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의 '성장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서점에 가면 다양한 문예지들이 화려한 판본을 입고 고객을 기다립니다. 패션잡지를 보는 것처럼 레이아웃과 흥미진진한 인터뷰도 많이 담겨 있더군요. 저 또한 대학시절부터 문학과 지성, 혹은 창작과 비평과 같은 문예지를 읽은 세대지만, 솔직히 이 책들은 무겁고 비평적 수사로 점철된 것들이 많은 것이었다는 생각을 해요. 물론 배우는 건 많지만, 소설이나 시를 넘어, 다양한 장르문학을 껴안기엔 무리가 많았지요. 최근 은행나무에서 시작한 Axt 를 비롯하여 주요 출판사들이 문예지 창간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중쇄는 기본이요, 소장을 위해 구매를 하는 층들이 생겨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참 부럽습니다. 패션 저널리즘도 다양한 문화적인 시선들과 함께 새로운 패션저널 하나쯤은 만들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더라구요. 물론 해외에서 나오는 소장용층이 생긴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은 많지요. 그런데 이것도 비슷한 내용을 담아내는 엇비슷한 것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문학이 정신적 권위를 상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자신의 욕구충족을 위한 자기 계발이나 멋진 라이프스타일 같은 구호 아래 감성적 경험에 내재된 인류의 공통된 잠재성을 담아낼 통체적인 그릇을 잃어버렸다고 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저는 이런 총체성에 대한 욕망이 항상 우리의 삶에서 세분화된 감성과 그것을 받쳐낼 사람들을 배제해왔다고 생각합니다. 패션이나 문학이나 킨포크류의 잡지들이 인기를 끈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패션담론을 다루는 전문지를 발행해 보고 싶은 꿈을 꾸었는데요, 이번의 문예지들을 보면서 많은 방향성을 얻어갑니다. 문예지 고객군의 이탈도 눈에 띠지만, 자신의 특화된 장르에 대해 깊이있게 다루는 매체를 바라보는 고객들이 애정 또한 눈에 띱니다. 패션시장은 대기업군이 중심이 되어 인위적인 트렌드를 끌고 가는 것이 한계에 부딛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취향은 더욱 세분화될 것이고, 패션 또한 복합적인 힘의 흐름이 시장을 흔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수의 목소리일수록 더욱 순수(Purity)지향적인 것으로 인식되며 사람들은 그 소수의 취향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더욱 세질 것이란 것이죠.
사람들은 각자의 취향 속에서 스스로를 '진정성 있는' 소수, 비 순응자로 만들어주는 공동체에 소속되기 위해 노력을 할 겁니다. 문예지의 발흥은 시장 내부의 균열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평론가 중심에서, 문학 생산자와, 에디터들이 발빠르게 소속집단의 가려움을 긁어줄 수 있는 인터뷰와 테마관련 내용들을 텍스트화 될 것이고, 이것을 지속적으로 사모으며 떠받쳐주는 구조가 공고해질 것 같습니다. 우리 패션계도 그저 산업지, 패션과 유행을 다루는 라이센스 매거진을 넘어, 담론을 다루되, 하위집단의 목소리를 충분히 채워넣으며 그들의 존재론을 옷을 통해 설명하려는 시도를 할 때, 한층 더욱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텐데요. 우리도 작은 시도나마 해봤으면 하는 마음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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