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패션위크가 끝났습니다. 많은 디자이너의 런웨이를 보기위해 잦은 방송 출연으로 좁아진 스케줄을 조정해야했어요. 디자이너를 만나고, 작업에 박수를 쳐주는 일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시간을 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선 제가 좋아하는 패션 디자이너 포스트 디셈버 박소현 디자이너의 2015년 추동 컬렉션 후기를 올려볼까 합니다.
저는 디자이너 박소현이 디자인 연구 방법론을 자료를 통해 충실하게 그려내는 걸 자주 봤습니다. 2015년 봄에는 중세 말 패션의 한 흐름이었던 슬래시(Slash)를 테마로 했던 외국의 전시를 접한 후 '슬래시'를 현대적으로 풀더니, 2015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선 소리를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습니다. 런웨이를 걷는 모델의 옷에는 다양한 패턴이 아로새겨져 있었는데요. 디자이너의 영감노트를 보니 18세기 독일의 물리학자이자 작곡가였던 언스트 클라드니와 21세기 사운드 아트로 이름을 떨치는 에드윈 반 더 헤이든의 소리작업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적혀있군요. 소리의 파동을 패턴화하고 이 형상을 정교하게 레이저로 잘라내 무늬를 만들었습니다.
위의 사진은 에드윈 반 더 헤이든이 미술관 내벽에 자신의 음파, 음의 파형을 디자인 요소로서 투사한 장면입니다. 여기에 언스트 클라드니의 작업을 결합했습니다. 언스트 클라드니는 음악인들에겐 '음향학'의 아버지로 알려질만큼, 소리와 파동, 음향 패턴이 만들어내는 떨림을 시각적으로 표현해낸 사람입니다. 결국 소리란 것이 떨림(Vibration) 현상을 통해 우리의 귀에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타인의 신음소리, 자연 만물이 토해내는 소리 앞에 우리의 몸이 공감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소리의 떨림이 만드는 내적풍경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떨림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죠.
이런 패턴물을 패션쇼의 주요한 모티브로 삼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치밀한 계산이 밑바탕을 이루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언스트 클라드니의 소리의 초상화 작업을 옷을 통해 푸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박소현의 의상은 옷을 통해 표현하는 음향학적 초상화입니다. 사운드 아트와 패션의 결합이라 감히 말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러니 런웨이가 더욱 인상 깊었겠지요?
음으로 그려내는 초상화를 옷에 입히는 일. 사람들은 패션에서 패턴물을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대로 판박이하면 식상해하기 쉽습니다. 말 그대로 디자인 과정에서
또 한번의 변화를 겪어내야 하고 풀어내야 합니다.
이번 런웨이가 마음에 드는 건, 마음껏 상업적 속성과 예술적 속성의 내부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소재의 질감, 디자인, 선을 가지고 노는 디자이너의 모습이 제 눈에 선연하게 들어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Sound Portrait 란 소리의 속성을 파악하고 이를 포착해 표현해내는 소리의 그림입니다. Portrait의 어원을 보면 '무엇을 끄집어내다'란 뜻이 있습니다. 그만큼 하나의 속성을 깊게 파고 들어야만 자신이 규정한 속성을 옷 밖으로 끄집어 낼 수 있는 거죠
제프리 캠밸의 구두가 눈에 들어왔고, 롱 스커트의 밑단에도 형상화된 소리의 패턴들이 런웨이를 거닐면, 왠지 옷에서도 바스락거림 이상의 소리가 날 것 같아, 때로는 눈을 감고 옷과 모델의 동선을 따라다녔습니다.
패션 산업내부를 보면 디자이너의 삶이 힘들다고 이야기 합니다. 1800년대 후반, 공예의 일부였다가 패션이란 거대한 산업을 만드는주요 창작자로 자리잡으며 시작된 디자이너란 이름은 한국에선 항상 낮은자리에 위치합니다. 상업과 땔 수 없는 운명을 가진 터라, 패스트 패션이 창궐하면서 옷을 통해 자신만의 시그너처를 담아왔던 디자이너의 작업들이 반향을 내기란 더더욱 어려워지고 있죠. 그럼에도 많은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소신과 철학을 표현하기 위해 자리를 지키며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디자이너의 옷에서, 힘든 싸움을 벌이는 디자이너의 신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래도 참 장하지요? 숙제를 마친 디자이너의 표정이 궁금합니다......격려의 문자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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