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해를 등지고 놀다

물의 도시 쾰른에서-루드비히 현대미술관에서

패션 큐레이터 2016. 3. 16. 15:34



오랜만에 쾰른에 가본다. 예전 전자업에 몸담고 있을 때, 이쪽에 파트너 사무실이 있어 자주 들렀었다. 쾰른 대성당은 볼 때마다 보수공사 중. 이번 여행은 가톨릭과 개신교가 어떻게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문화적 편제들을 이용해왔는지를 살펴보는 시간이었다. 영성의 방향과 빛깔, 17세기 바로크 미술의 재발견이라는 내 자신만의 화두는 여전히 유효했고, 여행을 하는 동안, 항상 두꺼운 텍스트를 차 안에서 읽어내며, 현장에 다시 들러 확인하는 것들의 반복이었다. 



물론 함께 간 이들에게 각 도시별 주요 미술관에 들러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미술사의 주요 작품들과 그 의미들을 풀어내고 이해시키는 일도 이번 여행의 업무 중 하나였으리라. 쾰른에 가면 항상 빌라프 리하르츠 미술관과 이 루드비히 미술관을 들른다. 빌라프 리하르츠에 가면 인상주의 컬렉션이 아주 좋은데다, 시대별로 주요 독일미술들의 정수들을 살펴볼 수 있어서 좋다. 한편 루드비히는 현대미술관으로 1900년 이후의 현대미술에 대해 '독일'이라는 유럽의 한 나라가 미친 영향에 대해 잘 정리해놓았다. 게다가 세계에서 3번째로 큰 피카소 컬렉션이 있는 곳이지 않은가. 게다가 도착한 날은 미국 추상주의 미술의 거장 조앤 미첼의 회고전 마지막 날이었다. 



예전에는 추상미술이 참 어려웠다. 도대체가 의도가 무엇이고 뭘 의미하는지에 대해 지나치게 천착하다보니, 그림을 보고 즐기기 보다는 지적으로 혹은 사유하기 바빴던거 같다. 이번 여행에선 그런 무거움들을 덜어내봤다. 그림의 본질, 그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곰삭이는 시간이었기에 그랬다. 조앤 미첼의 그림이 그리웠고, 이번 여행에서 대형 회고전을 볼 수 있어서 기뻤던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사실 한국에서도 예전 그녀의 회고전이 열렸었다. 물론 소장품들 일부가 와서 섭섭했지만, 그녀의 붓질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호흡을 느낄 수 있어서였다. 



현대미술관은 루브르나 기타 근대미술을 다루는 미술관과 달리, 사람들이 많이 붐비지 않는다. 천천히 걸어가며 작품 앞에서 온 힘을 다해 살펴볼 수 있고, 마치 산책하듯 그림의 숲 사이를 걷게 된다. 



언제봐도 항상 마음 한 켠을 식혀준달까? 이브 클라인의 청색은 잦은 여우비로 성당의 진회색 세월의 누더기를 더욱 드러내는 쾰른의 거리를 걸어야 했던 여행객의 마음을 누그러뜨린다. 짧은 생애와 찬란한 경력은 이제 미술계의 신화가 되어 사람들은 그를, 그가 창조한 색과 더불어 기억한다. 평생을 통해 완성한 그의 모노크롬 블루는 예술에서 신성함을 또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킨다. 인간은 여전히 색스러운 존재라는 것. 색 앞에서, 색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존재론적 운명임을 깨닫게 해준 것이다. 



이번 도슨트는 추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들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이곳의 팝아트 컬렉션도 그 규모가 굉장하다. 앤디워홀부터 로이 리히텐슈타인에 이르기까지 



누군가를 알아가는 것만큼, 지금껏 배워온 것들에 대해서도 반추하며 새로운 측면을 배워가는 것 만큼 흥이나는 일이 있을까 싶다. 이번 도슨트가 참 행복했던 것은 이런 이유다. 그저 미술책과 뮤지엄 가이드의 설명에서 벗어나, 화가들의 붓터치에, 힘의 약동에, 그들의 작은 사연에서 내 생각의 표피를 자극하는 동기를 얻었던 것이다. 이번 여행이 아니었다면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여행은 역시 생각의 산파술이다. 익숙해진 내 자신의 심부로 더 깊이 들어가는 일. 익숙하다고 믿었던 표피 내부의 지도 속으로, 내 영혼의 심층을 찾으러 가는 일. 미술은 항상 이 과정의 좋은 통로였다. Thank you for the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