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큐레이터의 서재

패션 편집자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책-에디터의 눈을 가져라

패션 큐레이터 2016. 5. 29. 17:53



에디터의 눈

나온지는 좀 되었는데 이번에야 사게 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로도 나와있고 이후 그 내용에 다양한 화보작업을 더해 책으로 나왔습니다. <보그-에디터스 아이>란 책은 패션계의 에디터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한번쯤 볼만 합니다. 물론 화보 중심이고 텍스트도 그다지 쓸만한게 없습니다. 텍스트보다는 시각적 텍스트라는 표현이 어울리겠네요. 특히 한국처럼 라이센스 패션지들이 장악한 나라에서, 사실 그들이 보여주는 화보 작업의 한계성, 창작성의 부재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없는 것은 아쉽습니다. 


보그의 화보가 툭하면 무슨 미술의 무엇을 영감으로 삼았다 하지만, 그것도 처음에 사용했을 때, 느껴지는 날카로움인 것이지, 엇비슷한 시각적 수사에 의존해서 만들어내는 화보들은 지겹습니다. 미국판 또는 이탈리아 판 <보그>를 촬영하는 스티븐 마이젤이나 마이오 테스티노, 파울로 로베르시, 최근 많은 화보작업에 동참하고 있는 이네즈 앤 비누드 등이 연출한 패션사진은 매체에 상관없이 작가 고유의 책깔과 철학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유독 한국의 패션 포토그래퍼들은 그렇질 못하지요. 물론 자신들의 표현을 빌면 워낙 척박한 환경에서 작업을 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척박한 환경과 자칭 패션 에디터들이 보여주는 근거없는 자부심은 난데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뭐 패션잡지만 비판하기도 힘든 것이, 이 땅의 매체 환경이 워낙 권력관계에 의해 생산되는 관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특히 게이트키핑이란 측면을 놓고 볼 때, 즉 뉴스를 취사선택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시민 옴부즈맨이나 시청률, 광고주 같은 외적 요인 보다는 상급자, 경영진, 조직 내 동료와 같은 내적 요소들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패션 매체가 90년대 이후 라이선스 잡지 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하긴 했지만 여전히 한정된 필드다보니, 소위 폐쇄적인 문화와 생산관행에 빠져 있을 수 밖에 없지요. 방송도 마찬가지입니다. 뛰어난 컨텐츠를 설계하고 연출하는 프로듀서가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윗선에서 배제당하거나 상위 관리자들에게 거부 당하는 일도 많습니다. 그렇게 나온 프로듀서를 알고 있는데요. 저로서는 안타깝기 그지 없었습니다. 


패션잡지에서 포토그래퍼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 우리에겐 뛰어난 패션사진가가 없을까? 이런 문제들을 풀기 위해서는 실타래처럼 엉켜있는 컨텐츠와 텍스트 생산에 묶여있는 권력관계들을 봐야 합니다. 특히 이번 보그-에디터의 눈 같은 책들은, 수석 편집장의 편집논리, 미감, 그의 견해가 일종의 산업 내부의 거울이 되고 권력이 되는 상황을 너무나 자연스레 '신화화' 하는 책들입니다. 대화적 관계보다, 항상 최고의 자리에 있는 이가 모든 걸 결정한다는 논리가 더 강하지요. 어찌보면 창의성과 오리지낼리티를 강조하면서도, 다양한 혼종성과 대화적 관계가 창발해내는 창의성의 측면과는 매우 먼 내용들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패션계가 유독 그런건지, 이런 측면들을 타파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뭐 그래봐야 한국에서 패션 잡지들이 보여주는 위상이란게 그다지 크지 않고, 정작 자신들이 오디언스 층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소비력이 점차 떨어지고 있으니, 이중의 모순적 상황에 묶이고 있는 것이지요. 어찌되었든 120년의 역사 속에서 오늘날 미국판 보그의 스타일을 만드는데 주요한 역할을 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각 에디터의 시각과 철학에 대해 배우는 것은 꽤 흥미로운 일입니다. 일반 화보들만 뒤적여도 배울만한 것들이 많지요. 하지만 시각자료와 텍스트를 함께 보면서, 바로 지금 우리의 자리를 독해해보는 것도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많은 저널리스트들, 방송연구자들, 패션사진이론가들이 이런 문제들을 언급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