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전시를 기획하거나 준비하면서, 시간이 날 때면 빼놓지 않고 외국에서 진행중인 패션 전시들을 보려고 노력한다. 유럽은 힘들어도 일본이나 중국, 홍콩 정도는 항상 해볼만한 도시다. 운이 좋아 교토도 함께 들를 수 있으면, 항상 쿄토 복식연구소에 들러 서구 전통복식의 컬렉션을 보고 오는 편이었다. 올해 2016년도 다양한 패션전시가 열린다. 한국에서도 장 폴 고티에가 현대카드의 후원아래 동대문 DDP에 또아리를 틀었다. 일본의 동경 아트센터에서는 지금 이세이 미야케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거의 회고전에 가까울 정도로 지금껏 전시회마다 내놓은 컬렉션 중 가장 많은 양의 옷이 나왔다.
19세기 후반 유럽에 불어닥친 자포니즘의 바람 이후로, 일본의 전통공예와 복식은 유럽의 오트 쿠튀르에 큰 영향을 미쳤다. 파리를 강타한 일본의 현대 패션 디자이너들도 그 영향의 파도를 잘탔다. 이세이 미야케, 레이 가와쿠보, 하나에 모리, 다카다 겐조, 요지 야마모토에 이르는 다양한 디자이너들이 유럽에 진출, 그들만의 미학을 선보였다. 일본의 전통적 공예미학의 특성을 바탕으로 일본적 스타일을 선보임으로써 패션어휘를 확대한 것이다. 1990년대 패션은 그 어느때보다도 융합의 미가 대세였다. 서양복식의 테일러링이 동양복식에서 볼 수 있는 기능성과 구조를 도입하고 동양적 색과 형태, 소재연구에 대한 지평을 서구 유럽의 패션자산에 편입시킨 것이다.
미국의 예술평론가 레오나드 코렌은 전위적인 일본 패션 디자이너 중 이세이 미야케를 가장 일본과 서구적 패션문법을 잘 결합시킨 디자이너라고 소개했다. 이세이 미야케에 관한 서구학자들의 논문집을 사서 읽다보면, 참 다양하고 다층적인 학문분과의 학자들이 자신들의 렌즈로 디자이너의 옷을 분석해놓은 것을 읽을 수가 있었다. 오리가미 방식에 대한 연구는 오히려 구태스럽다. 색에 대한 나 자신의 관점이 늘어나면서 나는 이세이 미야케가 일본의 기모노 착장방식인 가사네색조에서 배운, 색의 찬연한 배합방식을 썼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서구의 레이어드가 형태적이라면, 동양의 레이어드는 색에 기반한 것이 많은데, 그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런 멋진 전시들을 볼 때마다, 공간의 미와 여백, 그 사이를 매우는 옷들의 향연 앞에서 항상 마음이 설렌다. 우리 내 디자이너들, 자칭 1세대를 거장이라 추켜세우며 보여주었던 전시들은 하나같이 나열식에 그칠 때가 많았다. 디자이너 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패션과 연결된 공간활용이나 큐레이터십이 발전하지 못한 우리들의 책임도 컸다. 그래서 전시가 열릴 때마다 보고 또 본다. 전시를 꼼꼼하게 읽다보면 한 시대의 복식과 더불어, 그 옷을 만들기 위해 고민한 디자이너의 머리 속에서 펼쳐졌을, 치열한 정체성의 투쟁과 담론의 풍경이 아른거린다.
올 여름에는 암스텔담과 파리, 피렌체와 밀라노를 다니며 디자인 기행문을 쓸 생각이다. 물론 일본은 우리와 다른 패션미학을 발전시킨 나라답게, 언제든 연구의 대상이다. 동양복식과 서구복식, 모두 공부할수록 새롭게 보이고, 한 나라의 복식의 원형에 대한 생각들을 정립할 수 있게 되어 좋다. 일본의 사상가인 야나기 무네요시는 중국의 복식을 형, 한국은 선, 일본을 색의 예술로 규정하면서, 이 세가지 독특한 미감의 배분이 오늘날 동양3국의 주요한 복식미학의 요소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세이 미야케의 패션에서 드러나는 것은, 전통적인 색의 연구다.
민중들과 서민들의 삶과 유리되지 않은 인간의 배색을 찾아, 옷에 접목한 것이다. 일본의 에도시대만 해도 색에 대한 또 다른 감성이 발전한다. 여러 가지 색을 배합시키는 것 외에 한 두 가지색을 사용하되 그 농도의 변화를 통해 다양한 스펙트럼의 색을 표현하는 것이다. 자연에서 획득한 색의 요소에 화려함을 배열하는, 새로운 배치의 감각으로 원색의 다채로움과 간색의 조화를 이뤄냈다.
이번 전시는 이세이 미야케의 전 작품을 거의 다 볼 수 있는 유일한 대형전시라 할 수 있다. 그만큼 한 디자이너의 영감의 얼개를 추론해볼 수 있는 최적의 전시란 뜻이다. 요즘들어 전시규모가 점점 더 커지고, 회고전 성격의 패션전시가 많아지는 것도 이와 맞물려 있다. 중요한 것은 디자이너를 선보일 때, 철저하게 그의 미학을 규정하고 범주화한 후,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미지 중심이 아닌, 이성과 합리성에 조화되는 시각적 몸의 향연을 볼 수 있게 된다. 그것이 전시의 가장 중요한 힘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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