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정치학, 질문을 던지다
데이비드 라샤펠의 전시 오프닝 파티에 다녀왔다. 데이비드 라샤펠의 사진을 처음 본게 2006년이었나 싶다. 당시로선 당혹스런 이미지들이 눈앞에 펼쳐질 때마다, 이 사람의 상상력과 도발의 수준이 두렵다는 생각마저 들 때였다. 1984년 초창기의 사진작가로서의 예술작품과 함께 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이 만든 Interview 매거진의 포토그래퍼로 근무하면서 만들어낸 작품들, 이외에도 수많은 정상급 패션 매거진 VOGUE, interview, i-D 등의 커버와 내지를 장식했던 영화배우, 뮤지션, 모델 등과 작업한 작품들로 구성된 공간을 걸어야 했다.
지하 4층까지 이어지는 전시는, 끝내 셔터를 누를 수 없는 내밀한 이미지와 섹슈얼리티의 환영이 가득한 방도 있었다. 2011년, 서울에서 열린 첫 전시에서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마이클 잭슨 작품을 포함해 새로 선보이는 에미넴, 엘튼 존, 안젤리나 졸리, 마돈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등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은, 항상 어떤 전시가 이미 선보이고, 인기를 끈 후, 작품들을 보강해 자칭 '후속 전시'란 이름으로 큐레이팅된 전시들엔 작품을 처음 만날 때의 '흔적과 기쁨'은 사라진다는 것일 거다.
한 작가의 궤적으로 보여준다손, 첫 마음으로 만났던 사진 작품들이 정교하게 큐레이팅 된다손, 이미 성공한 코드에 덧입어 전시기획을 하는 이 '편안한 태도'가 나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섹슈얼리티에 대한 밀도높은 사진작업도, 그것이 왜 정치성과 연결되는지, 뭐 이런 부분에 대한 소통이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패션사진 작업이 많다보니, 패션계의 블로거나 많은 이들이 전시회에 온 것은 좋다. 핑거 푸드 사진이나 찍어대며 연신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있는, 한껏 차려입는 패션 블로거들의 모습을 눈에 담다 왔을 뿐이다.
이땅의 패션 사진이란 개념도 이제는 다소 확장된 개념미술의 영역에서 토론할 때가 되었다. 패션과 사회적 맥락을 깊이있게 다루는 데이비드 라샤펠의 작품은 '몽환과 초현실'이란 두 개의 렌즈로 바라보는 이중적 세계다. 우리의 치부를 드러내고, 그 속에서 우리는 평균화된다. 사실 이 전시에서 나를 사로잡은 건, 라샤펠이 모델과 마네킹을 함께 병치시켜 찍은 작품들이다.
이 작품 속에서 나는 인간의 형상을 본따 만든 마네킹을 역으로 인간을 성찰하고 바라보는 오브제로 사용했던 1920년대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작품들을 떠올렸다. 라샤펠의 사진은 패션이란 최고의 상업의 궁전을 역으로 깨는 즐거움이 있다. 그 이미지의 전복성, 그 힘이 아마도 그의 사진에 빠지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포화도와 강력한 색상으로 범벅이 된 '글로시Glossy'의 세계는 위험하다.
그 세계는 언제든 프레임을 자유자재로 바꾸며, 그 세계가 지금 얼마나 위험하고, 자의적이며, 제도화의 우상이 만들어낸 취약한 세계인지를 반영한다. 그 속에서 언제나 인간은 내면의 위선과 위악과 마주하게 된다. 이번 전시 포스터로 사용된 라샤펠의 작품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거장인 보티첼리의 작품을 패러디한 것이다. 르네상스때도 사실 보티첼리의 그림 속 비너스는 당시 피렌체의 최고의 미녀라 불리던 이였다. 항상 미의 조건을 만들고 유포해온 집단들이 있고, 그 하위층들은 그 믿음을 자신에게 내재화하기 위해 애쓰며 살았던 것이다.
라샤펠의 사진에는 이런 애쓰는 형상으로서의 인간에 대한 조롱이 담겨있다. 허위의식으로 가득한 세계, 세상이 반드시 따라가야 하는 세계라 믿는 자칭 '트렌드'로 무장한 세계, 작은 디테일을 애써 자랑하며 이번 계절에는 이런 변화들을 즐길 수 있다고 자랑하는 저 패션의 세계가, 얼마나 위험한지, 다 허물어져가는 세계의 끝에서 패션은 사진을 통해 우리에게 다시 말을 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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