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나의 행복한 레쥬메

창원문화재단 특강-현실의 의미를 창조하는 패션의 힘

패션 큐레이터 2017. 3. 8. 19:28



패션이란 매듭, 그 인연의 시간


창원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수요문화대학 특강을 다녀왔다. 성산아트홀에서 열리는 이 연례 특강은 올해로 11년째를 맞이한다. 나로서도 4년 전부터 이곳에 강의를 나갔다. 첫 강의 때는 결혼소식을 전했고, 두번째 강의 때는 서아가 태어났고, 이제 세번째 강의 때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등원했다. 네 강의를 3번째 듣는 분들도 있다. 이런 이유로, 기존의 내용과 다른 포맷과 형식, 내용을 가미해 반드시 새로운 의미의 옷을 입혀야 한다. 강의도 결국은의미를 풀어가는 행위이고, 그 퍼포먼스의 중심점에 있는 의미를 풍성하게 강사 자신이 체득하고, 수집하며 분석해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이곳이 나는 좋다. 추억을 컬렉팅하듯, 만남과 함께 강의의 내용도 단단해진다. 패션의 의미를 푸는 일 하나로, 많은 분들과 인연의 매듭을 만들게 된 일이 나는 자랑스러웠다. 창원문화재단 산하의 성산아트홀에서 열리는 강의는 10시 반에 시작한다. 시간에 맞춰 가려면 유일하게 새벽 5시 40분행 창원중앙역으로 가는 KTX를 타야 한다. 



새벽에 진하게 커피를 한잔 마시고, 강의 내용을 머리 속으로 복기하며 아트홀에 갔다. 500여명이 넘는 수강생 분들이 열심을 다해 강의를 듣기 위해 오셨다. 난 사람이 많을수록 강의가잘된다. 마치 연기하듯 강의의 의미, 내 몸과 목소리와 인문학적 성찰은 하나의 좌표 위에 배치된다. <옷장 속 인문학>을 쓰면서 배운게 있다. 패션을 인문학의 틀로 바라보되, 문사철 각 분과의 언어의 무게를 정교하게 재어보는 것이다. 인문학에 대해서는 역사가 가장 우선이고, 이 사실적 근거들이 인간의 상상력과 만난 문학을, 그 이후에는 사변적 철학으로 이어지는게 가장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역사라는 거대한 뜰채는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옷에 대해, 정립된 일반적 담론의 형식으로서 그 역할을 한다. 옷을 둘러싼 우리들의 현실세계를 설명하거나 정당성을 부여하는 작업을 해준다. 옷의 진화과정을 현재의 우리의 변화양상과 연결하는 것은, 그 옷을 인간의 외양 뿐만 아니라, 삶의 현실까지 정당한 몫과 의미를 부여해준다. 철학은 정당성의 부여와 설명을 넘어 현실의 의미를 발명하고, 새롭게 만들어낸 의미를 또 다른 외양의 실천으로 이끈다. 두 가지는 우월의 관계가 아니라, 상호조응하는 관계다. 내가 복식사를 연구하면서, 다양한 방법론을 통해 패션의 의미를 확장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패션에 대한 의미를 깊게 하고, 패션이 우리의 일상을 미학적 실천으로 만드는 장으로 변모시키는 과정에서, 난 수많은 대중들을 상대로 언어와 패션, 나 자신의 감각을 토대로 생각을 재배치하며 지금까지 왔다. 패션이 한 인간의 옷장을 설계하는 일과, 일상이란 무대를 위해 옷을 입는 스타일링의 문제와 떨어져서 존재할 수는 없다. 패션을 포함하여 모드와 같은 개념은 한 사회 내부의 정신성을 측정하는 문제까지 포괄하는, 깊은 범위의 작용을 한다. 그러나 개인을 주체로 세우는 패션 퍼포먼스를 '지금 이 순간'의 일상의 미학적 실천과 연결할 때 스타일링의 문제는 더욱 중요해진다. 


우리는 트렌드란 사회적 흐름에 무지해서도 안되며, 무지할 수도 없다. 유행현상이 가진 자기창조적 능력에 눈을 뜨고, 민감해져야 한다. 예민한 몸을 갖고 시대의 성감대를 옷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이 스스로 누적된 시간속에 만들어온 스타일은, 변화양상에 대한 개인적인 동의를 잘 조율할 수 있도록 해준다. 패션 스타일링에서 가장 절대적으로 필요한 믿음이다. 강의 후, 내년에도 또 오라고 하신다. 창원으로 가는 길, 새벽기차를 타고 가는 길은 멀었지만 보람있는 시간이다. 좋은 분들과 함께 나누어서 행복했다.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