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우 선생님을 생각함
패션디자이너 오리지널 리, 이신우 선생님 자택에 왔다. 8월 말에 열리는 패션전시의 두 주인공 중 한 분이다. 80년대와 90년대는 한국패션의 전성기다. 70년대말부터 시작된 기성복 시장과 함께, 정치적으로는 암울했지만, 이 상흔의 내면은 패션을 만나 새로운 분출구로 삼았다. 개성넘치는 디자이너들이 나타났고, 시장에서 최선을 다해 경합했다. 나는 이 시대를 살아간 많은 디자이너 중, 오리지널 리, 이신우 선생님과 앙드레 김 두분을 골라 전시에 올리기로 했다.
한 분은 타계하셨고, 또 한 분은 시장에서 많이 잊혀지셨다. 참 안타까왔다. 그들이 보여준 일관된 디자인 철학과 방법론, 답답했던 시대에 옷을 통해 보여주려고 했던 세상에 대한 비전이 놀라왔다. 90년대 초반의 룩북을 보고 있자니, 80년대의 룩북을 보고 있자니, 세월이 흘러도 좋은 작업들은 여전히 '지금 이 순간' 기억되어야 하고 누군가에게 공유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강화시킨다. 한편으론 그들이 살던 세대는 패션의 전성기였다. 이름 뒤에 패션 디자이너란 직함을 달면, 참 신비한 눈빛으로 응시해주던 시대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경합했지만, 기실 그 내면을 보면 외국패션의 추종이나 은연슬쩍 베끼는 작업도 정말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는 이들이 있다. 내가 앙드레 김과 이신우 선생님 두 분을 반드시 무대에 다시 세우겠다고 한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술이나 패션, 혹은 디자인 영역에서 독창성(Originality)란 것을 만들고, 그것을 오랜 시간에 걸쳐 누적하며, 자신의 주요한 필체와 패턴으로, 옷에 담아내는 정신으로 만들어가는 이는 아주 극소수다. 이신우 선생님의 작업들을 볼 때마다 '너무 빨리, 늦은 세상에' 태어난 것이 슬펐다.
60년대부터 착실하게 파리 무대를 준비하며 일본의 내면적 정신성을 포장했던 저패니즈 디자이너들과 달리, 한국의 디자이너들은 이런 중요한 계기들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 열악함 그 자체로 설명되던 시대, 패션을 가지고 이 나라를 알려온 디자이너들이 있다. 그 문을 여는 것, 무엇보다 한 나라의 문화와 예술을 패션을 통해 소개하려고 스스로 마중물이 되었던 그들의 이야기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택에서 선생님을 뵈었다. 나는 이 분에게 거장이니, 전설이니 하는 형용사를 쓰고 싶지 않다.
옷을 사랑하고, 하루종일 옷을 만드는 작업만으로도 스스로 행복했던 한 인간을 봤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한 길을 정직하게 걸었던 이들에게는 향기가 난다. 스스로 뒤로 물러서며, 이제는 내려 놓았다고 하고, 잊혀졌다고 말하지만 2012년 이신우 선생님의 컴백쇼를 봤을 때, 흘렸던 눈물이 다시 났다. 오래된 자료들을 설명해주시는 선생님 목소리가 환하다. 정리하며 하나씩 공부하는 중. 평생을 디자이너로 살아오신 깊이는 자신이 잉태한 옷을 하나하나 짚어주실 때마다 되살아난다. 애써 선생님과 사진촬영을 하고 싶었는데 고사하셨다. 전시회 오프닝때 멋지게 오실 테니 그때를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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