 페북으로 전해주시는 디자이너 김광혁 님을 만났습니다. 2015년에 출간된 <현대카드 디자인 스토리 Hyundai Card Design Story>를 읽으며 한번 꼭 뵙고 싶었는데요. 우연한 기회에 연이 닿아서 디자인기업 토털 임팩트가 있는 갤러리아 포레에 다녀왔습니다. 카드 회사 중 후발주자였던 현대카드가 오늘날 업계의 신화로 발돋움할 수 있게 된 데는, 한 기업의 정체성을 조각하는 체계와 철학을 다듬는데 심혈을 기울여온 오영식 디자이너 같은 분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카드 디자인 스토리는 디자인은 결국 문제해결 과정이며, 예기치 못한 변수와 변화를 받아들이며 정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임을, 현대카드 프로젝트란 사례를 통해 설명합니다. 입문서적으로 읽어도 좋습니다. 각 과정이 가진 가치들을 설명하니까요. 한 기업의 마케팅과 그 총체적 과정을 면면히 설명하며, 일종의 아카이브로 기록된 책을 읽자니 기분이 좋습니다. 한국의 패션기업 중, 아카이브는 커녕 몇년만 지나도 자료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기에 그렇습니다. 



여성복 패션으로 순위에 드는 회사들도 그랬습니다. 그러니 브랜드북을 만들어달라고 제게 요청은 하는데, 그들 스스로 자료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파다하구요. 이런 프로젝트는 저는 더 이상 받지 않습니다. 신문기자출신 혹은 패션잡지사 에디터들에게 보내라고 패스합니다. 그들이 쓸 글의 결이란게 뻔하거든요. 역사성을 스스로 함몰시키고, 현재의 자리까지 오기까지 그들이 겪으며 해결해온 문제들을 표면화하지 못합니다. 참 안타깝지요. 현대카드 디자인 스토리의 첫 부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자들이 현대카드의 정태영 부회장에게 감사를 표하는 내용입니다. 저는 잘 몰랐는데, 현대카드 디자인을 다른 누군가가 '자신'이 했다고 이야기 하고 다닌 모양입니다. 한국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죠. 



창조적 성취물에 대해 크레디트가 명확하게 부과되지 않는 일이 여전합니다. 저 또한 이런 일을 당했지요. 전시를 소망하던 한 가방 디자이너가, 정작 미술관을 잡아주고, 기획과정을 보살폈습니다. 도록의 모든 글과 텍스트를 쓰고 정리했고요. 그런데 말을 바꾸더라구요. 자기가 다 했다면서요. 그때는 양보하고 좋게 보냈습니다. 이런 식으로 협업의 과실을 다 자기 혼자서 했다고 말하는 이들은 끝이 좋질 않습니다. 그 디자이너 자기 말로는 자기가 성과를 못내 잘린 회사의 회장이 '자기를 붙잡으려고 안달이다'라고 말하던데, 정작 그 회장님은 '꼴도 보기싫다'가 결론이었습니다. 거짓말로 스스로를 포장하는 디자인계 사람들, 은근히 많더라구요. 저는 신의와 투명성, 땀의 가치를 믿는 인간입니다. 온 몸을 다해, 자신의 생식기관인 꽃을 여는 저 자연의 당당함을 볼 때마다, 인간의 풍경이 더 못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사무실에서 나와 서울숲을 걸었습니다. 3월 말부터 계속되는 강의로 지쳐있었습니다. 어제는 대전의 고려대 행정대학원의 최고위 과정에 특강을 갔는데, 대전청사 앞길의 벚꽃들이 곱다는 생각만 하고 걷지도 못했습니다. 항상 시간이 없었거든요. 핸드폰으로 찍어서 화질이 아쉽습니다. 어쩐지 사람들이 중형 카메라로 무장한 채, 연인들을, 자신의 아이들을, 벚꽃의 만개한 풍경들을 담더라구요. 꽃의 기습을 받은 하루였습니다. 행복한 공격이었지만요. 펄떡이는, 싱싱한 봄바람이 꽃잎들을 애무하고 지나갑니다. 그 아래 지나가는 인간도 자연의 품을 느끼며 안깁니다. 산책하는 길, 느린 호흡으로 인간을 생각하고, 앞으로 써야 할 글과 출판해야 할 책에 대해서 고민했습니다. 길을 걷는 일은 생각을 줍는 일입니다. 미만한 초록빛의 봄이, 만개한 분홍으로 가득한 이 시간, 좋은 사람들을 만나 저 또한 동기부여도 되고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실로 내 안의 발전소를 다시 돌리는 일인가 봅니다. 힘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