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일상의 황홀

장욱진 미술관에서-그리움을 그리며 살기

패션 큐레이터 2016. 5. 9. 16:11



아내와 아이와 함께 양주에 있는 시립 장욱진 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미술관에서 4회에 걸쳐 열릴 특강 때문이었습니다. 패션과 미술을 테마로 '그림 밖으로 나온 옷들'이란 제목 하에 열리는 강의였지요. 아쉽게 비가 많이 왔고, 임시 공휴일로 늦게 지정된 터라, 사실 출발하면서 사람들이 오면 얼마나 오겠나 했는데, 등록 인원들이 거의 안빠지고 다 오셨더라구요. 장흥아트파크와 거리도 가깝고, 바로 옆에는 글램핑하는 장소도 있더라구요. 그 아래는 물이 많은 개천도 있고, 풍성한 초록빛 가득한 동산에 독특한 조형물들도 가득했는데, 아내와의 데이트 날, 비가 많이 와서 아쉽습니다. 



장욱진, 동물가족, Oil on plastered wall, 209x130cm, 1964


대학시절부터 저는 우리시대의 민화장, 장욱진 선생님의 그림을 좋아했습니다. 어찌보면 제가 경영학을 전공하고, 회계학이나 통계학 같은 숫자놀음이 참 익숙해져 갈때도, 마음 속엔 갤러리들을 다니며 본 그림들을 언젠가는 집의 벽에 걸겠노라고 마음먹는 예비 컬렉터가 된 것은 장욱진이란 화가의 영향이 큽니다. 김환기 선생님이나 이중섭 화백의 그림과는 정말 다른, 어찌보면 첫 돌을 이제 막 지난 제 딸의 그림 책에 나올 듯한 그림인데, 저는 무슨 이유인지 그 그림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곤 했습니다. 장욱진 선생님이 태어난지도 이제 100주년을 맞이합니다. 장욱진의 동물가족 그림을 한참 봤습니다. 저와 이제 막 돌을 지난 제 딸이요. 경기도 덕소 화실 벽에 그려진 것을 벽 자체로 떼어내 미술관에 기증한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실물의 쇠코뚜레와 워낭이 인상깊었습니다. 



서아가 이 작품 앞에서 연신 웃었습니다. 그렇게 좋은가봐요



오늘 온 이 미술관은 영국 BBC에서 2014년에 세워진 세계 8대 미술관으로 선정되었다고 하죠. 그만큼 건축학적으로도 독특한 면들이 많습니다. 저는 채광이 있는 창을 좋아하는데, 항상 그 아래 작품이 있어 더욱 좋더라구요. 사실 선생님의 그림들은 참 작습니다. 30호 이내의 작품들이 많죠. 그림의 크기가 클수록 그림이 싱거워지고 화면의 장악력이 사라진다고 믿으셨다고 해요. 되집어보면 서구의 미술관들을 다닐 때, 왕과 귀족들을 위해 그린 역사화나 초상화들은 그 크기부터가 거대합니다. 인간의 눈높이 위에 설치해서 항상 우러러보도록 걸어놓았죠. 



어찌보면 그림 자체의 미학 보다는 그림 속 주인공들의 사회적 삶, 그들의 권위와 권력의 체계. 상징등을 시각 이미지를 통해 '사람들에게 주입하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내밀한 세계, 우리의 전통적 산하와 그 아래 옹기종기 살아가는 인간의 표정을 담기엔 큰 캔버스는 왠지 부담스럽죠. 게다가 줄이고 축소하고, 누를수록, 의미는 응축되기 마련입니다.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 나는 내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죽는 날까지 다 써버려야 겠다" 는 화가의 고백은 사실 삶을 대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토해내서 그 안의 고갱이를 즙처럼 짜내겠다는 표현이 아닐까 싶어요. 사실 영어의 expression, 표현이란 의미의 단어의 어원이 '외부로부터 힘을 가해서 즙을 쭉' 짜내는 것에 기인하잖아요. 그렇게 장욱진 선생님의 그림도 그런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은 3회차 강의도 온 힘을 다해, 공부하고 사유한 것들을 토해내야겠습니다.