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이탈리아 하이패션의 역사-글래머의 본질을 찾아서

패션 큐레이터 2016. 5. 3. 12:57


이탈리아 패션의 향기-하이패션의 역사


올 2016년에도 세계적으로 많은 지역에서 패션전시가 열립니다. 패션을 소재로 한 전시가 비단 박물관의 컬렉션에 머물지 않고, 상업과 예술의 중간지역을 잘 포착하기 위해 노력하는 큐레이터들 덕분에 많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마이애미와 팜 비치 사이에 있는 NSU 아트 뮤지엄 포트 로더데일에서 열리고 있는 패션 전시가 궁금했습니다. 제목도 근사합니다. 『Bellisima Italian High Fashion 1945-1968』 이탈리아 하이패션의 전성기였던 45-68년 사이의 다양한 작품들, 디자이너들의 옷과 주얼리를 함께 보이고 있군요. 



올 6월 19일까지 열리는 본 전시는 이탈리아의 하이패션, 즉 알타모다의 정체성과 그 역사의 발흥을 가능케 한 창의성의 면모들을 탐색하는 전시입니다. 미술과 건축, 영화, 연극과 사진 등 예술 각 분야에 대한 탁월한 공헌물과 함께 패션의 상호작용을 풀어가는 전시입니다. 특히 주얼리 브랜드인 불가리가 예술 및 패션계와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성장했는지 살펴보는 내용도 있습니다. 원래 이 전시는 로마에 위치한 21세기 예술 국립 박묾관인 MAXXI 에서 기획한 전시였습니다. 패션 평론가이자 큐레이터인 마리아 루이자 프리사가 큐레이션한 전시입니다. 



45-68년, 참 이상하게도 하이패션은 젊은이들의 분노가 사회를 침입하기 시작한 68혁명과 맞물려 그 영고성락을 함께 했습니다. 이탈리아의 하이패션도 그 여파가 컸겠지요. 에밀리오 슈베르트, 소롤레 폰타나, 제르마나 마루첼리, 밀라 숀, 발렌티노, 로베르토 카푸치, 페르난다 가티오니, 펜디, 레나토 발레스트라, 비키, 에밀리오 푸치, 파우스토 살리, 이외에도 많은 디자이너들이 이탈리아의 국가적 이미지를 만들고 형성하는데 패션으로 공헌을 했습니다. 



당시 2차 세계 대전 이후 이탈리아는 전후 회복과정에서 패션과 영화, 연극을 통해 로마와 피렌체, 밀라노와 베니스와 같은 도시들을 다시 '띠우기' 위한 국가적 프로젝트에 돌입합니다. 오늘날 이탈리안 글래머가 태어나게 된 배후에는 이런 노력이 숨어있지요. 이 도시들은 전쟁 전, 최고의 수공예 기술로 제품을 만들던 곳이었기에, 특히 패션관련 산업을 부흥시키기 위한 투자, 국가간 교역의 손길을 끌어내는데 급선무었습니다. 



전후 이탈리아의 럭셔리 제품은 화려하되 정교하고 실용적인 속성을 많이 띠었습니다. 전후의 경험 때문이었지요. 그만큼 실용성과 창의력에 근거한 화려함을 결합하는 노력 없이는 살아남기 힘들었으니 말입니다. 이외에도 짧은 칵테일 드레스와 풍성한 코트, 큼지막한 핸드백에 이르기까지, 패션도 이런 시대적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90벌 이상의 디자이너 의상은 이탈리아 패션의 정체성과 테마를 잘 보여줍니다. 그랜드 볼룸에서의 파티복, 우아한 칵테일 드레스, 칼로 캔버스 천을 찟은 전후 이탈리아의 예술가 루치아노 폰타나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화려하면서도 간결한 검정과 백색의 밀라숀의 작품도 보입니다. 



당시 미국 헐리우드의 배우도 이탈리아 패션의 매력에 빠져 많은 배우들이 즐겨입은 통에, 오늘날 이탈리아의 패션의 힘이 더욱 부각된 측면도 있지요. 특히 에바 가드너와 잉그리드 버그만 같은 배우들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부터, 마이너 아트로 알려진 수공예기술은 현대로 장인을 통해 연결되며 이탈리아 패션산업의 한 측면을 구성합니다. 


이번 전시에도 바로 이탈리아 전통 수공예 기술을 접목한 불가리 보석 브랜드의 혁신적 디자인들을 살펴볼 수 있는데요. 옷과 액세서리, 보석등이 예술의 다양한 장르들과 함께 선보이는 매력으로 가득한 이 전시는 특히 1950년대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 영화장르나 그 이후의 예술영화의 거장들의 작품을 사랑한 분들이라면 궁금해할 만 합니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페데리코 펠리니의 <달콤한 인생> 등의 영화의상들, 의상을 위해 사용된 직물 스와치며 텍스타일 작품들이 그대로 선보입니다. 


이런 전시들은 언제나 볼 때마다 가슴이 뜁니다. 패션을 통해 한 국가의 정체성과 그것을 주조한 과정을 역으로 추적해보는 즐거움과 도전. 만만치 않은 작업입니다. 회고전을 열어드리고 싶은 디자이너가 계세요. 일반 갤러리가 아닌 뮤지엄에서 해야 하는 것이라서 공간 사용료며 지금까지 제작한 옷들을 사진으로 찍고 카탈로그화 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게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박물관에서 채가거든요. 처음에는 게스트 큐레이터로 하라고 했다가, 좀 될만하면 '국공립기관이라서 외부 큐레이터 활동은 감사를 받는다'는 말도 안되는 핑계로 빼앗긴 전시 아이디어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독립 큐레이터로 작가로 살아가면서 흘려야 했던 눈물이었지요.  좋은 스폰서도 나오실거 같고, 공간 문제만 잘 해결하면 꿈꾸는 전시들을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뭐하나 잘 해보자고 시작한 일들을 마무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하다보면 꼭 좋은 길, 선택의 기로 앞에서 결단해야 하는 길을 만나게 됩니다. 힘을 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