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나의 행복한 레쥬메

창비학당-패션의 인문학 첫 강의를 마치고

패션 큐레이터 2017. 2. 17. 02:05



매년 기업강의도 많지만, 창비학당과 같은 인문학 연구센터와 강의를 동시에 지향하는 곳에서 강의 요구가 꽤 많다. 물론 갤러리를 포함한 많은 미술관들도 관련 강좌들을 연다. 창비학당에서 열리는 이번 시즌 <우아하게 살아님기> 과정 중 하나로 패션사를 가르친다. 복식사를 둘러싼 내 강의내용들은 인터넷에 많이 올라있다. 문제는 기업강의를 할 때, 매번 비슷한 내용의 것들을 손쉽게 전달하는 것을 요구하는 일이 많다보니, 나로서는 아쉬운 것이 하나 있었다. 


지금껏 공부해온 중세 및 르네상스 복식사, 각 시대별로 변화하는 쇼핑과 소비자 행동의 문화와 패턴같은 심도깊은 내용들을 복식사를 통해, 통합적으로 풀어보는 일을 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패션은 진화와 변화를 거듭하는 세계다. 그것을 전달하는 강의도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여전히 이땅에서 복식사란 것이 시대별 옷 스타일의 분류와 변화를 설명하는 정도로 이해하는 이들이 많다. 패션은 그것을 생산하는 자와, 소비하는 집단, 이들 위에서 거시적인 삶의 조건을 만들어온 다양한 요소가 어우러져서 짜낸 고운 직물같은 세계다.


한 벌의 옷에 한 국가의 정체성을 담보할 이야기를 담아내기도 하고, 사랑과 로망스의 사연이 담기고, 여성과 남성의 차별화된 분화의 역사가 담기고, 시대별로 사람들이 무엇에 쏠리고 끌리고, 속된 말로 도대체 어떤 체험에 환장해왔는지 뭐 이런 것들을 참 재미있게 풀어낸다. 어디 이뿐인가? 르네상스 복식사를 공부하다보면, 현대의 모든 패션 체계와 산업의 원형을 발견하게 되며, 직물개발과 같은 혁신의 불꽃들이 어떻게 각 나라별로 수용되며 또 그곳의 소비자들을 변화시켰는지, 실타래 풀듯 하나씩 공부해야 한다. 이번 창비에서 8회에 걸쳐 강의를 하겠다고 힘든 자청을 나선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많은 것을 전하고 싶다. 그저 복식의 역사를 넘어, 패셔너블과 스타일링의 철학과 일상의 실천에 이르는 그 행복한 세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