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잔향으로 남는 인간이 되기

패션 큐레이터 2016. 10. 10. 03:26



인간은 향으로 기억된다

요 며칠 새누리당 이은재 의원이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 국감장에서 교육감을 향해 'MS 오피스를 왜 MS에서 샀냐고' 질타하며 툭하면 '사퇴하세요'란 말을 내뱉었다가, 갖은 조롱을 사고 있다. 그녀하면 '국가기관'인 한국행정연구원 원장시절, 법인카드(개인카드 아님)로 구매한 고가의 명품 에르메스와 아닉구딸 향수가 떠오른다. 아닉구딸은 뛰어난 패션 모델이자 피아니스트였다. 피아노 연주자로 명성을 쌓아가던 그녀가, 조향사가 된건 그녀의 표현대로 '소명'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내기까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한 남자와 사랑에 빠졌지만 헤어졌고, 카미유란 딸과 혼자 남았다. 사랑의 상처는 컸다. 그녀는 유방암 진단을 받고 재활을 시작한다. 사랑은 언제나 가장 절실하게 구하고 찾는 자에게 오는 법. 젊은 시절의 연인과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 유년시절 그녀는 과자가게를 운영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따스하고 달콤한 향을 자주 접했다. 다양한 쿠키와 초컬릿의 향기, 갓 구은 과자들이 토해내는 온축된 향은 그녀를 코를 행복하게 간질였을 것이다.


프랑스의 작가 마르셀 푸르스트는 어느 겨울날 홍차에 마들렌 과자를 적셔 한입 베어 문 순간, 어릴 적 고향에서 숙모가 내어주곤 했던 마들렌의 향기를 떠올린다. 향은 곧 고향의 기억이 되었고 그의 대표작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집필로 연결된다. 이후 많은 학자들은 향기가 기억을 이끌어내는 현상을 '프루스트 현상'이라고 불렀다. 그녀의 불행한 삶은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조금씩 펴기 시작한다. 어린시절 단련된 코는 조향사가 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게다가 어린시절 과자가게에서, 수많은 과자들을 진열하며 그 방식을 배웠던 그녀는 스킨케어 제품과 향수를 만들어 타인들에게 보여줄 때도 이 경험을 이용했다.


"내 손가락은 어린시절 아빠의 과자가게에서 경험했던 모든 것들을 소환해내요. 그곳에서 나는 초컬릿을 정리하면서 손으로 할 수 있는 감각들을 배웠어요. 달콤한 스위트들을 보여주듯, 크림을 선보여보자. 일일이 가방에 담고 손으로 일일이 그 내용물을 써보자고 생각했지요" 그녀는 일일이 수기로 자신이 개발한 향의 이름과 재료를 썼다. 그녀는 최상의 조향사가 되기 위해 7년의 시간을 훈련했다. 각 향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결합되면 또 다른 기억을 환기시킨다. "마치 결혼식의 부케처럼, 희귀한 자연의 에센스를 모아 심포니 오케스트라처럼 작곡하는 것'이라고 그녀의 철학을 말한다. 향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향의 변화인 노트를 섬세하게 개발하는 것이다. 


그녀의 성공스토리는 그 자체로 향은 '음악'과 같다는 자신의 철학을 보여준다. 향은 인간의 인상을 작곡한다. 작곡이란 행위를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사실 대기업에 속해있는 조향사가 독립적으로 자신의 향을 만든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인간의 손길이 베어나고, 마치 수제 수트같은 비스포크 향수를 만든다는 건 다양한 제약조건에 걸려있는 이들에겐 어려운 일이다. 독립 조향사들에게 향을 만드는 일은 그래서 인간을 '독립'시키는 일이며 실크처럼 부드러운 기억의 표면을 가진 향을 통해, 내 생에 힘을 북돋워내는 일인 것이다. 


향은 한 인간의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다. 나아가 향은 한 인간의 지상에서의 삶을 집약해준다. 향은 실처럼, 하늘로 피어올라, 천국에서 지상의 모습을 직조한다. 그런 생각을 해본다. 그저 자기 밖에 모르는 인간, 지상에서의 갖은 탐욕과 권력을 위해 막말을 내뱉는 자들은 우리가 별의 먼지였으며, 언젠가는 지상의 향이 직조한 옷을 입고 돌아갈 본향이 있는 존재임을 망각한 자들이라고. 이 땅에서 자칭 국감이 열릴 때마다 보여주는 정치인들의 행태는 한심하다. 그들의 막말이, 행패가, 떼쓰기가, 정당한 정치행위에 대해 추억할 때마다 악취가 되어 기억 속에 남는다. 정치란 마들렌에선 언제 달콤한 향이 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