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런웨이를 읽는 시간

소울팟 2017 F/W-땡큐 포더 패션!

패션 큐레이터 2017. 4. 3. 04:15



소울팟을 생각하며

패션 디자이너 김수진을 알게 된 지 횟수로 7년째. 이번 서울패션위크는 그녀의 10주년을 기념하는 시간이었다. 컬렉션은 '지금껏 그녀와 함께 해준' 스태프들에 대한 우정의 몫을 보여주었다. 객석엔 디자이너가 손수 쓴 편지가 놓여있었다. ‘잘 견디었노라. 크루에게. 동료에게. 스스로에게’라고 쓰여 있었다. 한 벌의 옷을 만들고 대중에게 선보이고 팔고, 수익을 거둬들이는 일은 '집단'의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들에 대해 이렇게 솔직담백한 고백을 하는 그녀가 고마왔다. 



패션계는 찬연하게 피었다 소리없이 지는 디자이너로 가득하다. 그들의 봄앓이엔 너무나 많은 상처와 신음소리가 있다. 이런 업계 특유의 풍광 속에서 오랜 시간 한 명의 디자이너에게 지속적인 애정을 갖기란 쉽지 않다. 디자이너의 작업을 미술관에서 '전시' 하는 내겐 디자이너의 유효함이란 '차별화된 디자인 능력'이 아닌 소통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해내는 능력에 있다고 봤다. 김수진은 이 유효함의 기준에 관하여, 내겐 탄탄한 지렛대가 되어주었다.



이번 김수진의 컬렉션은 '인간에 대한 예의'를 물질화한 세계다. 그와 함께 해준 이들에게 돌리는 감사가 고마왔다. 디자이너 크리스천 디올이 자신의 자서전에서 디올 하우스가 성공하기까지, 자신에게 영감을 주고, 때로는 질책해준 스테프들을 언급하며 모든 영광을 그들에게 하나하나 돌리는 글을 쓴다. 디올의 이런 면모가 존경스러웠던 것은,  패션 디자이너란 존재를 신화로 만들고, 이를 통해 '지속되는' 성장을 만들어온 패션계 내부의 관행에 나 조차도 익숙해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글은  패션이 개인의 작업을 넘어, 결국은 집단의 꿈을 짓는 일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그 꿈의 생성과 펼침에도 결국은 홀로 격절된 섬에 유폐된 한 명의 디자이너의 몫이 아닌, 모든 이들의 공동작업이 필수라는 것을.



감사할 수 있다는 것, 그의 삶이 타인과의 공존을 통해 지속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때라야 가능한 미덕일지도 모르겠다. 감사할 수 있는 인간은 그 자체로 숭고에 맞닿아있는 것이다. 이번 런웨이에 선보인 옷들은 마치 '기억의 조각'들을 패치워크하듯, 시간의 앙금들을 새겨놓았다. 다양한 소재는 이질적인 경험의 무늬로 뒤섞이며 조립되어 있다. 



고스(Goth) 스타일의 옷들, 빅토리안 풍의 검정색 레이스, 울과 니트, 가죽과 저지, 벨벳, 레이스 등의 소재로 완성한 원피스는 고딕시대의 우플랑드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슬릿(slit)을 넣은 옷이 많았다. 마치 디자이너가 지금껏 감내한 상처의 무늬들처럼. 조각난 상처들을 하나씩 기우듯, 연결고리로 이어붙인듯한 그 느낌이 계속 내 머리 속에 남았다.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무대로 나선 디자이너를 보고 있자니 감개가 무량하다. 이렇게 내가 한 사람을 알고 지낸 시간이 길었구나 하는 생각. 디자이너 김수진은 내가 기획했던 <현대미술, 런웨이를 걷다>에도 참여해서 특유의 큐레이팅 능력을 보여주었었다. 미술관의 다른 큐레이터들에게 가장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녀는 한번도 허투른 적이 없다. 



"삶을 하나의 무늬로 바라보라. 행복과 고통은 다른 세세한 사건들과 섞여들어 정교한 무늬를 이루고 시련도 그 무늬를 더해주는 재료가 된다. 그리하여 최후가 다가왔을 때 우리는 그 무늬의 완성을 기뻐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 아메리칸 퀼트의 대사가 떠오르는 런웨이 무대. 



그녀가 있어 이번 서울패션위크도 행복했다. 땡큐 포더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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