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해를 등지고 놀다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하다-쾰른에서

패션 큐레이터 2016. 3. 9. 06:54



이번 여행에서 참 인상깊었던 몇 가지를 떠올리라고 한다면 가장 첫번째로 쾰른이란 도시를 들 것 같다. 루드비히 현대미술관에 가서 서양현대미술사에 나오는 굵직한 작품들을 설명했다. 내 도슨트 여정의 첫 여정이었다. 물의 도시 쾰른은 갈 때마다 놀라왔다. 이날 따라 왜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던지, 물빛을 머금은 쟃빛의 쾰른 대성당도 위용과 함께 우리를 안아주었다. 



쾰른 음대를 들렀다가 이곳의 성 피터 성당에 들렀다. 이곳에서 뒤셀도르프 음대의 교회음악 교수님으로 계신 위르겐 쿠르사바 Jürgen Kursawa 교수님께서 직접 오르간을 연주해주시기로 한 것이다. 성당건축을 보면, 교차궁륭이나 부연외벽과 스테인드 글라스외에도, 항상 성당 뒤편으로 거대하게 소리를 만들어내는 오르간의 위용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믿음이 들음에서 나오듯, 소리를 통해 인간을 신 앞에서 대오정렬하는 그 모습이 얼마나 장엄한 것인가. 파이프오르간은 성당의 벽면에 위치한다. 악기 그자체가 건물이며, 건축과 함께 완성된다. 



교수님은 오르간으로 오르셔서 우리를 위한 연주를 준비 중이다. 교수님은 쾰른과 에센에서 종교음악, 피아노 연주학, 수학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하셨다. 학생들을 어찌나 편안하게 맞아주시던지, 초면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성당 건축에서 음향이란 요소를 어떻게 재현할지, 공명을 통해 사람들의 내면에 울림을 만들어내는 가는 중요한 문제다. 파이프 오르간은 악기 자체의 크기에서 다른 모든 악기와 비교가 불가하다. 성당 내 파이프오르간은 결코 독립적인 악기가 아니다. 그 자체가 홀이고 음향의 물꼬를 트고 담는 거대한 그릇인 것이다. 청중은 오르간의 내부에 위치하여 음악을 듣는다. 천상을 건축하는 소리, 그 현장의 임재감 속에 우리 모두가 앉아있는 것이다. 성당 내부에서 오르간 이외의 악기는 연주되지 않으며, 인간의 목소리로 하는 아카펠라와 오르간의 교창이 전부였다. 그만큼 오르간은 교회음악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갖는다. 오르간 연주를 통해, 오로지 작곡가들은 기독교적 관점과 목소리를 담아내야 했다. 바하와 더불어 많은 작곡가들이 오르간 연주곡을 다양한 방법으로 작곡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다. 



밑에서 기다리고 있는 우리 청년들의 모습을 교수님께서 찍어주셨다.



오르간 연주가 시작되고, 바흐의 곡을 비롯해 성가들을 연주해주셨다. 성당이란 일종의 장소특유의 임재감 때문인지, 유독 오르간으로 들려오는 선율의 장엄함이 우리를 눌렀다. 인간의 목소리를 통해 천상의 영광을 노래하던, 성악을 중심으로 발전했던 서양음악의 흐름이, 바로크 시대에 접어들면서 기악을 중심으로 전환된다. 바로크 음악을 집대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요한 세바스천 바흐는, 그 자신이 뛰어난 오르가니스트였다. 그 연주방법과 파이프오르간을 그대로 이용해 들려주시는 바흐의 곡들은 잦은 여우비와 차가운 날씨에 지친 여행자들의 마음을 적셨다. 



그 귀한 오르간도 청년들이 한명씩 연주해보라고 독려해주시고, 거의 다 돌아가면서 오르간을 쳐보았다. 



아이들이 음악과 악기에 노출되는 것, 무엇보다 신세계를 조우하게 만드는 일은 중요하다. 악기와 인간의 만남은 그저 인간과 사물의 교류가 아니다. 내 안의 있는 음을 연주해줄 매체를 찾는 일이고, 그래서 음악과 연주는 그저 음악인들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음을 또록또록 눌어보면서 놀라와했다. 자신이 누른 음이 저 거대한 공간 속에서 울림을 만들어낸다는 것, 그 자체에 놀라와하는 것이다. 



이번 여행에 함께 했던 이들과 함께. 인간은 각각 자신의 소리를 갖는다. 침묵의 상태 또한 일종의 소리다. 인간은 인간의 소리에 반응하기에, 타자의 목소리와 상처, 그들의 비전과 열망에 동조하거나, 돕는다. 세상의 모든 소통이 떨림의 과정을 통해 생산되는 소리에 근거하기에, 결국 인간의 모든 만남은 음과 음의 만남인 것이다. 작곡을 의미하는 컴포지션이 별것인가? 결국 다섯 줄의 소우주 위에 인간과 인간을 재배열한 세계다. 


그 세계의 표면과 심연 아래서, 인간은 서로의 몸을 더듬고 애무하며 때로는 밀치고, 배척한다. 이 모든 인간의 경험들이 용해되면 하나의 음악으로 남는다. 음악은 다양한 인간의 표정과 감정을 담아내기에, 오르간이란 매체를 통해 연주될 때 우리 안에 있는 '영혼의 한 지점'을 건들게 된다. 작곡가를 몰라도, 혹은 음악사에 대한 이해가 없어도, 혹은 세상의 음악 권위자의 칭찬과 추천이 없이도, 어떤 날, 어떤 공간에서 우연히 맞닥뜨리는 음악의 선율 앞에 소롯함을 느끼게 되는 이유다. 



교수님과 한 컷. 너무나 멋진 경험이었다. 물의 도시 쾰른에서, 연주를 듣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상하게 울고 있었다. 여행하다보면 그저 감성에 젖는 것이라고 '퉁'쳐버리기엔 이번 여행은 참 남는게 많다. 영혼의 귀를 열어주기 위해, 직접 열쇠를 들고 성당의 문을 열어 아이들을 맞이하고, 오랜 시간 편안하게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연주해주신 쿠르사바 교수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파이프 오르간 속에 '머물던' 그 짧고도 영원한 시간의 행복 하나로, 큰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