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해를 등지고 놀다

어느 겨울날의 동화-너의 바다는 어디에 있니?

패션 큐레이터 2017. 2. 13. 16:37



대관령의 삼양목장에 다녀왔다. 여름에 가서 계곡에 발도 담그고, 전망대 쪽 풍차들(풍력발전기)을 배경삼아 사진을 찍었던게 언제인가 싶다. 겨울목장은 정월대보름을 맞아 가장 추운 날씨, 칼바람이 몰아쳤다. 설국의 세계를 기대했지만, 실제는 그렇지는 않았다. 드문드문 황토빛과 백색, 초록이 뒤섞인 풍광 아래, 뺨을 얼얼하게 만드는 겨울의 발악하는 바람만 잔뜩 맞았다. 게다가 구제역 주의보가 내린 탓에, 기대했던 방목한 소들을 보는 것도 이루질 못했다. 



최근들어 매일 책상머리에 앉아, 성글어가는 관절염과 편두통의 아픔을 견디며, 한 글자 한 글자를 채집하는 굶주린 동물처럼 살았다. 새벽 두 시면 습관처럼 지끈거리는 머리를 위해 약봉지를 털어넣었다. 끙끙거리는 것 이외에는 별 수 없었다. 흰 것들의 세계가 눈에 펼쳐질 때마다 몸서리 쳤다. 흰 눈의 세계는, 그것을 보는 내 눈과 함께 섞여서 '눈'이 장음인지, 그것을 보는 내 눈이 단음인지 혼동될 정도로 내 눈은 시렸다. 



흰색의 세계를 소화해야할 내 눈이 견디지를 못하는 것일까? 흰색을 보고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면도날을 뭉쳐 만든 흰색공처럼, 그것을 쥐고 가슴에 문지드면 멍울진 푸른 피가 나올 것 같았다. 그래도 아이와 아내가 함께 있는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으니, 마음 한켠 내겐 강력한 보험같은 존재들이란 생각이 든다. 



눈의 감각은 날카롭게 뼛 속 깊숙히 어느 한 지점을 저격한다. 눈이 내린 흙을 밟을 때, 반쯤 얼어붙었다 용해되는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질퍽과 또 어떤 부위는 여전히 또 흰눈이 덮어서 푸근한, 양면거울의 세계 속으로 걸어가는 것 같다. 흰색이 강하게 투영되는 땅에선 태양빛도 채도를 잃는 탓에, 창백해진다. 


윈슬로 호머 <여름 밤> 1890년, 캔버스에 유채, 뮤제 오르세 소장 


생의 춤을 추는 시간, 겨울 바다에서 아내의 손을 잡고 싶었다. 언젠가 여름이 되어 이 바다를 온게 된다면 꼭 그림의 한 장면처럼 춤을 추고 싶다. 



매섭고 투명한 칼바람에 흰 입김이 흰 눈 위로 연신 쏟아질 때면, 밖의 한기와 내 안의 온기가 만들어낸 차이의 경계선이 이 미록한 생을 이끄는 힘이구나 하는 생각에 빠진다. 아내와 아이를 볼 때마다, 내 안에서 차오르는 짙은 우울증을 견뎌내야지 하면서도, 말처럼 쉽진 않다. 대보름날 밤, 겨울바다에 나가 불을 붙였다. 쥐불놀이를 했다. 뭐 별건 없다. 



툭하면 아이들에게 보여준답시고 뭔가를 지속적으로 해보이고 싶은 아빠의 하찮은 욕망일 뿐. 이런 마음을 좀 버려야 할텐데. 부모가 아이를 망치는 방법이 뭘까 하고 물끄러미 생각해본 적이 있다. 아이의 성장과정과 속도를, 자신의 삶으로 치환하는 것이다. 현재의 나를 볼 때, 과거에 '내가 이랬다면' 이라는 이 몹쓸 전제들이 아이를 바라보고, 미래를 투영하는 나침반이 될 때, 아이들은 그 자신의 속도를 잃는다. 



한 세계의 감각을 칼로 잘라낸, 하늘의 틈 속으로 밝게 붉힌 등 하나 띠워보낸다.



아빠는 몇 살에 바다를 발견했을까? 바다 위를 떠도는 고래의 토사물이 바닷바람과 염분이 그 수분을 없애고, 해풍의 칼날에 잘개 저미어져서 바다의 기운을 흡수할 때, 용연향이 만들어진다. 나는 아빠가 되기엔 여전히 내 안에 남우새스런 상처들이 많다. 난 항상 그걸 인정하려고 노력한다.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를 사랑했고, 바다와 함께 일할 수 있는 기술을 배웠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바다에서 잃었고, 다시는 바다를 환멸하며 그 심연을 보지 않기로 했던 내가, 아이와 함께 바다 앞에 서 있다. 난 이렇게 느린 호흡으로, 앞으로 한 발자욱씩 걸어나가고 있나보다. 



아이야......넌 어디를 보고 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