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나의 행복한 레쥬메

포항시립미술관 특강-패션을 사유하는 삶을 위하여

패션 큐레이터 2017. 7. 20. 02:47



포항 시립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2년 전 포항시립미술관 아카데미에서 특강을 한번 했던 계기로 다시 한번 불려갔네요. 저는 많은 분들이 패션에 대한 뿌리깊게 자리잡은 오해와 편견을 깨기를 원합니다. 패션이라는 단어 속에 담긴 중층의 겹겹히 포개어있는 의미들을 하나씩 풀어갈 때 기쁨을 느낍니다. 이 과정을 통해 신체, 사회, 시대정신, 변화와 혁신, 내면의 영성들이 어떻게 한 벌의 옷과 영향을 주고 받는지 이야기를 해나가지요. 복식의 역사를 주로 가르치지만, 대학의 복식사 교과서에 나오는 천편일률적인 스타일 묘사 중심의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저에게 패션의 역사는 그 자체로 미의 역사였으며, 미술사의 하위 영역이자, 인류학적인 사색과 사회학적인 견고한 성찰, 과학사적 혁신, 심리학적인 충만함과 연결된 거대한 역사였으니까요. 어느 시대에 무슨 옷을 입었다 따위의 지식, 디테일한 소재와 컬러, 실루엣에 대한 설명은 한 두차례면 끝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옷을 입은 인간의 삶이었습니다. 그가 어떤 열망을 품었고, 어떤 인간의 되길 소망했으며, 나는 누구이며, 나는 무엇을 하는 존재로 기억되고 있는지, 이런 요소들을 찾아내기 위해 문사철이란 인문학의 밀도있는 토대의 하부를 하나씩 파내려가야 했습니다. 




새로운 사회과학/인문학의 접근방법들을 익힐수록 옷에 묻어나는 다양한 시대별 표정을 읽어내는 속도와 방향은 풍성해지고 깊어졌습니다. 젠더이론을 공부하면서 여성복의 뿌리를 공부해보고, 그 속에 담긴 남성 가부장제 사회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도 그랬고요. 어찌되었든 말이 길어졌습니다만 오늘 시립미술관 특강은 정말 힘을 다해 하나씩 풀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수업 후 관장님께 인사드릴 여유도 없이 부랴부랴 제게 남은 2시간 정도의 여유를 누려보려고 죽도시장 주변을 거닐고 수요미식회에 소개되었다는 물회집도 들렀습니다. 지방을 갈 때마다, 조금씩 하나하나 지역의 작은 구석을 돌아보고 산책하며, 도시의 표정을 읽습니다. 포항은 참 근사한 도시입니다. 바다와 산과 호수가 이 작은 공간에 존재하지요. 




도시의 서정을 채우는 면면이, 영일만의 코발트빛 해원과 어울린 짭조름한 햇살의 무늬가 손바닥 위로 어룽거리는 오후였습니다. 포항의 전통 물회라고 소개된 집에서 맛본 물회는 육수없이 고추장에 비벼 먹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함께 나온 따끈한 매운탕도 좋고요. 물회는 항상 목넘김이 좋더라구요. 식사 후 해안도로에 밀집된 한 카페에 들렀습니다. 




시간은 이미 퇴근 시간대와 맞물려 제게 허락된 시간이 길지 않았지만, 감사하게도 택시 기사님께서 '지금 시간이면 택시가 잘 안올 것"이라며 기다려 줄테니 커피 마시고 쉬다가 역으로 바래다주겠다고 하시더라구요. 교통편이 힘든 곳에서 이런 작은 친절을 받으니 어찌나 감사하던지요. 저도 질수 없어 커피집 주인장에게 사정을 말씀드리고 커피 한잔을 더 시켜 기사님께 보냈습니다. 




당일치기 강의로 내려갔지만 오늘 하루는 충만하게 채울 수 있었던 하루였네요. 포항은 항상 내려갈 때마다 즐거움이 큽니다. 강의에 함께 해준 많은 분들에게도 감사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