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플리츠의 미학-생의 주름을 접는 시간

패션 큐레이터 2016. 6. 15. 17:45



이세이 미야케의 플리츠

이세이 미야케의 옷들은 항상 섬세한 주름들이 가득합니다. 그의 옷은 마치 바람의 결을 몸위에 새기듯, 주름은 촘촘하게 접힌 세계 속에서 언제든 펼침을 통해 세상을 안을 준비를 하지요. 한때 패션의 장식 디테일인 주름을 공부하기 위해 질 들뢰즈 같은 철학자들이 쓴 <주름론>을 탐독하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쉽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주름이란 것도 결국 인간의 산물이기에, 그의 사유는 항상 주름에 대한 존재론을 밝혀내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그의 글에서 발견한 것은 주름은 결국 다양하고 이질적인 힘들과 제도, 생각의 체계들이 촘촘하게 맞물려 있는 '이 세계'에 대한 은유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든 삶의 언저리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은 주름을 갖습니다. 결국 나무의 나이테도 세월의 풍상과 그 안에서 나무의 목질이 어떤 삶의 흔적을 남겼는지를 말해주는 지표입니다. 자신의 몸을 접어 한웅큼씩 접어 앞으로 나가는 배추벌레는 또 어떻고요. 조밀한 벌레의 마디마디는 스프링처럼, 미약한 생명을 앞으로 추진시키는 힘입니다. 바다의 잔물결들은 또 어떤가요? 그것은 마치 너무 밝은 햇살에, 눈부심을 피해 찡긋거리는 어머니 바다의 '표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여름 귓전을 울리는 매미소리는, 자신의 처소인 초록빛 숲을 주름잡아 그 속에서 섭생하며 살아가는 모든 것들을 위한 미풍의 담요를 만듭니다. 주름은 결국 살아있는 모든 것들과 호흡하며, 살아있음의 순간을 누리고 만끽하는 모든 생명체의 징후인 것입니다. 패션에서도 이 주름은 필수불가결한 장식 방법입니다. 주름은 옷의 폭을 줄여서 접은 금(fold)입니다. 그 금은 옷에 금(gold)보다 더한 환희와 매력, 슬픔을 극복하는 강력한 희망의 근거를 가져다주지요. 그 금은 하나의 선(line)의 형태로 인간의 삶을 반추하는 기준, 선과 미덕의 표현이 됩니다. 우리가 먹고 입고 자는 모든 것들, 그것을 만드는 자연의 재료들은 바람과 물과 햇살과, 지구라는 거대한 용기가 함께 빚어낸 거대한 주름의 세계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먹는 먹거리에는 다양한 힘들이 서로는 포용하며 키워낸 세계에 대한 믿음이 있지요. 

주름은 타력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주름과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주름이 있습니다. 자연의 모든 생명체가 갖는 주름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죠. 인간의 몸을 보세요. 옷과 인간의 몸이 만나는 자리, 그 중에서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관절부위에서의 주름은, 주름 자체가 생명의 은유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인위적인 주름은 기계를 통해 영구적으로 만드는 플리츠와 여성의 실루엣과 볼륨감을 유지하기 위해 남겨두는 개더(gather)로 나뉩니다. 주름은 이때부터 조형의 한 요소가 되지요. 점이 누적되어 선이 되고, 이 선이 한 공간을 점유하도록 그어질 때, 여기에서 면은 태어납니다. 

바로 주름은 이 선의 누적이지요. 누적되는 선은 하나의 리듬감을 우리의 정신과 몸에 각인시키며 생을 '율동미'의 세계로 환원합니다. 이세이 미야케의 플리츠는 살아있음에 대한 확증을 옷을 통해 하려는 걸까요? 섬세하게 접힌 주름들의 내면에는 생명의 물질이 고이고, 온축된 공기가 머금으며 인간을 껴안습니다. 그의 주름이 마치 바닷가의 잔물결처럼, 그 위로 튕겨나오는 푸른 달빛을 연상시키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닐 것입니다. 주름을 구성하는 선은 사물의 형상을, 전달하는 매개입니다. 


시인 도종환의 말처럼 자연이 만든 곡선과 인간이 만든 직선의 세계는 서로를 성찰합니다. 특정한 선의 방향만이 옳다는 생각은 틀린 것입니다. 우리에겐 바로 '지금 이 순간' 허락되는 선의 용도가 있을 뿐이지요. 선은 우리의 시선을 유도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바라보는 방향을 지배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선은 그것을 긋는 주체의 힘의 강약과 굵기, 반복되는 정도, 순간의 밀도에 따라 무궁무진한 감정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선이 반복되며 만들어내는 옷의 인위적 주름은 그 자체로 '살아있음'이란 동작을 가장 완벽하게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

본 글은 국방일보의 <김홍기의 문화산책>에 소개했습니다. 허락없이 글을 퍼가는 일은 하지 말아주세요. 최근 블로그에 제가 쓴 글을 함부로 가져다가 필요한 부분한 쏙 빼서 쓰는 편집글을 자주 발견합니다. 법적 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주의 기울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