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미래를 생각한다
패션에 대한 강의를 하고 책을 쓰고, 전시를 기획하면서 항상 제 자신에게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딱 두 가지. 패션이란 무엇인가? 란 질문과 '앞으로의 패션은 어떻게 될 것인가' 입니다. 하나는 존재론에 대한 질문이고, 두번째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업의 미래에 대한 질문이지요. 패션계에서도 지속가능성이란 전 지구적 화두는 열띤 토론을 불러일으키는 주제입니다. 패션산업 전체를 살펴야 하고, 시스템을 해체하고 새롭게 재구성해야 하는 지점에 대한 질문이기에 그렇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패션전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지금껏 우리가 봐온 패션 전시들을 생각해보세요. 하나같이 저명한 프랑스발 브랜드의 역사와 미학을 소개하는 전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것도 정교하게 대자본을 통해 만들어진 것들이었지요. 2009년에 큐레이팅한 경기도미술관의 <패션의 윤리학>전에서 마크 리우와 같은 아티스트들을 통해 패션의 친환경 문제, 리사이클 문제를 고민했었습니다. 되돌아보면 매우 선도적인 전시였어요. 저도 이 도록에 긴 글을 실었었는데요. 그 이후로 볼만한 전시가 연계되질 않았습니다.
우리식의 큐레이팅은 없었습니다. 항상 서구가 만들면 수입해서 풀어낼 뿐이죠. 풀어낸다는 것도 우리식의 시선이 개입되기 보다는, 그저 그들이 만든 틀과 사유, 설치에 이르기까지 정교한 매뉴얼을 따라 속칭 '깔았습니다'. 패션 전시는 그저 브랜드의 또 다른 마케팅 캠페인의 일환이 아닙니다. 뭐라해도 전시는 항상 시대에 대해 말을 건내는 작업이어야 하고, 대안을 고민하고, 그런 대안을 함께 생각해왔던 작업자들, 아티스트를 골라내고 함께 생각의 살을 붙여야 하는 일입니다. 발로 뛰어야 하는 일입니다. 책상머리에서 사유만 한다고 해결되는게 아니죠. 대안이란게 그저 생각으로만 존재해서는 한 벌의 옷을 만드는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건 기존의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고, 또 다른 수익의 방식과 문법을 알려줘야 하는 거에요.
패션의 미래는 어디에 있는가
넬리로디나 WGSN, 이외에도 많은 패션 예측 회사들의 보고서들을 읽어봅니다. 이미 2018년 테마들이 나와있지요. 2년 앞서 시대를 타진하는 그들의 보고서는 항상 맘이 설렙니다. 하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그다지 많은 변화가 있지도 않습니다. 변화의 속도는 실제로 문자화된 것과 실제의 이행 여부는 다르니까요. Timeless style, Hand touch style, Renewable design, Multi-functional design 정도로 미래의 패션을 이야기합니다. 말 그대로 시즌별 트렌드로 부터 벗어나는 기본형의 옷들에 대한 사유가 많이 늘었습니다. 기계와 인간이 하나가 되는 특이점 사회를 향해 가면서, 인간은 그래도 여전히 '인간을 인간답게' 느끼게 해주는 핸드 메이드의 요소에도 그 관심을 지속적으로 나타낸다고 하고 있죠. 이건 인간의 보편입니다. 인간의 디자인 행위도 다기능과 언제나 갱신 가능한 설계요소를 갖춘 제품들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됩니다.
파츠파츠, 인간을 구성하는 힘
찜질방을 미술관으로 만들어 인기를 끌고 있는, 경기도의 소다 미술관에서 패션 디자이너 임선옥의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 파츠파츠 임선옥 디자이너는 옷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며 디자인 방식부터 패턴, 생산 방식에 이르기까지 독창적인 프로세스를 개발했습니다. '네오프렌'이라는 단 하나의 소재를 사용하여 소재의 낭비와 생산과정을 최소화하는 0% Waste 디자인 철학을 추구합니다. 제로 웨이스트 (Zero Waste), 단일 소재 (One Material), 해체와 조합의 실험 Part + s등 패션 디자인 (Fashion Design)과는 상충되는 그녀의 디자인 철학은 시간을 초월한 미학을 담으며 지속가능한 브랜드를 구축해나가고 있습니다.
‘Disassembly Line’이라는 전시 디자인 컨셉으로 파츠파츠의 디자인 철학과 컬렉션 의상을 해체하여 기존 패션디자인 전시와 차별화된 방법으로 재구성했습니다. 관람객은 쇼룸이나 패션쇼에서 보여지던 완성된 옷이 아닌, 철저히 분해된 'Parts' 들을 만나게 됩니다. 디자인의 컨셉을 설정한 후 기획과 실행에 들어가는 기존의 선형적인 디자인 과정(Design process)에서 탈피하여 디자인 시점부터 원단폐기물이 발생하지 않는 패턴과 연계된 디자인을 해서 자원의 낭비와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는 친환경적 디자인 방법을 이번 전시를 통해 선보이고 있습니다.
친환경은 이제 우리시대의 거대한 화두입니다. 세계의 많은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솔루션을 내보려고 노력하는 영역입니다. '패션의 미래는 자연과 산업의 화해에서 시작 한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네덜란드의 신발회사 오트 슈즈(OAT shoes)란 회사가 있습니다. 신발 속에 작은 씨앗을 숨겨, 운동화가 땅에 매립되어 썩어갈 때 나무의 영양분이 되게끔 하죠. 운동화가 나무의 자양분이 되는 겁니다.
예전 전자사업 분야에서 일할 때, 북유럽국가들에 수출을 할 때면 항상 북미권에 비해 그 기준이 너무나도 강한 친환경 마크를 따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말처럼 쉽게 되는게 아니어서 돈도 엄청나게 들고, 공정 자체를 바꾸어야 하고, 자재 수급 리스트 자체를 바꿔야 하기에 조직 내에서 엄청난 저항에 부딛치게 됩니다. 패션회사라고 다르지 않죠. 친환경이니 지속가능성이니 하는 것들이 힘든 이유는 실제로 여기에 있습니다. 패션 전시를 기획하는 이들이 그저 서구의 값비싼 '이미 만들어진' 전시들을 가져다가 호가호위하는 꼴을 보기보단, 국내의 문제, 우리의 문제를 고민하기 위해 큐레이팅을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전시가 쉽지 않을 겁니다. 이런 정신으로 옷을 만드는 이들이 극소수란걸 알게 될거고, 결국 우리 안의 내재된 역량이 한없이 뒤떨어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될테니까요. 올해는 북유럽의 다양한 리사이클링, 친환경 기업들에 대한 리포트를 써보려고 합니다. 패션에 대한 사유는 이렇게 폭을 넓혀야 하고, 그 안에서 우리도 답을 내야 합니다. 한 편의 전시 때문에 이런 저런 생각에 빠지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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