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런웨이를 읽는 시간

이것이 파워 드레싱이다-할스턴 헤리티지의 2017년 F/W 컬렉션

패션 큐레이터 2017. 3. 10. 17:06



패션의 역사에서 할스턴이란 미국 디자이너의 위상은 참 독특하다. 현대 미국패션의 문법을 만든 디자이너로 기억한다. 앤디 워홀과의 다양한 작업들이 당시 피어나는 미국의 자신감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런 당찬 느낌, 내적 자신감은 결국 '편안한 제스처'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자신감 넘치는 여성상을 빚어낸다. 오랜 세월이 지나, 할스턴의 사후, 디자이너의 유지는 할스턴 헤리티지로 계속 이어진다. 




이번 2017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는 전통적으로 할스턴이 선보여왔던, 상류층의 안락함과 편안함, 건축적인 실루엣과 형태감을 그대로 살렸다. 물론 여기에 현대적인 느낌으로 비튼 포인트 작품들이 가미되었다. 에르베 레제(Herve Leger)와 BCBG 막스 아즈리아를 거쳐 할스턴에 합류한 크레에이티브 디렉터 마리 마젤리스는 전통의 브랜드에 현대적인 감각들을 흠뻑 쏟아부었다. 




그녀는 이번 컬렉션에서 평론가 수전 손택의 말을 일종의 라인으로 사용했다. '중요한 건 기질이야, 사회적 위치가 아니라고' 라는 말이었다. 이 말을 되씹어보면, 결국 사회적 성공을 위해 현재의 가진 것보다, 현재의 돌파구를 만들어가는 기질을 사랑하는 것이 더 큰 힘이 된다는 것, 이런 메세지로 격려하려는 뜻은 아니었을까 싶다. 



이번 작업은 독일의 조형작가인 안젤리카 글라이카의 형태작업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온 듯한 것들이 많다. 그녀는 항상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서 표면의 효과를 실험한다. 심도와 깊이(Depth)는 그녀의 주요한 조형하고자 하는 개념어다. 얇은 평면의 종이를 이용해서 여기에 조각을 통한 생명을 불어넣는다. 각각의 종이들은 한 장의 스트링, 끈으로 묶여서 마치 동굴같은 느낌의 내면을 갖는 작품으로 변모한다. 종이로 만들어낸 동굴은 여성들이 사회적 삶에서 통과해야 할 어떤 시험 같은 것은 아닐까? 




종이들은 임의로 막 찟은 것들이다. 의도성을 배제하고 우연하게 찟어낸 종이를 하나로 묶으면서 좁은 탈출구를 만들어낸다. 작품의 외면은 생각보다 단단하고 파삭파삭하다. 공간을 쉽게 항해하기 위해 유연한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각 종이의 질감이 작품 전체의 감상에 중요하다. 그녀에게 종이는 대로는 산을, 동굴을 만들어낸다. 그 속으로 빛과 공간을 창조해 투영한다. 어디에 있건 우리에겐 길이 있음을 확신시키기라도 하듯 말이다. 




시대별로 사회적 위상과 미에 대한 좌표값은 변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유행양상의 변화 속에서도 고유한 특질의 스타일을 구축하고 섭렵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어야 한다. 한 마디로 나 자신의 견고함을 믿는 파워 드레싱을 즐기는 여성들을 목표로 한 것이다. 크게 입는 니트 웨어에서 여성적인 수트, 몸에 붙는 드레스, 기능성을 살린 에슬레저 느낌의 슬랙스와 재킷은 전문직 여성들을 위한 옷장 품목이다. 



70년대 할스턴의 주요 고객들을 다시 캔버스에 옮긴 느낌이랄까? 회색의 세퍼레이트 의상, 여기에 고전적인 매듭과 드레이프를 이용해 우아함과 힘을 함께 잡았다. 인조 모피 재킷과 육중한 느낌의 모직 오버코트, 옷에는 화려한 플라운스를 이용해서 여성성도 살렸다. 편안함을 극대화한 라운지 웨어 느낌의 코트들도 좋았다. 



여성의 삶을 둘러싼 다양한 도전들, 그 도전에는 여러가지 겹겹의 문제들이 말려있다. 레이어드 된 여성의 룩은 바로 이러한 도전을 일상에서 풀어가려는 노력의 일환이 만들어낸 발명품이다. 입고 벗고, 편하게 걸치는 일. 이 세가지 기본값이 빚어내는 변주들이 다양한 상황 속에서 나 자신을 스타일링하기 위한 무기가 되는 것이다. 



할스턴의 패션 전시였던 아메리칸 우먼을 봤던 때를 기억해본다. 요 며칠 파워 드레싱의 미학을 소개하는 글들을 원고로 써서 보냈다. 옷은 변모하지만 여성들이 부수어야 할 사회의 벽은 여전히 두껍다. 월스트리트의 황소와 맞짱을 뜬 소녀상이 인기다. 파워 드레싱이 여성들을 위한 갑옷이자, 스타일링의 견고함을 세워주는 어휘가 되길 바람한다. 할스턴 헤리티지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