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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튀르의 시대가 가고 있다-랑방을 생각하며

패션 큐레이터 2017. 7. 31. 02:37



쿠튀르 시대가 가고 있다

이번 달 초엽, 프랑스 패션 브랜드 랑방의 총 디렉터였던 부츠라 자라가 경질되었다. 1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단 두번의 컬렉션을 보여주고 떠나게 되어 아쉽지만, 그만큼 오트 쿠튀르란 패션시장의 변화가 가파르다는 뜻이리라. 게다가 부츠라 자라는 자신의 이름을 건 독립 브랜드를 포기하면서 까지 최선을 다해 브랜드의 혁신작업에 매달렸지만 매출 결과는 참담했다. 14년간 랑방의 디자인 제국을 빚어왔던 앨버 알바즈의 뒤를 이었지만, 매출은 30퍼센트 가량이 떨어졌다. 회사로선 급해질 수 밖에 없었다. 이번 랑방이 뽑은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온라인쪽 강화라는 기업의 전략적 방향성에 맞추어 영입한 올리비에 라피두스다. 그의 아버지는 60-70년대 프랑스 패션의 시인이라 불리며, 유니섹스 패션을 유행시켰던 테드 라피두스다. 비틀즈가 그의 주 고객이었다.



랑방의 소유주인 대만의 미디어 재벌 Shaw-Lan Wang 은 128년의 유서 깊은 브랜드를 대중적인 느낌의 패션 브랜드로 바꿔볼 의향인가 보다. 프랑스판 마이클 코어즈를 만들어달라고 라피두스에게 주문을 했다는 걸 보면 말이다. 고객층 확대를 위해 가격대도 떨어뜨릴 것이란다. 물론 이 과정에서 최상의 품질을 고집하는 오트쿠튀르의 전통적 체계와 기업 이윤의 추돌은 불가피해보인다. 사실 128년이나 된 유서깊은 브랜드의 DNA란 것이 미학적인 옷의 체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전통적 방식에 기반한 테일러링과 패턴의 실험과 정교함, 독자적인 소재개발에 투자하는 비용, 옷 한벌을 만드는데 투여하는 물적 조건으로서의 시간이란 자산이 존재한다.



사실 부츠라 자라의 디자인은 위험성이 컸다. 너무나 강력한 여성성을 기반으로 했다는 점이 현대 패션시장의 전반적 주류의 감성과도 맞지도 않았다. 젠더의 문제를 재현하는 옷의 논리가 한쪽으로 함몰되어 있었다고 해야할까? 이런 와중에 온라인 사업에 두각을 드러냈던 라피두스의 '기술'에 대한 감각이 어떻게 오랜 브랜드를 변화시킬지 궁금하다. 이제 패션시장은 e-Couture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유서깊은 패션 하우스들의 변화의 속도도 가파르다. 온라인 시장에서의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해 보여주는 그들의 치열한 전략과 조직재설계 과정은 눈물겨울 정도다. 



오트 쿠튀르란 단어, 방송에서는 함부로 희화화하며 말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이 단어는 전통적인 제작 관행과 절차를 지키는 소수의 패션 하우스에게만 주어지는 권력의 은유였다. 이 권력은 이제 기술의 변화와 함께, 기술 중심적인 사유를 향해 나아가는 이들의 손으로 넘어가는 것 같다. 패션의 한 획이 허물어져간다. 복식사를 공부하면서 프랑스의 오트 쿠튀르 문화를 공부한다는 것은 곳 패션의 존엄성을 배워가는 과정이었다. 그들이 하우스 내의 공방에서 한 벌의 옷에 할당된 법적 시간을 충분히 녹여내 만든 옷들은 이제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르겠다. 



시대의 기준은 타협할 수 밖에 없지 않는가? 1900년대 초반 성립된 파리의상조합의 '오트 쿠튀르'의 기준은 당시의 기술집적수준을 배경으로 한다. 시대가 변한다는 것을 결국 사물과 관계를 맺는 우리들의 감성구조가 변한다는 뜻이다. 요구조건이 달라지고, 옷이란 사물에 대해 부여했던 의미와 상징의 체계도 변하며, 그것을 입어낸 인간에 대해서도 새롭게 정의내려야 한다는 뜻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