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식사가로 살아가면서 가장 힘들때가 자료들을 소장하는 문제다. 이번에 버지니아 울프를 패션의 관점에서 연구하면서 자료들을 찾기가 힘들었다. 서구의 자료들도 사실 가려운 곳만 딱 긁어주는 것은 없다. 누군가를 어떤 관점에서 공부하려면 많은 텍스트들을 종횡무진 걸어가니면서 스스로 답을 찾는 수 밖에 없다. 특히 20세기 모더니스트 작가로서, 버지니아 울프의 문학이 가진 혁신성을 이해하고 이것을 패션과 연결하는 일은 그녀의 세부적인 일기장을 '철저하게' 탐사하는 일이었고, 이 과정에서 그녀에게 영향을 주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았던 블룸즈베리 그룹을 만나는 것은 당연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언니인 버넷사 벨은 화가였다. 런던 초상화 박물관에서 본 그녀의 화려하고 강렬한 색채와 무늬 프린트가 녹아있는 옷들은 한 눈에도 현대적인 히피의 감성과 맞물려 있었다. 아니 역사 속 첫 히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버넷사 벨 이외에도 버지니아 울프가 속했던 블룸즈베리 그룹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지식인 사회에 큰 파장을 남겼던 집단이다.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고, 미와 사회적 체계의 혁신을 꿈꾸는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었다. 특히 버지니아 울프의 언니였던 버넷사 벨과 미술평론가인 클라이브 벨을 중심으로, 모더니즘 회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려고 했다.
이외에도 영국에 후기 인상주의 미술을 처음으로 소개하며 전시를 열었던 예술 평론가 로저 프라이, 위인전을 쓰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버린 역사학자 리튼 스트래치, 새로운 사회의 경제적 비전을 꿈꾼 경제학자 케인즈, <전망좋은 방> <하워즈 엔드>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사회개혁적 글쓰기를 추구했던 소설가 E.M 포스터등이 있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아버지의 죽음 후 그 그늘을 벗어나기 위해 고든 스퀘어로 이사를 하는데 이곳이 곧 오늘날의 문화사에서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블룸즈베리 모임의 본격적인 무대가 된다. 블룸즈베리 모임을 이끄는 이들은 젊고 유망한 캠브리지 출신의 지식인이었다. 이들은 냉철한 상식을 지향하며 시대의 미적 조건에 대해 토론하고 사유했다. 이들은 빅토리아 시대의 현존하는 관행과 가치관을 신뢰하기 보다,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시도를 감행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남편이 된 레너드 울프에게 문명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은 채 가끔 가능성으로만 존재해왔던 것"이라며 기존의 질서에 동의하지 않고, 혁신의 방식들을 천척한다. 그들은 반전주의자였다.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버지니아 울프는 가정 내에 묶인 당대의 여성의 이미지를 넘어, 글을 써서 먹고 살 수 있는 전업작가로서, 그 세계를 본격적으로 탐색하게 된다. 이들의 생각이 새로운만큼, 그들이 입었던 패션 스타일도 새로웠다. 최근 영국의 국영방송국인 BBC에서는 이들 블룸즈베리 그룹과 일원인 버넷사 벨을 중심으로 한 드라마를 만들어 선보였다. 드라마 속에서 보인 그들의 패션은 정말, 색의 배합에서 대담한 액세서리의 조합까지 놀랍기만 했다. 2014년 버버리 프로섬에서 이들의 옷차림에서 영감을 얻은 컬렉션을 준비한 것은 무리가 아닌 것 같다.
2014년 가을/겨울, 패션 브랜드 버버리 프로섬의 패션쇼 주제가 바로 블룸즈베리 걸이었다. 이 집단의 패션 스타일링을 역사적으로 풀어내면서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것이다. 이번에 힘들게 절판되었던 블룸즈베리 그룹의 예술세계와 버지니아 울프와 버넷사 벨의 예술을 다룬 책을 구했다. 어떤 테마에 대해 공부한다는 것은 배경사를 두껍게 공부하는 것과 더불어 현대적으로 어떻게 다시 해석하고 풀어내는 가의 문제도 고민해야 하기에. 시대를 바꾼 사람들을 공부하는 문제는, 이 과정에서 그들이 뭘 했다를 공부하는게 아닌것 같다. 어떤 태도로,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볼 각오를 하는가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요즘은 공부를 하면서 누군가와 그룹을 만들어서 함께 나누며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독학을 하면서, 어떤 집단에 영향을 받지 않으며 혼자만의 언어를 채집하고 어휘를 축적하는 것도 좋지만, 나와 빛깔이 다르지만 같은 곳을 보는 이들과 생각을 나누며 배우게 되는 것도 많은 것 같다. 패션고전읽기 모임이라도 가져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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