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을 작정하고 읽었다. 기호학자인 김성도 교수의 <도시인간학>이다. 인문학이 뜬다고 인간학이란 용어를 남발하는 모양새는 좋지 않지만, 80년대 이후 약간 뜨는 듯 하다가 가라앉은 도시기호학의 분위기를 정상화하기 위한 저자의 강력한 도전은 멋지다. 패션이란 현상 자체가 이 도시란 것을 배경으로 삼는 한, 도시는 패션사가들의 영원한 탐구공간이다. 최근 유럽과 구미의 선도적인 학자들의 논문들을 보면, 패션과 공간이란 테마로, 각 나라의 다양한 면모들을 공간에 녹여내서 설명해내는 논문들이 많다. 4년전부터 나도 이 화두를 풀어보려고 노력중인데, 밑바탕이 되는 도시에 대한 이론적 공부들을 조금은 깊게 할 수 있을 듯 싶다.
저자의 방대한 지식과 밀도 높은 문장에 요약한 이론체계들은 꽤나 선명하게 다가온다. 도시학과 지성사의 결합이라는 화두는 사실 내겐 오랜동안 기다려왔던 숙제이기도 했다. 서구의 도시사상사 계보를 한 그루의 나무를 심어 키우듯,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비트루비우스,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세 갈래길로 나누고, 각 분기된 길의 형상들과 그 안에 찍힌 담론의 상세한 설명들을 담았다. 바르뜨(R. Barthes), 그레마스(A. G. Greimas), 에꼬(U. Eco), 고트디너(M. Gottdiener), 벤야민(W. Benjamin), 르페브르(H. Lefèbvre), 미셀 쎄르또(M. de Certeau), 로씨(A. Rossi), 노르베르크 슐츠(C. NorbergSchulz), 린치(K. Lynch) 등 그가 다룬 이론의 지평의 넓이는 말 그대로 방대하다. 이론들을 다시 요약해서 머리에 넣기도 만만치 않았다.
문제점도 보인다. 한국의 인문학자들의 책에서 종종 발견하는 우려랄까? 서구 이론에 대한 설명과 천착은 좋은데, 이 인식의 틀로 읽어낼 수 있는 우리것에 대한 설명, 저자 자신이 내재화화며, 소화해낸 해석의 지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독창적 사유없이, 서구의 계보설명에 묵직한 시간을 다 쓴 통에, 각자의 글들 사이엔 유기적인 독해가 불가하다. 사실 김성도 교수의 초기작이었던 기호학의 이해를 친구에게 사주었다가 혼도 났었다. 대학원 수업노트를 배낀 책이라며 나를 탓했는데, 사실 이런 느낌이 강하게 들기도 한다. 플라뇌르 연구도 좋고, 지겹게 울궈먹는 발터 벤야민도 좋다. 하지만 그 모델로 우리사회를 풀어내는 건 여전히 부족하다.
사회학도들의 서구이론 추구도 이래서 싫었는데, 이번에도 그다지 바뀐게 없다. 패션이 도시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도시인류학과 도시사회학, 도시심리학 등 다양한 영역의 지식이 필요하다. 그들의 통찰력은 한줄 한줄이 모여 패션을 사유하는 벽돌이 된다. 패션사가는 그 벽돌을 모아 집을 짓는 것이다. 이 책은 약점이 많다. 하지만 장점도 많다. 그만큼 두껍게, 정리해낸 저자의 노력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낸다. 분명 내게도 도움이 되었다. 파리패션과 도시를 소재로 글을 쓸 일은 이제 없어야 하는데 이론체계들이 여기에 머물러있어 나에게도 탈출구를 찾다보면, 더 도움이 될 만한 인식을 갖게 되지 않을까?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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